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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철 Oct 01. 2020

코로나 시대의 자화상

추석

   

기지개와 함께 방바닥에 발을 디디니 섬찟.  양말부터 찾았다.  가을 실감.  소금 양치 후 부분 틀니부터  끼우고 따뜻한 물에 비타민을 삼켰다.  삶은 달걀과 빵으로 요기.  주방에는 명절 일꺼리들이 쌓여있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편하다.  특히 나 같은 라떼 세대들은 남자의 권위에다  산업 역군, 안 먹고 안 입고 어쩌구하며 그래도 대접 받는 편이다.  탄천에서 가벼운 운동.  명절이 간편해졌는지 코로나 때문인지 운동하는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다.  여자들도 꽤 보인다. 


가벼운 근력운동과 육 천보 걷기  후 집으로.     

함께 사는 캥거루 남매는 밤 중.  아내 혼자 명절 준비를 하고 있다.  미안한 마음에 거실과 주방 청소.  고기 손질 후 애들 깨우고 부침개 일에서 나는 빠졌다.  밥 먹는 남매 앞에 청소 도구 몇 번 흔들고 내 방으로. 

    

폰을 켜니 조카의 문자가 와 있다.  

“큰아버지 다리를 다쳐서 요번 추석은 쉬고 싶습니다.”

 라떼식 표현으로 불감청이 고소원이다.  폐 수술 후의 코로나 바이러스는 내게서 많은 것을 앗아가 버렸다.  조카 보고 싶은 생각이나 외로움보다 사람 만나는 일에는 겁이 앞에 선다.      


가족 밴드에도 소식이 없다.  어제 손주들  우리나라 왔을 때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아직 본 사람이 없다.  어제 화상 채팅에서 손녀가 한 말.  

“할아버지 나 한국 가고 싶다.”  그래서  찾아 올린 우리나라 놀이터 사진이다.  


손주들에게는 우리나라가 한국이고 우리말이 한국말이다.       

올해 초등학교 입학한 손녀.  한 창 또래들과 어울릴 시기지만 그놈의 코로나 땜에 화상수업을 한단다.  친구는 못 만나고 과제는 해야 하고.  처음에는 또래들의 자기소개와 장기 자랑에 흥미를 가졌지만 지금은 싫증을 낸다는 딸의 말.     

 

올 1월까지 석 달간 미국에서 같이 놀아주고 왔지만 나는 항상 서열 꼴찌였다.  엄마, 아빠, 할마,  아무도 없을 때만 내가 인기 순위 1위가 될 수 있었는데.  집에만 있으니 이 할빠라도 놀아 줄 사람이 필요한 모양이다.     

“전화 안 왔지?”

“아직 안 왔다,”

“바쁜 줄 아나?”

“걔들이 추석을 알겠나.  애 둘 키워봐라 바쁘다.  큰 놈 숙제도 도와 줘야지.” 

바로 깨갱.  아내는 셋을 키웠다.      



      

간단한 샤워부터.  거실 정리에 제사 상 차리기.  정신없이 바쁜 명절 행사 후 음복까지.     

밴드를 찾으니 딸애의 답이 와 있다.  아내의 말이 맞았다.  “추석이었군요.  행복한 추석 되세요.  미사고! 하트 뿅뿅!”

우리나라 보름달 사진이나마 보내야겠다.     


“루아가 한국 놀이터에 가고 싶다고 말을 자주 합니다.”

 루아는 손녀 이름이다.  우리나라 놀이터에서는 처음 보는 이모와 외삼촌 까지 함께 했으니 기억이 나는 모양이다.  엄마, 아빠 밖에 모르던 손자도 이모와 외삼촌과는 잘 놀던 기억.  애들도 젊은 사람을 좋아한다던 아내의 말.     


1학년이지만 수업을 못 하니 과제가 많이 나오는 모양이다.  전화가 점점 잦아든다.  

아무리 글로벌이니 지구촌이니 해도 미국은 역시 먼 나라다.    

 

친조부모,  외조부모 살아계실 때 본다고 올 4월 한국행 비행기 표까지 끊어 놓았으나 망할  놈의 코로나 땜에 예악 취소.  언제나 가고 올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져녁엔 멀리 있는 사촌들에게서 명절 안부 전화. 

    

다음 월요일엔 화상수업!  운동 길에 만나는 이웃들은 손만 흔들고 지나치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컴으로만 볼 수 있다. 어떻게 된 게 코로나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멀어지게 하고 멀리 있을수록 자주 보게 한다.    

   

코로나 시대!  처음 경험해 보는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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