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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철 Jun 13. 2021

시인 신동엽의 하늘과 가수 밥 딜런의 하늘

팬데믹


딸과의 가족 밴드를 통해본 미국 해변 가의 모습.  손주들이 노 마스크의 친구들과 놀고 있다.  걱정.  물론 딸 내외는 백신 2차 접종까지 완료.  그래도 내 눈에는 마스크 없는 얼굴이 낯설다.   

  

왜일까?  남의 눈을 의식하는 우리나라와 철저히 개인주의 국가인 미국의 차이?  이런 단순한 차이?  아닐 것만 같다.  문화의 차이?  과연 그 문화가 무엇일까?      

 

민족 시인이라 불리는 신동엽은 그의 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에서

마음속 구름을 닦고 쇠 항아리를 찢으면 티 없 이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고 노래했다.     


또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서사시 “금강”에서는 이미 우리는 하늘을 보았다고 말한다.

1894년의 고부.  1960년의 4월에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하늘을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다 아는 역사이지만 1894년의 고부는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는 곳이다.  

1960년의 4월은 4월 혁명을 말한다.  신동엽의 하늘은 우리의 힘으로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가수 밥 딜런은 단순한 가수가 아니다.  그의 노벨 문학상 수상.  처음에는 평화상의 오보인 줄 알았지만 문학상을 확인했을 때 거부감은커녕 누구보다 기뻤다.  평화와 반전의 선봉에 섰던 의식 있는 가수.  우리 세대에서는 이름만 있고 노래는 전혀 들을 수 없는 가수.  그래서 더 신비에 싸였던 인물.  밥 딜런!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에 나오는 하늘은 인간의 힘으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찾아야 사람들은 하늘을 볼 수 있는가?  그것은 불어오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다. “         

 

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지만 서양의 시나 노래에서 직접 하늘을 논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의 얕은 지식일 수도 있다.  하늘은 인간의 운명을 점지하는 신의 의미가 더 강한 것 같다.

우리는 하느님,  서양은 하나님! 그는 유태인이다.     

 

그의 노래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에서도 “사물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날이 어두워지고,  길고 검은 구름이 몰려와도”  그에 맞설 생각보다도 절망하는 모습이다.     


“아델”의  리메이크로 더 유명해진 노래 “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make you feel  my  love” 에서도 얼굴에 비가 쏟아질 때도 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따뜻이 안아주는 행동이 있을 뿐이다.  

   

서양의 노래에는 비를 가리는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냥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거나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피하는 행동들이 있을 뿐이다.  C.C. R의 노래.  “누가 이 비를 멈추어 줄 것인가?”  

   

거울 속의 얼굴에 콧수염이 보기 싫을 정도다.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는 말. 마스크 덕에 젊었을 때 좋아했던 배우 “크라크 케이블”의 흉내를 원 없이 내고 있다.  이 배우는 귀가 크기에 시선을 돌리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보통 귀는 아니다.   

  

노력과 순응!  이것이 팬더믹을 대하는 동서양의 대응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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