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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철 Nov 09. 2021

낡은 사진첩은 추억 속에만 있다.

언어와 정체성

아침 운동 가려고 점퍼를 입는데 아내가 두꺼운 옷을 내준다.  

 "벌써?"  철봉이라도 하려면 조금 부담스러운 두께다.

"비 온다.  우산 챙겨 가라.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

아파트 문을 나서면서 입동 실감.  두꺼운 옷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나이가 연세라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도 낭만이다.  텔레비전 볼륨 때문에 아내에게 잔소리 듣는 나이.

기구들이 젖어 있어 걷기 운동만.  운동 나오신 분들 모두 겨울 복장이다.  길 옆에는 비에 젖은 낙엽들이 뒹굴고 있다.  멀리 있는 친구가 보내 준 이브 몽땅의 고엽이 흥얼거려지는 계절이다.  세월 참!  



화상 통화 신호음!  반갑다.

"하이!"  "할아버지!"
"오늘 사커 했어?"

"오늘 아니다."

"오늘 토요일 아니야?"  

"엄마! 토요일이 뭐야?"

"마이 미스 테익!  우리는 오늘이 새러데이다."


며칠 전 딸의 걱정이 현실로 다가온다.  손녀보다 한 학년 위의 아들 둔 엄마와의 대화 내용.

손녀 학교에도 한국계 엄마들이 몇 있는 모양이다.  그중 친한 엄마.  미국은 부모가 학생들을 데려다주고 데려 온다.  아마 테러와 연관이 있는 게 아닌가 추측.  등교가 끝나면 교문도 닫는다.  엄마들과 대화 기회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  


아들이 우리말을 싫어하는 모양이다.  집에 와서도 영어만 하려 한단다.  조부모와 통화도 싫어하는 모양이다.  우리 손주들은 내가 미국 네 번을 다녀왔다.  아내는 다섯 번.  누나는 거의 1년을 우리와 함께 했다.

영어보다 우리말을 더 잘한다.  

"할아버지 나는 뜨신 물 싫다."   아내나 나나 표준말 억양 불가다.

영어 못 하는 우리 때문에 벙어리 만들까 걱정 많이 했다.  


학교 다니면서는 전화가 잦아들었다.  약간 서운한 마음.  미국도 숙제가 있는 모양이다.  우리처럼 검사를 하고 하지는 않지만 책 읽기 20분.  이런 숙제란다.

특히 집에서 영어를 쓰지 않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신경을 쓰는 모양이다.  그러다 딸의 전화.

"애들 우리말 잊겠다.  이제 전화 자주 할게."

"우리말 하면 우짜노 영어 해야지."

"영어는 걱정 없다.  둘이는 영어만 사용한다."

그러면서 해 준 말이다.  

"야!  할아버지하고 통화 안 하면 어떤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 얘들은 영어로 생각한다.  나중에 소통에 문제 있을까 걱정이다."

멀리 있으니 참 별 게 다 걱정이다.  그 말도 일리는 있다.  

"언어는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지만 사고를 결정하기도 한다." 손주들 목소리 자주 들으면 나야 좋지.

정말 아는 게 병이다.  외국에서 흔히 말하는 문제점.  "정체성!  아이덴디티!"


카톡 소리에 폰을 켠다.  갤러리는 덤이다.  2년 전 손주들 둘이 내게 안겨 있는 사진.  애들 2년은 무섭다.

아니 세월이 그만큼 빨리 가고 있는 거다.  우리는 점점 라떼가 되어 가고....

추억 속의 사진첩을 꺼낸다.  20세기 소리다. 지금은 폰만 켜면 사진이 다 들어 있다.

친구가 해준 라떼들의 농담.  소위 아재 개그.

"요즘은 저승에서도 폰 배운다, "

나도 폰 기초반 신청해 놓았다.

2년! 세월 참!  손흥민 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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