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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철 Mar 27. 2022

코로나 시대의 수업 풍경

새벽  운동  가는  길.    아파트  문을  나서니  선득한  기운.   강변의  철봉  앞에서  근 운동 전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다.    긴 팔 옷을  입은  분들이  꽤  된다.   아니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거의 긴소매다.   여름이 가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있다.



한  시간의  운동 후  집으로.    항상 하는 일,  점심  후  휴식  겸  SNS.   가족  밴드.    외손녀의  초등학교 입학식  소식.  벌써?   미국은 8월에 입학식이 있다.  1년 다닌 부설 유치원을 졸업하고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1학년.

미국은 벌써 대면 수업.  미국의 방역 소식에 벌써 대면 수업이라니 약간은 걱정.  또 친구들 만나면  우리와는 멀어질 거란 예감.  슬픈 것은 아니지만 약간은 서운할 것 같다.  


컴 앞에 앉으면 할 일이 많다.  인터넷  서핑  중  사이먼과  가펑클의  "험한  세상  다리 되어"   악보가  눈에  딱.    옛  생각.    입으로  흥얼거리며  코드를  보니  어려운  것이  적다.    기타를  잡아보니  될  것도  같다.    우선  느린  속도의  고고 리듬.    가장  많이  연습한  슬로 고고  리듬.    본격적인  연습.    한  마디  안에  코드  3개짜리.    많이  연습한  관용적  리듬이다.    그래도  안  된다.    나이  들면  조금씩이라도  매일 연습을  해야  한다.   해서  매일  손은  푼다.    그런데  분명  된  것도  다시  하면  안  된다.   연식!  며칠  연습하면  되겠지.   다른  곡  하다  보면  또  안  되고.   그래도  손과  입을  맞추어  본다.

"네가  지치고,   자존감이  떨어져  네 눈에  눈물  고이면  내가  너의  편이  되어 그  눈물  닦아 주리라아!"


코로나  시작된 지도  1년  반이  되어  간다.    기타  동아리도  변화가  있었다.   대면  강의는  10명  한정.

30명씩  모일 때는  나이 지긋한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선착순  10명.   내가  가장  연장자.   눈치가 없으면  코치라도  있어야 하는데.    


문득  후대에게 의자를 비워주어야 한다는 조병화  시인의  시  생각!

안  되는  손을  원망하며  입을 흥얼거린다.

"험한 세상의  다리  되어  그대  지키리.   험한 세상의 다리......!"


그나마 한 번 모이고 다시 비대면으로.  코로나 정말  지긋지긋하다.  그냥 컴이나 폰밖에 할 게 없다.


오늘도  등산  좋아하는  친구가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노인에게는  내일이  없다.   오늘을  즐기자.   아직 노인은  아니지만."    

이 친구나  나나  일흔이  넘었다.   분명  노인이다.   

그런데 산의  사진이  천  미터급  산이다.  젊은이  못지않다.      아무리   에베레스트를 올라도   일흔이면 노인이다.

이 십 년  전의  추억  하나.    말썽  부리기  시작하는  차를  바꾸어  볼까 생각.   중고차  전문가와  상담.  시골  생활이라  출퇴근  거리가  짧다.   

"많이  타지는  않았습니다."     "일  안  한다고  사람이  안  늙습니까?    연식이  중요합니다." 

그 후로  7년  동안  그  차를  애용했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모두 늙으련만 그래도 젊은이들을 만나면 조심하게 된다.  어제 씁쓸했던 기억.


운동 후의 약간은 흐트러진 복장.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재빨리 올라탄 젊은 여자분이 자기 층의 버튼만 누른 채 한쪽으로 비켜선다.   뒤따르는 내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나 역시 내 할 일만 하고 모서리로.  얼굴은  서로가 벽 쪽으로.  내릴 때는 얼굴도 보지 않고  고개만 까딱.   그리고는 도망치듯  사라진다.    기분 나쁠 법도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다.   코로나의 위력.


매일 샤워를 한다.  그래도  아내는 홀아비 냄새가 난단다.   그래서 더 열심히 샤워.    집 앞 탄천변의  산책길 따라  한참 더울 때 걷기 운동.    땀은 났을 것이다.   모두 마스크 착용.   냄새보다  거리 두기.    노친네!   성희롱  이런 생각도 안 했을 터,   모든 것이  거리 두기!


아침!  컴 앞에서 생각 정리 중,   아내의 장 보기.   책상에서 내려와 휴식 중 잠시 잠이 든 모양이다.   잠결에 문소리와  캐리어 끄는 소리.   깜짝 놀라 벌떡.    재빨리  짐을 날랐다.   가방을 대신한  캐리어도  바닥을  깨끗이  닦아 제 자리로!


라떼는 엄처시하,  공처가 이런 말이 있었다.   아내 무섬증.    요즘은 마포불백.   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    이건 농담 삼아하는 말.   아내가 무서운 것은 당연 아니다.    사간이  무서운 거다.


모든 만남이  다  사라졌다.   당연히 남는 것은 시간뿐!    반어법 삼아 하는 말.  시간이 부자인 사람!


은퇴 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기가 있었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허파꽈리가 망가졌다는 나는 집 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   앉았다,  일어섰다.  누웠다.   잠시 잠들었다 깨면 tv는 혼자 잘도 놀고 있었다.   한 달여 지나니  자가진단  우울증!   마스크 쓰고  정신없이 싸돌아 다녔다.   과유불급!   넘쳐나는 자유는  공포 그 자체였다.   나?  시간에  쫓기던 교사였다.   종소리만 나면 벌떡!   습관은 무서운 거다.  퇴임 후,   음악 소리가 없어도  시간마다 엄습하던  갈 곳 잃은  두려움!   


다시  모든 만남이  비대면으로  바뀌었다.    소속감이 없어졌단 말.   사실 나는 비대면 모임은 만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퇴근 후 한 잔 술에  피로를 풀고 집으로.   이게 일상이던 우리 세대는 실감하리라 생각.  너만?   젊은 세대의 이해를 바라는 건 무리겠지.  


반려동물이라도 한 마리.   이건 싫다.   실망하더라도  사람이다.   동물?  무척 좋아한다.   너무 좋아해서 생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집에서  셰퍼드 한 마리  키운 기억.    닭뼈를 부수어 준 기억.   개가 그냥 넘기다 목에 걸렸다.   얼시구나!  동네 사람들의 몫으로.   지금 같으면 턱도 없는 소리.   그  기억이  반려동물이란 말조차 거부하게 만든 것 같다.


오늘은  밴드를 통한 기타반 만남.   강사의 손을 따라 아르페지오 연습.   스트록은 시끄러울 것 같아 옆 집 눈치.   당연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차라리 유튜브로  연습하는 게 낫지.   

다시 넘쳐 나는 시간.   코로나야 제발,  빨리,   어서 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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