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의 시작
2022년 유월 세 째 주 화요일. 한국 나들이 온 손주들과 만나는 날!
차가 멈추기 바쁘게 문을 연다. 2년 반 만에 만나는 손자. 반갑다! 번쩍 안아 차 밖으로. 분명 아는 얼굴인데도 데면데면. 약간의 당황. 딸이 손녀와 함께 하니 손을 뿌리치고 엄마 곁으로. 섭섭함이 아니라 아직도? 정도의 느낌. 손녀는 8월이면 2학년, 손자는 유치원 입학. 남매의 사이도 무척 다정하건만 엄마에 대한 시샘은 2년 반 전이나 같다. 그래도 예상보다는 빠른 만남이다. 표 예매 시에는 2주간 자가 격리를 예상했는데 한국 도착하니 격리 기간이 없어졌다는 딸의 말. 미국은 이미 위드 코로나 진행 중. 우리나라도 시작인가?
산에 미쳐 있던 젊은 날. 선배들의 말씀.
"등산은 수요일부터 시작이다. 계획을 세우고 야영 준비를 하고 토요일 출발. 1박. 일요일 귀가. 월, 화는 산행 무용담.
고로 등산은 일주일 내내 행복이다."
손주들 만남을 기다리며 귀국 소식 듣자마자 계획을 세웠다. sns를 뒤져 손주들이 가장 즐거워했던 동영상을 찾아 유튜브 제작. 열대 사막 기후인 La에 사는 녀석들이라 강물이 흐르는 탄천 답사. 여행이 생활화된 미국이지만 10개월의 미국 생활 동안 물이 흐르는 강을 본 기억이 없다. 녹음 우거진 산과 오리들 떼 지어 다니는 집 바로 앞의 탄천. 우리나라의 좋은 기억을 만들어 주겠다는 계획.
친 조부 집에서 며칠 보낸 녀석들이지만 이곳은 대 도시. La의 한적한 주택가나 조부 댁의 느낌과는 조금은 다를 것이다? 아니다! 녀석들의 관심은 오직 집 바로 앞의 놀이터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야 하는 외조부 집의 신기함 뿐. 내일 놀이터 온다는 소리와 엘리베이터의 버튼 서로 누르겠다는 다툼만
눈 뜨자마자 놀이터 가자는 손녀를 갖은 말로 꾀어 물이 흐르는 탄천으로. 손자는 외삼촌과 만들기 삼매경.
물이 흐르는 강과 새 무리들, 처음엔 즐거워하는 것 같던 손녀, 날이 더워지자 맥을 못 춘다. 30분이 채 안 되는 산책에 바로 집으로. 40도를 훌쩍 넘기는 La의 더위 속에서 살아온 손주들도 한국의 무더위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30도를 조금 넘기는 한국의 더위라 안일하게 생각한 내 잘못. 덕분에 손녀만 고생했다. 습도 낮은 더위와 무더위는 단순 비교 대상이 아니다. 다음부터 나와는 적지 않은 거리감.
손주들이 가장 즐거워했다는 레고랜드 여행과 승마 체험 동영상으로 만든 유튜브.
"이거 언제 찍었어?"
녀석들에게 이건 추억이 아닌 호기심이다. 딸이 가족 밴드에 올린 동영상을 편집했으니, 그곳에 없었던 할애비의 동영상이 신기한 것이다. 녀석아 말은 나도 타보지 못했다. 그 고급진 체험을 벌써 잊다니. 아니 잊은 것이 아니다. 손주들에게 추억이란 쌓아 가는 것이지 돌아보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즐거웠던 놀이의 사진도 별 의미가 없다. 앞으로 더 즐거운 일들이 수두룩하니까. 즐거운 추억의 유튜브 만들기는 노인들의 취미 생활일 뿐이다. 그래도 손주들 사진은 열심히 찍었다.
세 번의 미국 생활로 10개월을 함께 생활한 나보다 두 번 만나 며칠 함께 하지도 못한 이모와 외삼촌이 훨씬 가깝다. 손주들이 먼저 배운 언어는 우리말이다. 아내와 내가 딸 산후조리 차 미국 생활. 우리 부부는 영어가 서투니 아니 못 하니 손주들과의 대화도 우리말.
그런데 지금은 손주들이 우리말을 힘들어한다. 남매간의 대화는 영어로! 이모와 외삼촌도 손주들과 영어로 대화. 나와 아내는 우리말로. 당연히 일 생기면 이모와 외삼촌을 먼저 찾는다.
말의 힘 정말 무섭다!
약간은 서먹해진 손녀와 가까워질 절호의 기회. 딸네 가족과 우리 내외만 호캉스 삼아 피서 여행.
La 촌놈들답게 물놀이 삼매경. 덕분에 나와도 많은 시간을 물속에서 함께. 내 손을 잡고 수영 연습. 백 퍼센트 화해.
때 마침 손자 녀석 유치원 입학 선물인 군대 인식표 격인 주소와 전화번호를 새긴 목걸이가 도착했다는 메신저. 손녀 입학 선물로 해 준 목걸이를 동생이 부러워한다는 말에 손자도 하나. 손녀에게 허락받기. 애들 비위 맞추기 힘들다.
"목걸이 예쁘지?"
"응!" 목걸이를 꼭 하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
"동생도 입학하지? 할아버지가 동생 목걸이도 해줄까?"
"응!" 이 녀석들 우리말의 높임말은 거의 사용 않는다.
"네 건 없다."
"난 목걸이 있다."
시샘은커녕 동생 목걸이는 자기가 걸어 준다고 난리다. 약간의 질투심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사이좋은 현실의 남매다. 내게는 남매가 만들었다며 내 영어 이름이 새겨진 팔찌를 채워준다.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사랑 가득한 조손 관계 확인.
시간이 참 빨리 간다. 녀석들의 귀국일도 며칠 남지 않았다. 귀국하면 녀석들은 추억을 만들고 나는 손주들의 유튜브를 만들고 있겠지!
다음 만남에서는 분명 좀 더 좋은 할애비가 되리라!
조금은 더 가까워진 손주들과 나의 어머니. 손주들에게는 증조할머니를 뵈러 고향으로. 코로나 이후 2년 동안 갈 수 없었던 고향이다. 차도 없었는데 사위가 렌트한 차로 편안하게 고향행. 미국 손주가 한국 고향 안내한다.
누나는 3년 전 뵌 할머니를 기억하는 것 같은데 손자는 첫 대면 같은 느낌. 나이가 있으니 당연한 말.
"할아버지의 어머니!"
둔한 머리 굴려 그랜드 오브 그랜드.
"그랜 그랜 마!"
"아니다. 그레이스 그랜 마!"
"great grandmom"
T가 묵음이 되었다 디귿 발음이 되었다가 스로 들리기도. 그 와중에 할머니는 우리말을 영어로 옮기는 증손녀가 기특하기만!
"아이고 아가 우리말을 영어로 바로 옮긴다. 아이고!"
할머니가 볼 때 증손녀는 분명 천재다.
나는 영어가 참 안 는다. 당연하다. 우리 세대는 일제 강점기 공부한 선생님들에게 영어를 배웠다. 손주들과의 대화가 힘들다. 손주들은 도합 10개월을 함께 부대낀 영어 대화 안 되는 할머니, 할아버지보다 두 번째 만나는 영어 하는 이모, 외삼촌이 훨씬 더 가깝다. 젊은 세대는 손주들과 영어로 대화를 한다. 부럽다.
간식 타임.
서툰 내 영어.
"버러 브렛!"
"버럭?"
"버러 브렛."
"할아버지 버럭은 엉덩이다."
손자는 엉덩이로 내 어깨를 치면 영어 공부하듯 할애비를 놀린다.
"버럭은 엉덩이! 버럭은 엉덩이!"
"버터는 버들."
버럭과 버터의 정확한 영어 발음은 아직도 못 하겠다.
발음 안 되는 할애비에게 하는 손녀의 말.
"영어는 악센트가 있다."
악센트? 어안이 벙벙.
십 년 동안 배운 영어. 초등 1학년인 손녀에게 강의를 듣는다.
도대체 얘가 악센트란 말을 어떻게 알까?
미국도 비대면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학교의 배려로 집에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학생들만 따로 모아 수업을 하고 손녀가 성적 우수자로
메달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 그때 영어 발음을 배우며 악센트란 말을 들었지 않았겠냐는 순전히 내 개인적인 추측!
6주간의 즐거운 시간 끝에 손주들은 떠났다. 약간은 썰렁했던 인천공항 풍경. 그래도 2주간의 자가격리가 해제되며 덤으로 챙긴 2주간의 행복. 그리고 며칠 후 보내온 사진 두 장. 개학과 입학을 알리는 모습들!
손주들의 얼굴에는 마스크가 없다! 지금은 나도 야외 운동 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은 아쉬움과 훈풍을 함께 남겨 놓고 자기들의 모국으로 떠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