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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철 Jun 22. 2023

LA에서 라이딩을

미국 생활

한국의 70대가 미국에서 자전거를 탄다. 우리나라에서 70대는 시니어 축에도 끼지 못 하는 상노인 취급을 받는 세대. 이곳에 오니 조그만 동양인에게 관심 가질 사람도 없을뿐더러 선글라스로 얼굴의 주름을 감추니 회춘한 느낌.  몇 번의 동네 한 바퀴 라이딩에 용기를 얻어 두 시간의 장거리 자전거 전용 도로에 도전한다. 낯선 환경에 약간은 긴장, 자전거 타기야 어디나 같겠지만 분명 다른 것도 있을 터. 그래서 오늘은 우리나라의 라이딩과 다른 점 찾기.




자전거 전용 도로 입구에 말 그림이 턱. 하얀 목책선을 사이에 두고 자전거 도로와 승마 도로가 나뉜다. 승마용은 비포장. 새로운 기분. 신나게 달리다 보니 말의 흔적들이 보인다. 기분이 이상하다. 냄새는 전혀 없지만 묘하게 소 꼴 뜯으러 다니던 추억이 떠오른다. 만리 먼 이국 땅에서 어린 시절의 한국 기억을 떠 울린다? 세계화, 지구촌이 이것?


한 시간여를 달리니 다리가 나온다. 반환점. 그러고 보니 LA는 열대 사막 기후. 다리는 있는데 밑을 흐르는 물이 없다. 물소리 들으며 오리, 왜가리, 백로등을 즐기며 산책하던 우리나라의 자전거 도로와는 많이 다르다. 다리 밑의 그늘에 앉아 준비한 물로 목을 축인다. 앞쪽에서 웃통 벗은 조깅족이 한 명. "하이!" 이곳에서도 사람 보기 힘들다. 대신 사람만 만나면 최소한 미소는 지어준다. 날씬한 자전거에 몸의 선이 다 드러나는 옷들을 입고 줄지어 달리는 동호회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인구 밀도가 낮아서 그런 듯, 넓은 땅 덩이 많이 부럽다.


돌아오는 길. 길이 끝난 것이 아니다. 단지 일흔이란 숫자가 자전거 바퀴를 놓아주지 않을 뿐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양 쪽 어디에도 빌딩은 보이지 않는다. 이층 이상의 높은 건물은 짓지 않는 모양이다. 이곳은 LA카운티의 다운타운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한적한 주택가. 미국은 상가와 주택가의 구분이 엄격하다. 주택가는 고층 건물이 없다. 그래서 영화  "라라랜드"의 명장면 중 하나인 그리피스 천문데에서 다운타운까지의  멋진 야경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 그래서 이곳은 레저 외에 이동용 자전거는 거의 없는 듯. 다시 한번 부럽다. 위로 갈 필요가 전혀 없는 땅덩이.


길 옆의 가로수 그늘에 앉아 다시 물 한 모금. 한 가족인 듯한 세 명이 함께 라이딩. 개인주의인 미국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당연히 미소와 함께 "하이"


양쪽의 언덕 위, 이층 집들이 즐비하다.  하얀 집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의 노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비키"의 노래던가? "언덕 위의 하얀 집..." 내 개인적으로 가장 부러운 것은 이것이다. 조그만 집들 위로 보이는 티 하나 없는 푸른 하늘.  그리고 저 멀리는 하얀 구름. 기억조차 희미한 그림 같은 풍경이다. 공해나 미세 먼지 걱정은 하나도...


라이딩이을 마치니 집 앞에 카페가 보인다. 혼자 앉아 커피 한 잔은 아직 익숙지 못하다. 그냥 집으로.

시원 섭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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