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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철 Dec 27. 2023

체육관 샤워실 풍경

물 부족 국가

일요일 오전 11시. 오늘은 휴일이라 늑장을 부린 관계로 운동이 좀 늦게 끝났다. 나른한 다른 표현으로 기분 좋은 피로와 함께 샤워장으로. 간단히 몸만 씻고 이용객이 별로 없는 사우나실로.  역시 나 혼자다. 은퇴한 나의 소확행 중 하나. 10분 정도 운동 후의 엔도르핀을 즐기고 땀을 씻는 중 젊은 관원의 샤워장 입장.

같은 남자라도 눈이 가는 몸이다. 과유불급과는 거리가 먼 알맞은 근육질 몸매. 역시 젊음은 좋은 것이여.

나도 모르게 부러움에 눈이 자주 간다. 나? 일흔 넘은 결혼 40년의 은퇴자. 동성애니 게이니 이런 말조차 몰랐던 건강한 남성이다. ㅎㅎ


샤워기의 물을 끄고 면도. 다시 뜨거운 물을 맞으며 비누칠. 그런데 앞자리의 그 몸매 좋은 청년이 물을 끈 채  비누칠을 하고 있다.  다른 곳을 보니 제법 연세가 있으신 분도 물을 끄고 계신다. 나도 얼른 물을 끄고 수건에 비누를 묻힌다. 두 분 다 그냥 이 체육관의 관원이다. 몸매 좋은 젊은이도 체육관의 직원이 아니다. 근육량이나 태닝 하지 않은 복근이 프로가 아닌 몸매 가꾸는 건실한 청년이 분명하다. 별다른 주의 사항도 없는데!


나도 제법 모범적인 노인이라 자부했는데...  곧 복귀하는 복지관 체력단련실의 샤워장에는 "면도 시에는 물을 꺼주세요." 란 글이 붙어 있다.  나는 그 말은 꼭 지켰다. 면도할 때는 물을 끄고 운동 후의 나른한 몸은 뜨거운 물을 맞으며 비누칠하며 풀었는데 이젠 이 즐거움도 끝이다.




중동 건설 현장을 다녀온 형들에게 들었던 말.

"물이 석유보다 더 귀하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 느낄 수 없던 말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미국 여행을 다니면서 실감했다. 

미국은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석유 채굴기들을 볼 수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석유를 퍼 올리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반면 미국 서부는 열대 사막 기후다. 물탱크의 물로 식물들을 키우고 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후버댐의 물로 물탱크를 채우는 게 아닌가 추측.


희소가치란 말이 없다면 공기와 물이 다이아몬드보다 몇 만 배의 값이 나가는 게 아닐까.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란 말을 들었다. 물 쓰듯 쓴다는 말은 없어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었다. 복지관 공사도 끝나고 다음 주부터는 그곳으로 운동을 간다. 코치에게 샤워실의 주의 사항을 고쳐야 한다고 말해야겠다. 

"면도와 비누칠할 때는 샤워기를 잠가 주세요."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그 젊은이가 머리를 말리고 있다.  얼굴이 그렇게 잘 생겼을 수가 없다.

오늘은 운동 후의 기분이 다른 날 보다 몇 배나 좋다. 


콧노래 흥얼거리며 문을 나서니 체육관 앞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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