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버댐과 그랜드 캐년
우리 어릴 때 "애리조나 카우보이"란 노래가 있었다. 고 명국환 가수가 부른 노래.
"카우보이 애리조나 카우보이 광야를 달려가는 애리조나 카우보이..."
그 애리조나를 향하여 말이 아닌 차를 달리고 있다. 시속 100M, 160km.
여기는 네바다주다. 그 끝. 애리조나 주와 만나는 곳에 후버댐이 있다. 그리고 다음이 오늘의 최종 목적지 그랜드 캐년이다.
황량하다. 미국의 서부는 사막 기후이다. 차도 많이 다니지 않는 도로 옆으로 선인장 종류의 마른 풀만 보이는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런 시골길에 오면 미국 차들이 가끔 보인다. 포드와 GMC. 우리 어린 시절은 미국이 자동차 왕국이었다. 내가 군 생활 할 때만 해도 군대 트럭은 거의가 GMC였다. 지금의 미국은 도요타와 혼다 등 일본차가 가장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 현대와 기아차들도 꽤 많이 보인다. 억울하다. 일본은 전범국인데... 대한민국 분발해야 한다.
미국 자동차 사업이 어쩌다 이렇게 몰락하다시피 된 건지 모르겠다.
물론 미국의 부자들은 슈퍼카를 탄다. 그것들은 대도시에서 보이고 이런 시골길은 일제와 현기차가 많이 보인다는 의미다. 그 슈퍼카도 미국산은 아니다. 대도시에서는 미국의 포드나 GMC를 본 기억이 없다.
미국의 서부는 고속도로가 무료다. 톨게이트도 휴게소도 없다. 달리다 마을이 보이면 그냥 들어가면 된다.
터미네이트란 영화를 보면 끝없는 황량한 길에 쓸쓸한 마을들이 나온다. 쓸쓸함과 황량함 그리고 약간의 무기력함이 보이는 그런 마을에 주차. 간단히 요기를 했다. 황량한 식당에 피로한 모습으로 햄버거를 삼키는 사람. 이것 또한 미국의 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 나는 지금 너무 관광지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미국의 한 단면만 표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후버댐에 도착하니 가슴이 탁 트인다. 크다! 중국의 만리장성과는 또 다른 감동이다. 이건 높이에서 오금이 저린다.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이곳은 이미 관광지가 된 지 오래다.
네바다주와 애리조나주의 경계에 위치한 후버댐. 그 유명한 미국의 대공황 극복 방법의 하나로 세워졌다는 후버댐. 이것 때문에 사막 한가운데 라스베이거스가 생길 수 있었다. 후버 대통령의 이름이지만 대공황 당시의 최고 책임자. 그 때문인지 재선에 실패하고 그 유명한 4선의 루스벨트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었다.
기후 변화 때문인지 21세기 들어 물이 많이 줄었단다. 그 웅장함 때문이겠지만 영화에서 많이 본 곳이다. 트랜스포머 1에서 로봇들이 싸우던 곳, 재난 영화인 샌앤더레아스에도 이 후버댐이 붕괴하는 장면이 나온다. 화면상에서 보는 것보단 몇 배나 웅장하다.
높이 221m, 길이 379m 숫자로는 실감이 나지 않지만 실제 보면 엄청나다. 한 때 달에서도 보인다는 소문이 돌던 후버댐이다. 과장이라 판명 났지만 어쨌든 대단한 구조물이다. 감탄하는 사이 성조기가 보인다. 후버댐 기념비석이다. 대공황 극복과 캘리포니아 남부의 농업용수, LA와 라스베이거스에 물과 전력을 공급한다는 후버댐. 이 어마무시한 댐 건설을 계획한 사람들과 그것을 이루어낸 사람들을 찬양하는 글이 비문에 새겨졌다는데 영어 울렁증 있는 나는 딸의 해석만 들었다.
"우리나라의 국기가 이곳에 게양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이는 황량한 땅을 비옥하게 만들겠다는 비전에 영감을 받아 이 위대한 사업을 구상한 이들과,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든 다른 이들의 천재성과 노력에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다."
대략 이런 의미다. 성조기와 비문을 함께 담을 수 없다. 그만큼 성조기가 높이 달려있다. 미국의 자긍심이리다. 비문을 배경으로 한 컷!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 했던가. 그 옆에 압자일렌 포즈를 취한 조형물이 있다. 이곳 건설에서 가장 위험한 일을 담당했다는 고공 노동자들의 헌신을 기리는 조형물이다. 221의 높이. 머리로는 계산이 안 된다. 그런데 그 높이를 눈앞에서 보면 어떤 암벽보다 더 아찔하다. 암벽 등반과는 또 다른 느낌. 고소공포증을 느낀다.
그런 절벽을 폭약으로 폭파하며 손으로 깎아내 만든 후버댐. 실제 이곳에서 100여 명의 사망 사고가 있었다 한다. 이 고공 노동자들이 진짜 영웅들이 아닐까 한 생각.
한 때 비틀스보다 더 좋아했던 미국 락 그룹 C.C.R.
그들의 노래에 "누가 이 비를 멈추어 줄 것인가"라는 노래가 있다.
그 가사의 한 부분. 이 부분이 이 노래의 핵심이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한 뉴딜 정책은 황금 사슬에 묶여있다." 란 구절이 있다.
대공황 극복의 부작용을 담은 노래다.
물론 후버댐 건설은 뉴딜 정책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이 사업은 루스벨트가 아닌 후버 대통령이 시작한 사업이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같은 사업이라 하겠다. 그 부작용.
C.C.R은 뉴딜 정책의 혜택의 불공정한 분배와 배금 사상에 물들어가는 인간 군상을 경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좀 더 공평한 세상! 참 좋은 말이다.
하필이면 일본년이냐? 친구들과 이런 말들을 하며 일본계 "오노요꼬"와 결혼한 존 레논을 원망하며 신용과 맑은 물의 재생이라며 한껏 즐겨 듣던 C.C.R. "크리던스 크레어 워러 리바이벌"
여행은 반 세기도 넘게 시간을 되돌리는 타임 머신 기능도 있는 모양이다.
다시금 황량한 미국 시골길이다. 여기서 4시간을 달리면 사우스 그랜드 캐년이다. 지금 달리는 이곳이 애리조나 주다. 카우보이는커녕 목장은 보이지도 않는다. 100마일로 차를 고정시키고 달리니 많은 차들이 앞으로 달려 나간다. 황무지, 사막, 차로 달려도 지겨운 이곳을 개척시대의 미국인들은 말로 달렸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란 생각. 바이킹 해적의 후손들이라 그런가? 목장이란 말도 붙이기 어려울 정도의 검은 소 몇 마리와 말들도 보이고 침엽수들이 나타나는 것이 그랜드 캐년이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내일은 그랜드 캐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