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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덕 식당 김경민 대표 인터뷰 1

팔덕 식당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네, 안녕하세요. 저는 팔덕 식당에서 근무하고 있는 대표 머슴 김경민이라고 합니다. 


가게에 마이크가 있는 특이한 팔덕 식당의 김경민 대표


-바로 이런 질문을 드리기가 조금 그런데 혹시 한 해 연매출을 얼마나 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 첫 질문치 곤 전혀 예상치 못했지만 말씀드릴게요. 1년에 테이블 11개짜리 가게에서 일 인분에 만 삼천 원짜리 등갈비를 팔아서 20억의 매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궁금한 게 있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매출이 코로나로 인해 작년보다 떨어진 매출인가요?

:올해가 끝나지 않아서 올해 연매출은 아직 저도 모르고요. 상반기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코로나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팔덕 식당의 매출은 오히려 올랐습니다.


-그럼 이제 차근차근 시작을 해보죠. 제 주위 사람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어떻게 팔덕 식당을 창업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합니다.

:일단은 누구나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큰 회사를 대학 졸업하고 다녔습니다. 3년 다녔지만 제가 일하는 노력에 비해 월급이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껴 쓰는 게 싫었습니다. 아기 기저귀 값이나 퇴근하고 치킨 한 마리를 시켜도 돈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싫었습니다. 아파트 전셋값부터 해서 들어가야 할 돈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래서 사표를 쓰고 더 큰돈을 벌기 위해 창업을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러고 가족과 시골로 내려가서 한 식당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전수창업이라는 형태라 급여가 직장 생활을 통해서 받던 돈 보다 훨씬 작게 주셨습니다. 가족도 부양을 해야 하고 창업 자본도 필요해서 일이 끝나면 야간에 웨이터 생활도 하고 대리운전도 하면서 버텼습니다. 9개월 동안 매일 거의 2시간씩 잔듯합니다. 웨이터 생활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https://youtu.be/5TODoPISpyk


https://youtu.be/Kd4h5frulz4


-그런데 하고 많은 창업 아이템 중에 왜 외식업을 선택했나요? PC방도 있고, 화장품 가게도 있고 아이템을 많잖아요. 

: 대학교 때 떡볶이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 보통 상가에 있는 그런 가게는 아니고요. 아파트에 마을장처럼 밖에서 여러 가지 음식들을 파는 게 있습니다. 거기서 떡볶이를 판매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일이 매우 간단했습니다. 소스나 떡이 본사에서 오고 전 그냥 쉽게 만들어서 판매만 하는 일이었죠. 그래서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아예 제가 그 가게를 인수를 했습니다. 규모는 매우 작지만 창업이었죠. 부모님에게 약간의 돈을 빌려서 시작했습니다. 물론 나중에 다 갚았죠.


대학을 다니면서 사실 한 달에 300만 원 정도를 벌었습니다. 대학생치곤 용돈이 엄청나게 많았었죠. 그러면서 내가 외식업에 소질이 있구나를 느꼈었습니다. 전공도 식품공학과였던 터라 식품에 대한 디테일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음식을 먹으러 다녔던 식당들이 일정한 맛을 내기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제가 하면 잘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팔덕 식당에서만 파는 팔덕 막걸리를 마시는 김경민 대표


-그러면 대학 때 운영했던 떡볶이 집의 성공 비결은 맛에 있었나요?

:지금 생각해 보면 맛보다는 첫 번째는 영업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객들에게 항상 웃는 모습으로 대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에 장이 열렸을 때 들어가려면 부녀회장님들께서 업체 선정을 하시는 데 제가 그런 부분은 정말 잘했습니다.


두 번째는 깔끔함과 편리성이었죠. 절대 지저분하게 보이지 않고 위생적이게 보이기 위해 많이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포장 기계로 금방 제공을 해드려서 많이들 편하게 구매를 하셨습니다. 


-지금 팔덕 식당을 운영하는 데 대학 시절 떡볶이집 운영이 많은 도움이 되었나요?

:개인적으로는 크게 도움이 된 건 같진 않습니다. 그냥 내가 외식업에 소질이 있구나 정도지 직원과 직접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건 전혀 다른 것 같습니다.


-정말 도움이 된 게 없나요?

:다시 물어보시니 지금 떠오르는 걸 말씀을 드릴게요. 이거 하나는 제대로 배웠습니다. ‘아르바이트 생들은 언제든 도망갈 수 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창업을 했던 거라 수업도 들어야 해서 아르바이트생을 썼습니다. 그런데 종종 그냥 사라지는 아르바이트 생들이 있어서 떡볶이 파는 곳에 제 전화번호를 아래에 붙여뒀었죠. 

기억나는 일화는 수업을 듣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아르바이트생이 없다는 고객의 전화였습니다. 그냥 사라진 거죠. 그래서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고 수업 중간에 나와서 떡볶이를 팔았었습니다.


-다시 시골에서 창업자금을 모으면서 음식을 배우던 시절 이야기를 더 물어볼게요. 그때 하루 일과가 어땠나요?

:일단 일을 배우는 식당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12시간씩 근무를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고기를 받고 해동하고 써는 걸 배우려면 아침 8시까지는 출근을 해야 합니다. 사실 배운다기보다는 형들이 하는 걸 어깨 넘어서 볼 수가 있는 거죠.  식당은 그래서 아침 8시에 가서 저녁 10시까지 14시간씩 일을 했습니다. 


팔덕 식당에선 이 등갈비를 팔고 있습니다


-그래도 쉬는 시간은 있지 않았나요?

:아니요. 정말 없었어요. 정말 장사가 잘되는 가게였거든요. 밥을 먹다가도 손님이 오시면 일어나서 손님을 받아야 했습니다. 밥도 거의 마시다시피 했습니다.


-아무튼 그러면 10시가 되면 집에 가는 건가요? 가족이 기다리는?

:못 가죠. 그 당시에는 정말 모아둔 돈이 거의 없었습니다. 창업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유흥주점에서 웨이터 생활을 했습니다. 식당에서 10시에 퇴근을 하면 정장을 갈아입고 유흥주점으로 출근을 하는 거죠.


-중간에 잠시 눈 붙이고 이런 거 없이요?

:네, 그냥 일 마치면 바로 가야 했어요. 그 당시에는 배에 고무줄을 차고 다녔는데. 졸리면 일부러 고무줄을 당겨서 배에 통증을 느끼게 했죠. 잠을 깨려고요.


-그럼 몇 시까지 일하는 거예요?

:밤 10시 30분부터 새벽 5시 30분까지요. 쉬는 날 없이요. 하루에 1시간 반에서 2시간씩 밖에 못 잤어요. 9개월 동안이요. 그래서 지금 나이가 33살인데 얼굴이 이래요.(정말 인터뷰에서 이렇게 표현을 했다.)


-그렇게 했던 게 창업 비용 얼마를 벌기 위해 그렇게 노력을 한건 가요?

:6천만 원을 벌기 위해서 그렇게 한 거죠.


-그런데 지금 물론 좋은 결과를 만들었지만 성공을 위해 노력하면서 하루 1시간 반에서 2시간을 잤던 경험들이 사람들을 대할 때 영향이 있지 않나요? 나는 성공하기 위해 잠을 거의 자지 않고 버텼는데 누군가가 입으로는 성공하고 싶다고 외치면서 잘 거 다 자면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 솔직히 무슨 생각이 드나요?

: 만약에 그 사람이 엄청 똑똑한 사람이라면 잘 거 다자면서 성공을 바라도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와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진 않죠. 그러면 본인이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가진 게 젊음과 시간밖에 없다면 이걸 최대한 이용해야죠. 젊음이 주는 에너지와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데 잘 거 다 자면서 기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거 아닌데.'라는 생각은 듭니다.


-근데 너무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잘 거 다자면 성공하기 힘들다.'라는 선을 만들어 놓은 거 아니에요? 

: 아니라고는 말을 못 하겠어요. 하지만 선생님들이나 회사 사장님들도 보면 각자 만의 기준이 있어요. 전 제 나름대로의 가치관이 있고요. 저는 제 스타일을 지금 당장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채용할 때도 저의 스타일을 따라와 주는 친구들을 선택합니다. 


팔덕 등갈비와 항상 함께 나가는 메밀전


-시골 생활이 끝나던 날이 기억나세요? 잠도 못 자면서 일 배우고 밤새워 돈 버는 순간이 끝났던 날이요. 창업을 위한 목표금액을 다 채운 그날. 

:네. 당연히 기억나죠. 안양으로 다시 올라오기 위해 이삿짐센터를 예약을 했고요. 혼자 엄청 울었어요. 앉아서.


-왜요? 어떤 부분이 제일 힘들었어요?

: 그동안 시골 생활하면서 사실 되게 서글펐었거든요. 나름대로 4년제 대학 나왔고. 좋은 회사를 다녔고. 인정을 받아서 스카우트도 됐었고 했는데. 룸살롱 가면 손님이 만 원짜리 던져주면서 '담배 사와'. 이러고. 술이 만취한 사람들이 가끔은 저에게 아무 이유 없이 술병도 던져요. 이렇게 생활하다 보면 되게 서글퍼요. 그런데 그 감정을 조절하고, 그다음 날에 가게에 나가서는 또 열심히 또 14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하죠. 또 그 생활이 반복이 되다 보니까 혼자 엄청. 약간 고립감 같은 거에 많이 빠졌었어요. 그리고 이제 창업을 할 수 있는 돈 6천만 원을 채우고 나서 울었어요. 혼자 앉아서. 방에서.


-창업 자금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 힘든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나요?

:아. 그때 아침마다 사실 운동도 30분씩 꼭 했었어요.


- 솔직히 저는 '미쳤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잠도 못 자는데 운동까지 했다고요?

:왜냐하면 체력이 뒷받침이 안 되면 잠을 못 자면서 버티는 삶을 유지하지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롤링 머신을 아침에 무조건 30분씩 했어요. 앉아서 하는 운동이라 늘 강연 영상을 틀어 뒀죠. 그때 본 영상들이 많은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아요.


-봤던 영상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강연 내용이 있나요? 힘든 시기를 버티게 만들어 줬던.

: 이은덕 대표님의 영상이었는데요. '강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문구가 와닿았어요. 제가 혼자 그걸 네 글자로 줄여서. 앞자만 따서 '강(한) 정(신이) 육(체를) 지(배 한다)', '강정 육지', '강정 육지'.라고 몸이 힘들 때 주문을 외우듯이 이 네 글자를 조용히 외쳤죠. 빨간 펜으로 손등에 써놓고 일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궁금하게 생겼습니다. 저는 2시간씩 자면서 창업을 준비할 자신이 전혀 없어요. 그럼 저 같은 사람은 외식업을 하면 안 되는 건가요? 

: 네, 안 돼요.


-너무 단호하신 것 아닌가요? 

:편하게 말씀드릴게요. 제 생각은 부모님이 재정적으로 든든히 지원을 해줍니다. 그리고 외식업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있다면 굳이 저처럼 잠을 거의 안 자면서 창업을 준비할 필요는 없겠죠. 그래도 어쨌든 창업 후는 똑같은 상황을 부딪히게 되겠죠. 저는 창업하고 첫 6개월 동안 하루에 30분씩 잤던 것 같아요. 쉬는 날 없이요.


팔덕 등갈비를 김경민 대표는 늘 도자기와 같은 작품으로 이야기한다


-진짜로 하루에 30분씩 잤다고요?  

:전에 강연에 부모님이 이 이야기를 할 때 뒤에서 우시는 모습이 기억나요. 가게에 CCTV가 있는데 두 분이 보실 수가 있거든요. 자다깨다하시면서 보시는데 제가 가게에 계속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나보고 도대체 집에 언제 가냐고 물어보셨죠. 엄청 걱정이 되신 거죠. 저는 안 간다고 이야기했죠. 가게를 처음 차려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하면서요. 


-안양에서 창업을 하겠다고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냥 고향이라서요. 태어나고 자랐던 곳이라 모든 게 익숙한 곳이죠.


-창업을 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였습니까?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총 8천만 원이요.


-8천만 원이요? 사실 그 돈이면 상권이 많이 발달한 번화가에서 권리금도 안 되는 금액인데요. 그러면 처음부터 입지가 좋은 곳에서 창업이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계신 거네요. 하지만 자신은 있었고요. 

:그렇죠.


-안양에 있는 팔덕 식당은 실제로 매우 외진 곳에 있습니다. 그런 외진 곳에서 시작을 하면서 잘될 거라는 자신은 어떻게 생긴 건가요?


: 그 당시에 백종원 대표님이 나오시는 3대 천왕이라는 프로그램이 되게 유행을 했었어요. 그런데 방송에 나오는 음식점들을 보면 다 외지에 있는 거예요. 번화가 한 복판에 있는 가게들이 아니라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그런 곳이죠. 건물도 한 2, 30년 정도 된 그런 옛날 골목에 자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외지에 있어도 엄청 맛은 있으니까 사람들이 찾아가는 거죠. 제가 맛집 탐방하는 것도 되게 좋아했습니다. 예전에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 나 맛집을 찾아다니면 항상 맛있는 집들은 오랫동안 장사를 한 느낌이 나는 곳들이 대부분이었죠. 그래서 제가 차리고 싶은 가게는 비록 번화가는 아니지만 노포 같은 느낌이 나는 곳이라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있으니 잘될 거라고 생각을 한 거죠. 축구게임을 하다 보면 선수들을 능력들을 그래프로 표시를 합니다. 아무리 축구를 잘하는 선수도 모든 능력을 다 갖출 수는 없어요. 공격 능력이 정말 뛰어나도 수비 능력은 조금 떨어질 수도 있거든요. 입지가 조금 불리해도 맛있고 멋진 식사 경험을 제공하면 충분히 될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가게 계약을 직접 가본 것도 아니고 보증금과 월세만 보고 결정했죠.


-인터넷만 보고 바로 결정을 했다는 게 조금 무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부모님이 가셔서 계약하셨습니다. 창업 자금을 마련하던 시골에 있던 시절이라 제가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서 창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죠.


-그곳 보즘금과 월세는 얼마였나요?

:보증금이 천만 원이었고 월세가 백만 원이었습니다. 


-그럼 창업자금 8천만 원을 어떻게 썼는지 한 번 볼게요. 8천만 원 중에 천만 원을 보증금으로 썼습니다. 나머지 7천만 원을 어디가 쓰셨나요?

:일단 인테리어 비용에 6천만 원 정도 썼습니다.


-6천만 원이요? 가게를 직접 가 본 사람으로서 6천만 원이 들어간 인테리어가 아닌데요?

: 음식점을 안 해본 사람 표가 확 나네요. 생각보다 식당을 차리는 데 이것저것 많이 들어갑니다. 제가 말한 인테리어는 단순히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에 관한 금액이 아닙니다. 집기류나 간판 등이 다 포함된 가격입니다. 간판 다는 데만 5백만 원이었어요. 제가 특별히 간판에 큰돈을 들인 이유가 있습니다. 팔덕 식당 위치가 사람이 다니지 않는 정말 외진 곳에 있습니다. 사실 밤 되면 무섭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제가 시청에 전화해서 여기 전봇대를 세워 주세요 한다고 처리해 주진 않죠. 그래서 지금 간판을 보시면 아시다시피 빨간색으로 엄청 큽니다. 흰색 조명을 엄청 길게 넣었죠. 그리고 나머지는 아버지와 직접 다 작업을 했습니다. 인수한 장소가 24년 동안 장사를 한 곳입니다. 직접 가서 보니 너무 심각한 거네요. 기존에 있던 것들을 거의 다 버렸어요. 타일도 다 뜯어내고 썩은 것도 다 제거하고.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직접 한 거예요. 돈이 없으니까요. 다행히 아버지가 이런 부분에 도움을 주실 수 있으셔서 돈이 많이 절약되었어요. 인테리어 업체를 불러서 진행했다면 몸은 편했겠지만 돈이 훨씬 많이 들었겠죠. 물론 아버지가 제가 할 수 없는 전기나 수도 같은 중요한 부분은 기술자 분들을 다 따로 불러서 돈을 절약했습니다. 


-식재료 비용은요?

:8천 중에 보증금 천만 원, 인테리어 6천만 원 빼고 남은 천만 원으로 식재료를 샀죠.


-대망의 오픈 날이 다가왔습니다. 팔덕 식당에 세상에 처음 나온 날짜 기억나세요?

:바람이 꽤나 차갑게 불던 2월 22일입니다.


팔덕 식당 초창기 모습


-오픈할 때 기분이 어땠어요?

: 그때는 좀 파이팅에 차 있었죠. 아, 드디어 내 가게가 열렸다.


-자, 이제 가게가 열렸습니다. 첫날 매출 기억나세요?

: 첫날 매출이 3백만 원이 조금 넘었어요.


-네? 첫날 매출이요? 일 매출이 3백만 원이었다고요?

: 진짜로 첫날 매출이 3백만 원이 넘었어요.

 

-이유는요? 광고를 어디 비싼 곳에다가 했나요? 페이스북 맛집 페이지 이런 곳에 다가요.

: 오픈 전에 제가 발로 뛰면서 광고를 조금 많이 했어요.


-그럼 이제 그 이야기를 좀 들어봅시다. 그럼 오픈하자마자 3백만 원이. 솔직히 말해서 말이 안 돼요. 정말 많은 금액이에요.

: 저도 큰 금액인 거 알아요. 지금 팔덕 식당 가맹점 중에 최고 매출을 판매하는 곳들도 하루에 3백만 원을 못 팔아요.


-자, 그러면 어떻게 오픈 첫날 테이블 11개로 3백만 원의 매출을 했는지 비결을 알려주세요. 저도 엄청 궁금합니다.

: 상황이 있는 돈을 거의 다 쓴 상황이라 광고비로 많이 쓸 수가 없었어요. 인테리어 하고 식재료비 쓰고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택을 한 게 전단지였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죠.


그런데 대부분 전단지 광고를 주면 사람들이 안 받습니다. 귀찮아서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혹시 받아도 그냥 버리죠. 제가 회사 다닐 때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했습니다. 제 기억에 양꼬치집을 했다고 전단지를 주시던 분이 계셨어요. 아르바이트하시는 분이셨던 것 같은데 친절함이라곤 하나도 없었죠. 그냥 "전단지요. 전단지요" 이러면서 정말 나눠 주시더라고요. 전단지 내용도 눈에 띄지가 않아요. 개업 날자, 메뉴, 가격, 위치가 담긴 약도, 행사 서비스 안내 등 정말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어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정보들은 철저하게 음식점 주인이 알려주고 싶은 정보들이구나. 저는 고객들이 관심을 갖는 건 철저히 그들에게 도움 되는 내용이어야 한 번이라도 꼼꼼히 읽어 볼 거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 말씀 중간에 죄송한데요. 일단 개업하기 얼마 전부터 광고를 시작한 거예요?

: 한 달 전쯤부터 시작을 했어요. 제가 돌린 전단지가 4만 장이었습니다. 혼자서요. 잠을 안자고요. 개업하기 전까지 할 일이 너무 많았어요. 잠을 줄여서 시간을 확보할 수밖에 없었어요.


-전단지는 어떻게 나눠주셨나요?

:고객들이 어떤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까? 어떻게 줘야 이걸 받을까?를 계속 고민했어요. 계속 뿌리다 보니 전단지를 통해서 팔덕 식당을 알고 최종 방문하기까지의 패턴이 보이더라고요. 


일단 전단지를 나눠줍니다. 그리고 안 버리고 일단 소지해서 읽어보게 만들죠. 그러고 전단지 내용이 끌리면 가지고 있다가 식사를 하러 방문해 주시죠. 매우 간단하죠. 그런데 또 그렇게 너무 간단한 것도 아닙니다. 일단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전단지를 일단 받을까를 고민했습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더라고요. 매우 친절하게 파이팅 넘치게 드리면 일단은 대부분 받으시더라고요. 1월에 전단지를 뿌리면 한 겨울이잖아요. 사람들 많은 출근길 신호등 길에서 흰색 메리야스를 입고 전단지를 나눠드렸죠. 한겨울에 젊은 사람이 흰색 메리야스를 입고 "안녕하십니까. 등갈비 파는 김경민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인사드리면서 나눠드렸습니다. 


-사람들이 전단지를 많이 받으셨을 것 같아요. 신기하기도 해서요.

:많이 받으셨어요. 한 겨울에 저희 열정을 감사하게도 좋게 봐주셔서요. 그런데 문제는 일단 받으시고 많이들 그냥 버리셨어요. 저의 목적은 전단지를 나눠드리고 그걸 사람들이 보관 후 가게가 오픈하면 방문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그냥 다들 버리셨어요. 어떻게 하면 전단지를 보관하게 할까 하고 또 고민을 했어요. 일단 제 직장생활 당시 출근길을 떠올려 봤어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아침을 먹지 못할 것 같았어요. 피곤한 직장 생활로 아침식사 대신 조금이라도 더 자는 걸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 같았어요. 일단 저도 그랬으니까요. 간단히 출근길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나눠주면 어떨까라고 생각을 하다가 떡을 떠올렸어요. 시루떡은 뭔가 퍽퍽하고 음료수가 필요할 것 같아서 꿀떡을 나눠주면 그나마 더 괜찮을 거라고 생각을 했죠. 그래서 꿀떡을 세말씩 사 가지고 쿠킹포일에 말았죠. 만 다음에 전단지를 한 번 감았죠. 이건 가족의 도움을 받았죠.


근데 이 꿀떡과 함께 드리는 전단지도 버리셨어요. 받기만 하고요. 전 당연히 엄청 좋아질 줄 알았는데 실망이 컸죠. 


-꿀떡을 그냥 버리신다고요? 전 매우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그냥 버리시더라고요. 곰곰이 생각을 해봤죠. 제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어요. 고객 입장에서 보면 검증이 안된 음식이에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이 나눠 주는 떡이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디서 사 왔는지, 얼마나 보관을 했을지 전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버렸겠죠. 그래서 사람들이 이 떡이 믿을 수 있다고 확신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멘트를 바꿨습니다. 


빛이 나는 김경민 대표. 도대체 왜 이러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등갈비 파는 총각 김경민입니다. 요즘에 누가 개업하면 시시하게 시루떡 돌립니까? 저는 오늘 하루 달달하시라고 꿀떡을 준비했습니다. 당일 뽑은 꿀떡입니다."


그리고 신선한 떡이라는 믿음을 더 주기 위해 따뜻한 촉감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보온 통에 넣었다가 따뜻하게 나눠드렸어요. 딱 받으면 온기가 느껴지거든요. 당일 뽑은 떡이라는 멘트와 따뜻한 온기 때문에 이걸 먹기 시작하셨어요. 그러면서 버리지는 게 현저히 줄어들더라고요. 


전단지를 받게 하고 소지하게 만들기까지는 성공을 했습니다. 이제는 읽어봐야 하잖아요. 개인적인 경험에 누가 전단지를 나눠주면 일단 받고 바로 버리지는 않지만 대충 훑어보지만 별로 끌리는 게 없더라고요. 지금 길에 나가도 수많은 식당이나 헬스장 개업 전단지를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그냥 단순히 사람들은 전단지를 포함해서 하루에 수많은 광고를 접합니다. 하지만 정작 기억을 남기는 광고는 없죠. 아까 이야기드렸듯이 본인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내용을 담으려고 애초에 노력을 했었죠. 처음에 만든 전단지에는 그런 내용들이 없었어요. 남들과 똑같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담았죠. 그래서 전단지 내용을 수정을 했어요.


보통 메인 메뉴를 반값에 판매를 하면 일단 사람들은 구름같이 몰려옵니다. 싸게 파니까요. 그런데 반값 이벤트를 끝내면 안 와요. 반 값 주고 먹던 음식이 그냥 가격이 올라버리니 손해를 본다고 소비자들이 생각을 하는 거죠. 음식은 그대로인데 금액만 바뀌니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심지어 배신당하는 느낌도 들 수 있겠구나. 그래서 메인 메뉴가 아닌 다른 메뉴를 오픈 이벤트로 싸게 팔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술이나 음료수 중에 고민을 했습니다. 음료수는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할 것 같아서 술을 선택을 했죠. 


막걸리를 천 원에 판매할 생각을 했는데 왠지 이것도 뭔가 심심한 거예요. 사람들의 주목을 확 끌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죠. 유흥업소에서 일할 때 대기 시간이 가끔씩 생깁니다. 제가 따로 마케팅을 공부한 건 아니지만 그 시간에 내가 가진 생각들을 정리를 했어요. 일종의 기획안이죠. 그때 이것저것 적었던 것 중에 막걸리에 관한 걸 정리해 둔 게 있었어요. 처음부터 오픈 이벤트로 쓸려고 한 게 아니라 가게에서 같이 팔고 싶은 아이템이었죠. 


'청와대 만찬주로 유명한 대강막걸리'라는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충청북도 단양 쪽에 대강 막걸리라고 있습니다. 이게 고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에 청와대 만찬주로 쓰였죠. 그래 막걸리 포장지에 '청와대 만찬주'라고 되게 크게 쓰여 있어요. 청와대 만찬주라고 하면 그냥 막걸리가 주는 느낌보다는 청와대 귀빈들이 방문했을 때 대접하는 술이라는 느낌이 확 들잖아요. 원가랑 배송료를 계산을 하고 이 막걸리를 천 원에 파는 이벤트를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뭔가 매우 잘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우리 가게 메뉴, 약도 같은 걸 다 빼버렸어요. 그냥 '청와대 만찬주 소백산 대강막걸리 단 돈 천 원'이라고 큼지막하게 넣고 '네이버에서 팔덕 식당을 검색하세요.'라는 문구를 넣었죠. 


소백산 대강 막걸리


전단지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가게를 검색하는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전단지 광고 효과를 수치화하고 싶었어요. 네이버에서 '팔덕 식당' 키워드의 노출수나 클릭수를 매일 확인을 할 수가 있어요. 검색량이 계속 늘어나더라고요. 


-근데 오픈 전이라 검색을 해도 네이버에서 볼게 별로 없잖아요. 블로그 같은 곳에 전혀 올라올 게 없잖아요. 오픈을 한 것도 아니고요.

:일단 인테리어 하는 데는 한 3주 정도 걸렸고요. 진짜 빨리 끝나긴 했어요. 끝나자마자 가오픈을 했어요. 일반 손님은 받지 않고 하루에 열 팀씩 블로그 체험단 분들을 모셨죠. 그분들이 음식을 드시고 블로그에 팔덕 식당에 관한 내용을 올려주셨죠.


-가오픈 기간에 일반 손님을 받지 않은 이유가 있으셨나요?

: 식당 운영에 노하우가 아직 생기기 전이라 실수를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오픈을 하고 예상외로 손님이 많이 오시면 매우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고객들은 사장이나 종업원들이 실수를 하게 되면 식사 경험에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매일 오는 손님 중 한 분을 받는 거지만 어떤 손님은 본인 인생에 팔덕 식당을 딱 한 번 방문을 하실 겁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경험으로 저희를 판단하실 수밖에 없죠. 우리를 방문해 주시는 고객들에게 최대한의 만족을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해요. 


팔덕 식당 가맹점이 처음 오픈을 하면 홀직원 1일당 테이블 수를 최대 2개까지만 운영하라고 합니다. 테이블이 20개가 있어도 일단 처음 오픈을 하면 홀직원이 2명이면 테이블 4개만 운영하라고 합니다. 돈 벌겠다고 손님들 다 받으면 당장은 수익은 생기겠지만 만족하지 못했던 고객분들이 다시 찾을 확률은 거의 없어요. 

 

가오픈 기간에는 오로지 고객에게 어떻게 하면 최대한의 만족을 드릴까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오신 손님들에게 집중할 수 있어야 하고요. 음식이나 홀 서비스 등이 익숙하기 전이라 최대한 많은 직원이 작은 고객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매우 중요합니다. 작은 테이블을 운영하면서 방문해 주신 고객들을 100% 만족시키는 것이 진정한 가오픈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잠시 전단지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전단지는 계속 돌리신 거죠?

:전단지는 계속 돌리고 체험단 분들을 계속 받으면서 그분들이 꾸준히 블로그를 써주셨어요. 체험단 분들을 받으면서 그분들이 최대한 만족하실 수 있게 최선을 다했죠. 하루에 딱 10팀만 받았기 때문에 온전히 방문하신 분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체험단은 어디서 모집을 하셨나요?

:체험단을 모집해 주는 회사가 있어요. 그분들에게 의뢰를 드리면 블로그 써주실 분들을 보내주셨어요. 그분들이 꾸준히 써주셔서 일단 검색창에서 '팔덕 식당'하면 우리 가게 이야기들이 쭉 나왔죠. 저는 이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대학교 다닐 때 여자 친구와 어디 음식점을 갈 때 검색을 합니다. 검색 노출 상위에 뜬 것 중에 가고 싶은 곳이 보이면 그 가게 이름으로 다시 검색을 합니다. 검증하는 단계인 거죠. 제가 검색한 식당에 관한 후기가 블로그로 많이 보이면 아무래도 신뢰가 갔죠. 그래서 저도 최대한 우리 식당의 블로그 후기가 많이 쌓이길 바랐습니다. 


-대표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철저하게 본인이 옛날에 소비자로서의 경험을 매우 많이 활용을 한 것 같아요.

: 정말 많이 활용을 한 것 같아요.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의 입장이 아니라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왜 전단지를 안 받았을까? 왜 받고도 한 번 읽고 버렸을까? 전단지를 보고 왜 나는 그 가게를 찾아가지 않았을까? 이런 고객 중심의 사고방식이 매출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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