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 넘친 인천~세종 중앙노동위원회 심문회의
중앙노동위원회 가는 길은 험난했다. 내 잘못이다. 인천터미널에서 정부세종청사로 가는 버스가 시간당 1대는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
심문회의는 오후 3시 30분이었고 인천터미널에서 버스가 출발한 시간은 1시였다. 세종청사행 버스가 없어, 서대전IC행을 탔다. 내려서 곧바로 택시를 탈 계획이었다.
서대전IC 정류장에 3시 도착 예정이던 버스는 휴게소를 들러 3시 10분 도착했다. 정류장은 예상과 달리 대로 한복판이어서 택시 잡기가 어려웠다. 카카오콜도 잡히지 않았다.
그때. 택시 한 대가 좌회전을 앞두고 있었고 나는 손을 흔들었다. 택시기사는 "여기서 택시 안 잡혀요. 오늘 운수대통이네요"라고 말했다.
3시 반까지 어떻게든 가보겠다는 택시는 3시 40분 중앙노동위원회 건물 앞에 도착했다. 가는 택시 안에서 중노위 조사관에게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다. 급히 택시비를 지불하고 심판정으로 올라갔다.
'공익위원들이 혹시 지각했다고 불리하게 심판하는 건 아닐까?'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부당징계 및 부당노동행위 사건 심문회의가 시작됐다.
애초 이 사건은 기호일보가 내게 정직 4개월 징계를 내린 게, 인천노동위원회가 부당하다고 판정해 징계가 취소됐다.
이후 사측은 같은 이유로 다시 정직 2개월 징계했고 인천노동위는 부당 징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인천노동위 결과는 노조활동하면서 처음 맛보는 패배였다.
1년 전쯤 계약직 조합원 해직 사건 때, 중앙노동위가 부당노동행위를 기각했지만 애초 부당해고는 인정받아 복직했기 때문이다.
나는 ‘복직하고 다른 건으로 징계를 받느니, 중앙노동위에서 다시 한번 판단을 받는 게 낫다’고 애써 자신을 달랬다. ‘이 기간 다른 징계는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속은 미어졌다. 인천노동위 심문회의가 있는 2022년 10월 27일까지 나는 음주를 삼갔다. 그날 인천노동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저녁시간을 함께 해준 후원자이자 친구인 ‘정호’에게 감사한다.
인천노동위 결과는 오후 8시 정각 문자메시지로 도착했다.
문자메시지를 보여주자 정호는 나를 안아줬다. 기각 판정이 나와 속상한 게 아니라 그동안 행위들이 뇌리를 스쳤다.
인천노동위 최후 발언 때. ‘괜히 사측과 화해 의사가 있다고 밝혔나? 사측은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고압적 태도를 보였는데…’
‘정직 4개월 징계 취소 판정받을 때처럼 노조원들과 함께 있지 않아서 그런 건가?’ 등 생각으로 머리는 복잡했다. 술을 채우니 점점 잊혀갔다. ‘하루만 속상하자’라고 생각했다.
사실 2022년 10월 27일 편집국장이 고소한 명예훼손 사건을 조사받았다. 나는 이 조사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부당징계는 이미 기간이 만료되기도 했다.
결과가 나오자 이창호는 경제적 타격이 걱정됐다. 두 달간 빌린 급여를 한 달에 60만 원씩 갚고 있는 상황이었다. 과외수입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부당징계 판정이 나오면 돌려받을 임금상당액으로 빚을 갚고 책을 펴내려고 계획했는데, 차질이 생겼다.
기각 판정을 전해 들은 조합원들 역시 여러 감정이 스쳤다. 가장 처음 든 생각은 ‘납득하기 어렵다’였다. 징계 내용과 과정 모두에 결함이 있었기에 기각은 상상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조합원들은 가장 상심이 클 나를 걱정했다. 중노위를 가면 될 일이라고 서로를 위로하며 마음을 굳게 먹자고 다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상한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말이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함께라 행복해요. 지치지 않는 게 제 일이니까요.”
비슷한 시기 사무국장이 건강상 이유로 3개월 휴직했다.
중앙노동위 심문회의 참석까지 곡절이 있었지만 나는 심문회의를 잘 마쳤고, 결과가 뒤집혀 부당징계 판정을 받았다. 사측은 못 받은 임금을 지급했고 사무국장도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