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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이창호
Jun 26. 2023
종이신문 활용법
<숨 빗소리> 편집장 생태시 문학상 대상 수상을 축하하며
제가 <떠난이들>이라는 소설을 연재하는 웹 매거진 <숨 빗소리> 편집장인 허민 시인이 '제11회 평택 생태시 문학상' 영예 대상에 선정되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대상작품을 가만히 읽어보니, 제게는 이런 시구가 마음을 촉촉이 적시네요.
'낡은 집 바닥에 젖은 채 누워 한껏 페인트나 풀을 뒤집어쓰거나'
'먹다 남은 짜장면 그릇 따위 덮고 있을 줄 몰랐던 쓸쓸한 밤이다'
'노숙인의 유품이 되어 그의 마지막 겨울을 나의 마지막으로 덮게 될 줄 몰랐지만 마지막까지 나를 필요로 했고 나는 그의 외로움을 가려주었으니 조금은 괜찮았던 밤이다'
'그러니 독자여, 바닥을 뒹구는 내 마지막 보거든 지난한 밤을 기억 말고 대신 끝내 되고자 했던, 살고자 했던 내 푸른 문장들을 상상해 주길'
저는 허 편집장이 종이신문 활용법을 아름다운 시로 승화해 호평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구는 10여 년 동안 종이밥을 먹었던 저의 심금을 더욱 울리는 이야기들입니다.
2020년 10월 9일 한글날을 앞두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기자들끼리 서로 "너네 회사 빨간 날 신문을 발행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 해 한글날은 토·일요일과 연이은 월요일이라 더 관심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지역 언론사들은 빨간 날이어도 종이신문을 발행하는 게 관행이었습니다.
당시 A사는 종이신문은 안 찍고 인터넷만 발행한다고 했습니다. B사는 다른 신문사들 동향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A사가 방향을 바꿔 신문을 찍기로 했습니다. 이 소식과 함께 B사는 추가로 3개 회사가 종이신문을 발행한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B사는 한글날 신문을 찍지 않았습니다. 디지털미디어 강화 등 추세를 감안한 결정이었습니다.
당시에도 사실 한글날 신문을 찍네 마네 하면서 데스크 입에서 "한글날 신문 발행은 낭비"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2019년 7월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는 ‘온라인 기사 검색이 보편화됨에 따라 종이신문 활용도 및 병행 중인 전자스크랩으로 일원화해 비용·행정력·자원 등을 절감하고자’ 한다며 19개 종이신문을 절독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연간 약 2천300만 원이 절감된다고 하면서, SL공사답게 ‘자원’을 절감한다는 취지와 맞는 결정이었습니다.
허 편집장 시구에 나오는 활용법처럼 어느 날 제 친구는 신문 좀 가져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신문은 웬일로 보냐"라고 묻자 친구는 "삼겹살 구워 먹을 때 깔려고 한다"라고 했습니다. 또 "창문 닦고 생선 구울 때 프라이팬 뚜껑으로도 쓴다"고요.
저는 친구에게 며칠 지난 신문 20부 정도를 갖다 줬습니다. 당시 신문값은 1 부당 600원이었으니 1만 2천 원치였습니다.
2016년 5월 전북일보는 신문지 활용법 카드뉴스를 만들었습니다.
냄새나는 신발에 구겨 넣고, 유리창을 닦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깔고 신문 가운데를 도려내 먹을 때 앞치마로 씁니다. 택배 완충재 활용과 신문지를 말아 야구를 한다 등이었습니다.
마무리는 ‘역시 종이신문의 가장 큰 재미는 읽는 맛’이라며 끝냈지만 씁쓸했습니다. 디지털미디어 시대 종이신문의 아픔을 콘텐츠로 제작한 전북일보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저는 최근 종이신문을 찍는 회사에서 나와 SNS 등 디지털미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뉴스하다>라는 매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허 편집장의 대상작품을 보니 당시 생각이 떠올라, 노트북을 폈고 다시 편집한 이 글을 허 편집장에게 헌정합니다. 당선을 축하합니다. 아래는 허 편집장 대상작품 <신문지의 노래>입니다.
신문지의 노래
허민
나를 스쳐간 독자여
지나온 생을 되돌아보는 밤이다
구멍 난 가슴 한쪽 스스로를 위한
작은 부고 기사 하나 실어보지 못하고
결국 이렇게 끝을 맺는 밤이다
낡은 집 바닥에 젖은 채 누워
한껏 페인트나 풀을 뒤집어쓰거나
먹다 남은 짜장면 그릇 따위 덮고 있을 줄
몰랐던 쓸쓸한 밤이다
노숙인의 유품이 되어 그의 마지막 겨울을
나의 마지막으로 덮게 될 줄 몰랐지만
마지막까지 나를 필요로 했고
나는 그의 외로움을 가려주었으니
조금은 괜찮았던 밤이다
생이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으니
내가 한 그루 푸르고 싱싱한 나무였을 적
한 여인이 내게 등을 기댄 채
텅 빈 하늘만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대답하지 못하는 내게 말을 걸기도 했지만
괜찮다, 나쁘지만은 않았지 생각한 밤이다
그녀를 위한 한 권의 인생이 되기 위해
빗방울의 손톱들을 삼키고
여러 날의 미치도록 거센 바람과
눈송이의 쌓여가던 무게를 견뎠던 밤이다
스쳐간 이름들, 흔들리는 이파리로 살다가
결국 흰 눈 가득한 백지가 되어
그대들을 위한 간절한 소식 적었고
한 줄의 슬픈 사건이 되기도 했던 캄캄한 밤,
한 사람을 사랑한 여인이 부러 깨뜨린
유리잔 조각 하나하나 쓸어 담는
구멍 난 종이 뭉치, 나 기꺼이 되었던 밤이다
그러니 독자여, 바닥을 뒹구는 내 마지막 보거든
지난한 밤을 기억 말고 대신
끝내 되고자 했던, 살고자 했던
내 푸른 문장들을 상상해 주길
잠시라도 그대 가슴 안에서
솨솨솨_ 내 전생의 숲이 불어오는
길고도 짧은, 오늘의 깊은 밤이다
허
민(許旻)
강원 양구 출생
2015년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
2022년 시집 <누군가를 위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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