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선물 받은 가방, 깨진 유리조각 박혀
책상 밑에 낡은 가방이 있었다.
대학시절 "공부 열심히 하라"며 받은 선물은 아니다.
내 생일이었다.
그 사람은 내게 고가인 전기면도기를 선물했다.
난 "이렇게 비싼 면도기를 어떻게 쓰냐"며 선물 받기를 강하게 거절했다.
그 사람은 "그럼 갖고 싶은 걸 말하라"고 했다.
난 "괜찮다, 필요한 게 없다"며 "면도기를 환불하라"고 했다.
그 사람도 "싫다"며 버텼지만 내 똥고집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면도기는 환불했고 그 사람은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찾았다.
그 사람은 내게 와 "가방이 필요해 보인다"며 선물로 준다고 했다.
검은색 가방을 들고 그 사람이 내게 왔다. 면도기만큼 비싼 가방이었다.
나는 가방이 필요했는지, 선물을 거절하지 않고 기분 좋게 들고 다녔다.
검은 가방 디자인이 참 마음에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가방 하단 가죽이 찢어졌다.
서비스를 맡겼더니 새 가방을 가져가라고 했다.
근데 같은 제품 재고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들고 온 게 사진 속 가방이다.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난 이 가방을 좋아했다.
대학 졸업 때까지 이 가방은 나와 함께 했다.
이후 등산 갈 때도, 운동할 때도, 나들이할 때도 썼다.
한 번은 지퍼가 고장 나 가방 문이 잠기지 않아, 수리도 받았다.
그렇게 더 쓰다 보니 지퍼가 또 고장 났다.
그래서 서류들을 담아 책상 밑에 놓았었다.
지난주 난 포도주를 한 잔 마시려고 책상 위에 병을 올려놨다.
책상이 어지러워 정리하다 보니 그만 병을 건드렸고 떨어져 깨졌다.
가방은 포도주와 유리 파편을 온몸으로 맞았다.
나는 1시간 정도 유리조각과 싸웠다.
가방에 박힌 유리 파편을 빼낼 수 없었다.
가방을 버렸다. 내 추억과 함께.
그리고 며칠 뒤 새벽에 목이 말라 깨, 물을 마시고 다시 잠이 들었다.
꿈속에 그 사람이 나왔다. 신기하게도.
나는 꿈을 꾸는 동안 행복했다.
내가 버린 가방이, 그 사람을 편안하게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