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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호 Aug 29. 2023

떠난이들_7-1

이창호 연작소설_되돌아온이들

부활


1


인범은 혜성신문을 그만두고 사흘동안 식음을 전폐했다. 열패감이 인범을 감싸고 놓아주지 않았다. 인범은 방에서 나오지 않고 피아노만 쳤다. 어릴 적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인범은 피아노 연주가 능숙하다. 그는 베토벤 소나타를 치면서 이를 악물었다.

인범의 어머니는 매 끼니 밥을 차렸지만 아들은 나오지 않았다. 피아노 소리에는 인범의 화가 담겨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절규를 느꼈다. 인범이 중학생 때 피아노 콩쿠르에서 얼어붙어 연주를 망친 그날 이후, 방에 틀어 박힌 아들을 처음 봤다. 그 콩쿠르를 끝으로 인범은 피아니스트 꿈을 접었다. 아버지도 인범을 달래 봤지만 소용없었다.

나흘째 아침 인범은 식탁에 앉았다.

"어머니, 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저 서울로 가겠습니다. 서울에서 처음부터 기자생활 다시 해보겠습니다. 이대로 끝내긴 아쉬운 꿈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다시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할게요. 허락해 주세요."

"그래 고맙다. 인범아, 먼저 밥부터 먹자. 면도도 하고, 서울 가려면 준비할 게 많잖아. 같이 해보자."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 인범은 말을 이었다.

"먼저 서울에 있는 신문사에 이력서를 내보고 합격하면 서울로 가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인범의 부모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인범은 취업준비생으로 돌아가 다음 카페 ‘아랑’에 접속했다. 언론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인범은 혜성신문에 들어가기 전에도 이곳에서 정보를 얻었다. 이곳에 다시 발을 드리니 인범은 더욱 절실해졌다. 그전에 없던 목표도 생겼다.

복수. 한 번도 인범이 가져본 적 없는 감정이다. 한수를 향한 복수심이 인범을 움직였다. 인범은 진풍에게 연락했다. 입사 지원하는데 도움이 필요했다. 진풍은 기꺼이 그를 도왔다. 인범이 진풍을 찾은 이유는 신문사별 특성을 알려주고, 자신이 성장하기 좋은 곳을 찾아주길 바랐다. 이른바 서울 10대 일간지, 3대 경제지 중 사람을 뽑는 곳을 찾았다. 인범은 진풍과 함께 4곳에 지원서를 냈다.

인범은 2곳에서 면접 제안을 받았고 그중 ‘한양경제신문’에 합격했다. 6개월 간 다시 수습기자 생활을 해야 하지만 인범은 설렜다. 한양경제는 혜성신문보다 급여가 1.5배 이상이었다. 부모님은 인범을 축하했고 빨리 월세방을 잡자고 했다. 인범은 진풍의 조언을 떠올렸다.

‘6개월 경찰서 돌려면 집에 거의 못 들어갈 거야.’

서울에는 일명 ‘사스마리’ 하는 기자들을 위한 숙소가 있다. 사스는 ‘찰(察)’을 뜻하고 ‘마리(마와리)’는 돈다는 의미다. 일본말이지만 기자들은 여전히 쓴다. 최근 없애는 곳이 늘지만 인범이 입사한 곳에는 남아 있었다. 인범은 사스마리 도는 6개월을 경찰서에서 지냈다. 그만큼 절실했다.


<찬란한 소나타> 배민채 2023. 8.


2


한수와 수용은 혜성신문에서 사적 이익을 추구했다. 이들의 고등학교 동창인 용범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무허가 물류창고 뒤를 봐줬다. 사회부장인 명수를 구슬려 구청을 움직였다. 고속도로 밑에 무허가로 자리 잡은 물류창고를 구청에서 행정대집행을 예고했다. 물류창고는 수백 개 컨테이너가 쌓여 있었다. 구청에서 컨테이너 철거 명령을 내리러 가기 전날 명수가 나섰다. 행정대집행 담당 과장을 평소 알고 지내던 명수가 당분간 철거 명령을 미뤄줬다.

한수는 용범을 불러 명수와 과장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그렇게 한수, 수용, 명수, 과장, 용범은 고급 참치회집에서 술을 마셨다. 이후 용범이 잡아둔 유흥주점으로 자리를 옮겨 접대부와 신나게 놀았다. 용범의 사업은 비슷한 위기가 몇 차례 더 있었지만 명수와 과장이 이를 막았다. 그때마다 이들은 비슷한 코스로 즐겼다.

한수, 수용은 우주시내 항만, 공항, 물류, 도시개발,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적 이익을 추구했고 명수는 이를 알면서도 돕기도, 주도하기도 했다.


3


인범은 경찰서 기자실에 딸린 방에서 지냈다. 기자들은 하꼬방이라 부른다. 인범은 점차 경찰관들 눈에 띄었다. 예의 바른 태도와 술자리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 가끔 당직 경찰관들을 위해 피자 같은 간식을 사 와 함께 먹는 인범에게 매력을 느꼈다. 하루는 경찰관 서광이 인범을 찾아왔다.

"인범 기자님. 정말 나쁜 사람이 하나 있는데, 기사 쓸 수 있어요?"

"당연하죠. 누가 무슨 나쁜 짓을 어디서 했나요?"

"국회의원 강창순 알죠? 이 사람이 가은병원에서 수천만 원 무료 건강검진에, 때마다 시술을 받는데 그 돈이 억대라고 하네요."

서광은 강 의원의 의약계통 비리를 낱낱이 설명했다. 강 의원은 가은병원 무료 진료 외에도 제약회사를 가은병원에 소개해주고 리베이트를 먹었다. 또 가은병원이 기사까지 붙여서 제공한 벤츠 자동차를 자신의 부모에게 선물했다. 서광은 6개월 정도 강 의원을 내사했으나 과장에게 가로막혔다. 보건직 공무원 출신인 강 의원과 인연이 있던 과장도 가은병원 덕을 봤기 때문.

인범은 서광에게서 내사 자료를 건네받았고 사실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강 의원은 인범에게 친근한 인물이다. 인범이 살던 우주시 한 지자체가 강 의원 지역구다. 인범은 진풍에게 연락했다. 가은병원 내부 취재를 도와줄 만한 인물을 찾아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진풍은 수소문 끝에 최근 가은병원을 그만둔 대외협력이사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인범과 진풍은 이사를 만나기로 했고, 이사는 만나자마자 강 의원과 가은병원장 간 비리를 술술 내뱉었지만 증거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인범은 이사에게 증거 확보를 부탁하고 서광에게 이사를 만났다고 말했다. 서광도 이사를 알고 있었다. 서광은 인범의 취재 의지가 크다는 것을 느끼고 증거가 될 만한 추가자료를 건넸다. 이사도 아직 근무 중인 직원을 채근해 받은 강 의원 관련 진료기록을 인범에게 전달했다.


4


인범은 시경 캡(서울경찰청 출입기자)인 사회부 차장에게 강 의원 관련 취재내용을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차장은 후속 보도와 타 언론사가 기사를 받아 쓰면 기자상을 받고도 남겠다고 판단했다. 기자협회는 매달 ‘이달의 기자상’을 선정했다. 차장은 인범에게 후속 보도 취재를 지시했고 기사 틀을 만들어 부장에게 면 배정을 요구했다. 다행히 한양경제 보도국에는 강 의원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다. 인범은 강 의원을 만나러 갔다. 강 의원은 취재내용을 완강히 부인했다.

"아니 기자님. 제가 뭐 하러 지인들 건강검진을 해주라고 병원에 시킵니까? 그리고 부모님 차 사드릴 돈이 없습니까? 그리고 제약회사 이런데 사람들 만나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다 저를 모함하는 세력들이 만든 거짓 정보입니다. 믿지 마세요. 제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있으면서 우주시민들이 보건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노력한 거 알잖아요? 전혀 그런 일이 없습니다."

월요일 조간신문에 인범의 보도가 사회면 톱기사로 나가자, 강 의원 사무실에는 전화가 빗발쳤다. 강 의원도 기사를 보고 놀랐다. 병원 내부 진료기록이 공개됐고 강 의원 지인이라고 쓰여 있는 사람들이 건강검진을 무수히 많이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가은병원이 강 의원을 위해 벤츠를 구입한 계약서, 강 의원 부모가 타고 다니는 사진까지 보도됐다. 인범이 서광, 가은병원 이사와 한 달 넘게 취재한 내용이었다.

인범의 보도는 일간지 등 주요 언론사가 대부분 받아 썼고 그중에는 강 의원을 옹호하는 기사도 나왔다. 서광은 경찰서장 지시로 다시 수사에 들어갔다. 인범은 서광의 수사 과정을 추가 취재해 보도했다. 이후 강 의원 사무실 압수수색 등이 이어졌고 강 의원은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됐다.

강 의원 재판이 시작될 때쯤, 인범은 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인범의 활약상은 우주시내 기자들에게도 전해졌다. 인범은 한양경제에서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취재하며 실력을 갈고닦았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시작한 합기도 덕분에 살도 빠지고 외모도 가꿨다. 인범이 살면서 가장 큰 자신감을 느낄 때였다.


5


한수는 항만물류 분야를 맡아 항만공사, 해양수산부 등을 출입했다. 항만공사 임직원, 해수부 공무원, 물류 관련 대기업 임직원들과 주로 어울렸다. 수용은 혜성신문을 떠나 친정으로 돌아갔다. 한수와 수용은 회사가 다르지만 함께 어울리며 기사, 정보 공유 등 둘만의 카르텔을 유지했다. 한수가 대기업 홍보팀과 술을 마시던 중 수용에게 속삭였다.

"야 인범이 그 개새끼가 서울에서 잘 나간단다."

"어. 얘기 들었는데 내버려두어, 어차피 우주시에는 얼씬도 못할 거 아냐. 우리 노는데 거슬리지만 않으면 되지."

자리에 함께한 대기업 홍보팀장은 한수와 수용에게 "혹시 기자 출신을 선발하면 올 생각 있느냐"고 물었다. 수용은 고개를 저었지만 한수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이것만 많이 주고 워라밸 좋으면 갈 수도 있다"고 답했다.


6


한양경제에서 자리 잡은 인범은 서울 변두리지만 작은 아파트 전세를 얻었다. 주말에는 부모님과 우주시내에 있는 교회를 간다. 부모님은 인범에게 결혼을 재촉한다. 삼 형제 중 인범만 미혼이었다. 인범의 어머니는 선자리를 잡았으니 시간을 빼두라고 했다. 인범은 바쁘다고 사양했지만 어머니 말을 듣지 않은 적 없었다.

다음주말 저녁 인범은 분위기 있는 경양식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그녀를 찾았다. 인범은 어머니가 보여준 사진 속 그녀가 마음에 꼭 들었다. 맑은 피부에 이목구비가 뚜렷해, 사진에 손을 댔을 거라고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인범은 금방 그녀를 알아봤다. 사진 속 모습과 똑같은 사람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인범이 말을 더듬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손을 떠는 인범의 모습이 그녀에게는 귀여움으로 다가왔다. 인범이 말을 꺼냈다.

"제가 이런 자리는 처처처음이라. 기긴장이 되네요."

"괜찮아요. 천천히 말씀하세요. 주문부터 할까요?"

대학에서 IT를 전공한 그녀는 예체능 전문 애플리케이션 개발회사에서 근무했다. 그녀는 훤칠한 키에 탄탄해 보이는 몸매, 단정한 머리스타일을 한 인범의 깨끗한 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함박스테이크를 주문한 인범과 그녀는 음식을 먹으면서 점차 대화가 편안해졌다. 그녀는 인범보다 6살 어렸지만 대화를 주도했다. 클래식을 좋아한다는 인범의 말에 그녀는 공연을 함께 보자고 했다. 인범은 적극적인 그녀가 좋았다. 차까지 마시고 인범은 그녀를 집에 데려다줬다. 집에 돌아온 인범의 전화기가 울렸다.

"아들. 어땠어? 그 집 부모님이 사실 교회에서 너를 봤거든, 마음에 든다고 하셨어. 너네들만 괜찮으면 결혼해도 돼."

"엄마, 아직 결혼까지 생각하지 않아요. 다음 주에 공연 같이 보기로 하긴 했어요."

"그래 잘했다. 참 괜찮은 친구라고 하더라. 잘 만나봐. 이제 결혼할 나이가 넘었어."


7


인범은 공연장에 온 그녀를 보고 ‘후광이 비친다’는 말이 무엇인지 처음 느꼈다. 흰색 원피스에 야트막한 구두를 신은 그녀는 인범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인범은 수줍게 손을 흔든 뒤 인사를 건넸다. 마치 취재원을 만나 듯한 말투였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별일 없으셨죠?"

"네. 그럭저럭 별일 없이 잘 지냈어요. 들어가실까요?"

인범과 그녀는 웃으며 공연장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인범은 오늘 공연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지휘자가 어떤 사람이고, 협연하는 피아니스트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에게 알려줬다. 그녀가 인범에게 질문과 부탁을 동시에 했다.

"클래식 공부했어요?"

"어려서 피아니스트가 꿈이었어요."

"그럼 언제 피아노 한 번 쳐주세요."

"네? 아 지금은 다 잊어서요. 그럼 연습해서 쳐볼게요."

인범이 피아노를 연주하기로 한 날. 그녀는 인범이 초대한 곳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음식점 한 자리에 인범이 손을 흔들었다. 둘이 주문을 마치자 마이크가 켜지고 한 사람이 사회를 봤다. 사회자는 "음악이 있는 날"이라며 통기타 연주와 노래를 부른 뒤 손님들에게 안내했다.

"피아노와 몇 가진 악기가 있으니 노래나 연주를 하고 싶은 분들은 신청하세요."

인범이 손을 들었다. 사회자가 나오라고 손짓하자 인범이 걸어 나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인범은 능숙하게 유리상자 ‘사랑해도 될까요’를 연주했다. 인범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지만 그녀는 멜로디만 듣고 무슨 노래인지 알아차렸다. 그녀가 평소 좋아하던 노래였다. 인범과 그녀는 연주 중 눈이 마주쳤다. 연주를 마치고 인범이 들어오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 노래 무슨 의미인지 알고 연주한 거죠? 이거 프러포즈할 때 부르는 거예요."

"그렇죠? 그래서 연주… 저랑 사귀… 아, 사귀…"

"사귀자고요?"

"네."


8


그녀와 사귄 지  1년째 되던 날. 인범은 ‘사랑해도 될까요’ 피아노 연주와 이번에는 노래까지 부르며, 그녀에게 "결혼하자"고 말했다. 인범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인 그녀는 "결혼하면 부모님이 있는 우주시에 살고 싶다"고 했다. 인범은 그녀 뜻에 따랐다. 우주시내 구도심 한 아파트를 대출받아 사기로 했다. 결혼식은 가족들만 초대해 작게 치르고 보라카이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신혼 초 출퇴근에 애를 먹던 인범은 점점 적응했다. 그녀와 결혼생활은 인범에게 더 큰 안정감을 줬다.

인범이 달콤한 신혼을 보낼 때 한양경제는 사세를 키웠다. 한양경제 최대주주인 무한건설은 우주시에 대규모 땅을 사들였다. 한양경제를 통해 휘청대던 ‘우주일보’를 인수했다. 한양경제는 우주일보 체질 개선을 위해 사내 우주일보 근무 희망자를 모집했다. 끝


<떠난이들> 시즌2 <되돌아온이들> 1편은 상편과 하편으로 나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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