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고민한 대학원 두 달만에 휴학
숙제하다 대학원 그만둔 이야기
대학원 진학은 2015년 하반기부터 고민했던 일이다. 이 해에는 일반대학원 법학과에 합격해 등록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를 위해 포기했다. 하루라도 아이를 더 봐야 한다는 누군가의 주장 때문이었다. 경제적 부담도 적지 않았다.
2020년 하반기부터 회사에서 찬밥 신세다 보니 머리 식힐 곳이 필요했는지 다시 대학원이 생각났다.
2021년 상반기부터 원서를 낼까 말까 하다, 회사랑 싸우느라 바빠졌다. 2022년 상반기에는 저널리즘스쿨에 다니느라 대학원 생각이 사라졌다.
2022년 하반기에는 책을 쓰느라 대학원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다 올해 초 무료한 일상을 바꾸고 싶어 정책대학원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의사결정 관련 수업을 들었는데 중간고사 과제가 서평을 쓰는 일이었다. 책 제목은 ‘스마트한 생각들을 읽고’였다.
읽어보니 이 수업 교수가 이 책을 바탕으로 강의 자료를 만들고 수업하는 걸 알게 됐다.
책은 의사 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생각의 오류는 무엇인지,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걸 알려줬다. 프롤로그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이 담겨 있다.
‘매몰비용의 오류’라는 장(章)은 내게 하는 말 같았다. 특히 이 부분은 매몰비용의 오류 속에 살았던 나를 일깨웠다.
‘장기 프로젝트를 끝까지 마무리하려면 투자를 계속해야 할 정당한 이유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 이미 투자한 것 때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는 안 된다.
그리고 합리적으로 결정하려면 이미 지출된 비용을 무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무엇을 얼마나 투자했든 상관없이, 현재의 상황과 미래에 대한 객관적인 전망 속에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책에서 마주친 이 부분이 ‘대학원을 그만둘까?’라는 나의 고민을 해결해줬다.
이 책이 내게 이런 확신을 줄지 몰랐다. 아이러니다. 일부 등록금을 낸 게 아까워 2년을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몰비용의 오류라는 게 아아러니 자체 아닐까. 지금 나는 더 큰 매몰비용의 오류를 해결하고자 한다.
10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기 위해 준비 중이다. 회사를 5년쯤 다녔을 때 ‘이 정도 다니면 10년, 20년, 30년 다녀서 퇴직금을 많이 타 노후에 써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월급이 밀리지 않았지만 이 회사는 좋은 직장이 아니다. 부조리, 모순이 판치고 범죄까지 일어나는 회사였다.
이제 이 회사에 들어간 나의 열정, 젊음을 빼내야겠다. 매몰비용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 책이 오늘 나의 결단에 힘을 실어줬다. 대학원에서 과제로 만난 책이 대학원을 그만두게 했고, 10년 동안 고민한 나의 진로에 확신을 줬다.
위대한 책이기 때문일까. 지금의 나와 만났기 때문일까. 이 부분 앞으로 나의 자세에 달렸다.
나는 이제 새로운 직장을 직접 만들려고 한다. 나 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 힘센 사람, 돈 많은 사람을 눈치 보지 않고 글 쓸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려고 한다.
이런 내용을 대학원 과제로 냈더니 함께할 동료가 시트콤에나 나올 소재라고 했다. 교수가 황당해할 거라고 했다.
그럴 만도 하다. 책 읽고 느낀 점을 써오라니까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는 교수에게 제자가 있었을까.
대학원 진학 때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도와준 사람에게 제일 미안하다. 그만둔다고 연락조차하기 두렵다.
대학원 수업이 너무 고리타분했다고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있지만 열심히 듣는 분들을 보면서 ‘어쩌면 내가 어울리지 못해서’라고도 생각했다.
시트콤 같은 일은 벌어졌고 대학원을 다시 갈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는 적어도 ‘현재의 상황과 미래에 대한 객관적인 전망 속에서 판단’을 내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