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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호 Jun 02. 2023

진창에서 나를 꺼낸 날

한글과 컴퓨터 타자검정을 떠올리며

한글과 컴퓨터 타자 연습이 있다. 지금은 없지만 옛 버전 긴 글 연습에는 ‘들사람 얼’이 있었다. 그 시절 그 글을 매일 타자로 옮겨 썼지만 이 책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지 못했다.


타자 연습 목적은 단 하나. ‘5분에 3천 타 이상’은 쳐야 한다.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였다.


그 시절이 벌써 30년쯤 지났다. 그래도 잊히지 않는 게 있다. 돼지를 깨끗하게 씻겨서 잔칫상에 오른 듯, 진창에 구르는 것보다 못하다는 내용이다. 아마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성어와 같은 뜻이다. 이승보다 저승이 좋을 사람은 없다.


글귀에는 이승도 살기 질퍽하고 더럽다는 뜻도 들어 있다. 지난 몇 년 나도 살기 퍽퍽했다. 그리고 10년 넘게 질퍽한 땅을 밟고 살았다. 어제 그 질퍽한 진창 속에서 나를 꺼냈다.

‘질퍽해도 지금의 너를 만들어준 곳이 아니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쩌면 이런 말 때문에 더디게 나를 꺼냈는지 모른다.


나를 진창에서 꺼내는 날. 많은 사람들이 축하하러 왔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 응원하는 사람들, 멀리서 온 사람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들. 다양한 이들이 찾아와 축하했다. 마치 개업식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비전을 말하고 태어나서 처음 사업계획도 발표했다.


벌써 무언가 이룬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스스로 경계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개업식 같은 하루를 준비하느라 몇 달 마음을 졸였다. 산 하나 이제 넘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어머니가 오누이에게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산을 넘어야 했는가. 진창에서 나온 것에 취해있을 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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