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우체통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 늘 비어있던 우편함에 삐져나온 것이 보였다. 멀리 보이는 태양과 절벽에 새겨진 부처님이 찍힌 사진엽서였다.
집으로 올라와 뒷장을 확인했다. 수개월 전 경주에서 보냈던 글이 적혀있었다.
안녕?
이 시기의 당신은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당신은 차 사고가 나고 불운한 하루를 보냈어요,
내일의 당신은 그 누구보다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고맙습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한테 보낸 엽서.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저녁을 먹으러 가던 길에 뒤에서 받히는 사고가 났던 날이었다. 처진 기분을 풀기 위해 산책을 나갔다. 호수 옆으로 난 산책로에는 조명이 환했다.
아무 생각 없이 걷기가 좋은 길이었다. 생각이 조금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기타와 팝송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을 때, 버스킹이 진행 중이었다. 젊은 남녀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옆에서는 간단한 율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술이 취해 보이는 어르신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환호를 하고, 멀리 의자에는 커플과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나 역시도 자리를 잡고 앉아 그 시간 속에 함께했다. 두 곡정도가 끝났을 때 돌아서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여전히 박수소리,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멀리 오지 않았을 때, 느린 우체통을 발견했다. 그날의 기분을 적어서 엽서에 한자씩 눌러썼다.
엽서를 넣으려고 우체통을 확인했다.
6월 말 발송 12월 말 발송
12월 말 발송에 넣었다. 그리고 그 내용과 기억은 잠시 잊혀 있었다.
오늘은 어떤 하루였는지를 떠올렸다.
힘든 고객을 만나 시달렸고 퇴근 시간에는 일이 몰려 퇴근이 늦어졌다.
어제의 내가 물었듯이 오늘 내가 행복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잊고 있었던 엽서가 도착했을 때 행복함이 잠시 스쳐갔다.
내가 또 느린 우체통에 엽서를 넣은 순간이 있는지 떠올렸다. 딱히 생각나는 건 없었다.
하지만 내년의 나는 오늘을 쓴 어제의 편지를 받을거란 예감이 들었다.
오늘 퇴근길엔 빈 우편함이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