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의 온도

by 청아연

전시장 입구에 섰을 때 이 층은 발자국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지하 1층의 혼잡함이 보이지 않았고, 1층에서 들리던 사람들의 소리도 줄어들어 있었다.

티켓을 교환했다. 직원은 리플릿을 주며 티켓을 잘라 돌려줬다. 왼쪽의 입구를 지나자 강렬한 색상 속 하얀 글씨가 보였다.



헤일리 티프먼,

일상을 그리다 평범한

하루의

온도


전시장 안에는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붉은 벽을 보고 나서 바로 하얀 벽을 보니 눈이 편안해졌다. 작가의 이력이 쓰인 글이 노란색이라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첫 작품 앞에 섰다. 미술 작품 특유의 질감이 보이지 않았다. 작품이 이어질수록 보이는 것들이 점점 익숙해져 갔다.


넓은 공간으로 이동하니 등신대가 보였다. 벽에 있는 작품보다 그것에 더 눈이 갔다. 사진을 찍는데 조명이 여러 곳에서 그림자를 만들었다.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봤지만 등신대와 내 그림자가 함께 서있는 사진이 전부였다.


몇 번 온 적이 있던 복도가 나왔다. 저녁시간 대 쯤에 왔을 때 이 공간은 적당한 채광이 있어 빛으로 만드는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블라인드가 완전히 내려가 있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약간의 빛이 들어왔다. 그마저도 짧아서 반대쪽 벽에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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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공간에 섰을 때 질감이 살아있는 작품이 있었다. 크게 와닿는 부분은 없었다.


"잠시 후 2시부터 전시 도슨트가 시작됩니다. 도슨트에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전시장 입구로 이동해 주세요."


어셔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돌아 걷기 시작했다. 반대쪽으로 걷는 복도에 빛줄기가 조금 더 길어졌다. 한번 봤던 공간들을 지나 입구에 도착했다.


도슨트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찾게 되었다. 컴퓨터 옆에 앉아있는 고양이가 있었고, 인물이 보고 있는 TV는 브라운관이었다.


익숙한 긴 복도에 도달했다. 공간에 대한 설명이 계속되었다. 도슨트를 따라 사람들이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괜스레 블라인드를 한번 더 만지작 거렸다. 전시장의 바닥에 빛이 추가가 되었다가 금세 사라졌다.


마지막 공간에 이르렀을 때 작가의 개인 사정을 말하는 도슨트의 설명이 이어졌다. 작품을 보다가 그다음을 듣고 멈칫했다.


"살아가면서 기억에 남는 하루를 살아가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답니다"


메모장을 켰다. 하루를 기록한 글들이 보였다. 무언가를 적고 싶었는데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전시 도슨트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사진을 찍어주는 기계가 보여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흑백사진 속의 남자가 웃고 있었다.


출구의 MD샵을 지나쳐서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왔다. 사람들의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한 층을 더 내려왔더니 혼잡해졌다.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 아이를 안고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밖으로 나와서 역으로 향하는 길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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