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다
사실 나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다. 자기 마음대로 몸을 부비는 앙큼함, 말캉한 분홍색 발바닥,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 등등 고양이는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나는 고양이를 키울 수 없었다.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만난 고양이에게서 내 몸에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린 만난 지 20분밖에 안됐지만 내 몸에선 눈물과 콧물, 재채기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 이후 나는 고양이와 함께 하는 인생을 포기해야 했다.
사실 고양이 털 자체는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다. 털에 묻은 침, 이물질, 비듬 등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한다. 알레르기는 병이 아니다. 몸에서 일시적으로 보이는 면역 증상 중 하나이니 완치가 아닌 완화의 개념으로 다가가야 한다. 환기를 자주 하고, 반려동물의 목욕도 2주에 1번. 청소도 자주 해야 한다. 그래도 알레르기는 계속해서 몸을 괴롭힐 것이다. 동물의 털은 생각보다 끈질기다.
다행히 내 몸엔 개털 알레르기 반응이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우주를 키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우주의 솜털은 위력이 대단했다. 아무리 빗어도 빵실한 솜털이 계속해서 나왔다. 우주의 몸은 계속해서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고 빗은 금방 털로 가득 찼다. 착한 우주는 10분 넘게 빗질을 해도 가만히 있어주었다.
산책하고 돌아온 우주의 몸엔 온갖 이물질이 묻어 나온다. 잔디에 뒹굴지 않았어도, 그저 길을 걸었을 뿐이고 잠깐 앉았다 일어나는 찰나의 순간에도 낙엽과 흙먼지, 나뭇가지 등이 풍성한 털에 얽혀 들어가 있다. 가끔은 똥이 묻어있을 때도 있다. 만약 친구를 만나서 악어놀이라도 했다면 털은 온통 침으로 범벅이 된다. 끈적한 침은 흙먼지를 더 거세게 빨아들인다. 이렇게 더러운 녀석을 바로 집에 들일 수는 없다. 빗질은 산책의 마무리 필수 코스다.
개털 역시 사람의 머리칼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타입이 있다. 우선 단모와 장모로 나눈다. 길고 짧은 구분을 지나면 곱슬과 스트레이트 타입으로 나눈다. 대표적인 곱슬털을 꼽아보자면 푸들, 비숑 등이 있다. 이런 털을 지닌 강아지들이 털이 잘 빠지지 않아 알레르기에 약한 현대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우주와 무강이는 장모에 속한다. 거기에 하늘하늘 날리는 곱슬털을 가지고 있다. 찰랑이는 등, 배, 다리의 털을 지나 엉덩이에 다다르면 반곱슬의 털이 풍성하게 나 있다. 반곱슬의 특징은 습기에 약하다는 것이다. 같은 반곱슬 머리칼을 가진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비가 오거나 조금이라도 습기를 머금은 날이면 녀석들의 엉덩이는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다. 이런 비슷함을 보면 신기함을 넘어 웃음이 나오기까지 한다.
우주는 온 몸이 반곱슬 타입의 솜털이었고, 무강이는 주로 엉덩이 부분만 반곱슬 털을 가지고 있다. 목욕 후 빗질을 마치면 빵빵하게 볼륨이 살아난다. 그리고 그 부분 털이 제일 많이 빠진다.
빗질, 청소, 환기를 아무리 많이 해도 개털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어느 정도 선에선 포기가 필요하다. 특히나 무강이는 기분이 좋으면 소파나 가구에 몸을 비빈다. 엉덩이를 신나게 들썩이며 비비는 걸 말릴 수 없다. 그러면 순식간에 털구름이 생겨난다. 무심코 튼 선풍기 바람에 털이 뭉쳐 뭉게뭉게 날아다닌다. 검은 털과 하얀 털이 뭉쳐 회색의 털구름이 기어 나온다. 꼼꼼히 청소를 해도 놓칠 수밖에 없었던, 소파 밑 저 깊은 구석의 세월을 머금고 나온 어르신 털구름이었다. 그럴 때마다 개털의 끈질김에 청소의 의욕을 놓아버리곤 했다.
개털의 끈질김을 겪었던 또 다른 일화가 있었다. 우주를 보내고 몇 개월 뒤의 이야기다. 적막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바람이 좋아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멍하니 모니터에 시선을 두다가 곁눈으로 검은 무언가가 스슥 돌아다니고 있었다. 행여나 벌레일까 싶어 화들짝 놀라 바라보니, 그건 우주의 털뭉치였다. 구석에 숨어있던 털이 바람을 만나 뭉쳐진 것이었다. 우주가 없는 적막에 익숙해 진 줄 알았던 날, 우주의 존재가 다시 우리 집에 찾아온 순간이었다.
강아지에겐 털갈이 시즌이 있다. 봄에서 여름으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털이 엄청나게 빠진다. 평소의 두 배 정도로 털구름의 양이 많아진다. 청소기가 털을 다 먹지 못해 토해낼 정도로 털이 빠진다. 산책을 나간 사이 빗자루 질과 걸레질까지 다해 정성껏 청소해도, 무강이가 집안을 한번 걸으면 다시 도루묵이 되고 만다. 개털에겐 한계가 없다.
털은 동물의 흔적을 가장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인 것 같다. 우주의 존재를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 우주의 빗을 사진과 함께 보관해두었다. 빗에 낀 털 하나하나 빼지 않고 두었다. 그 속에 배인 냄새가 한 6개월은 갔던 것 같다. 지금은 털도 냄새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 빗은 아직까지 우주의 사진과 함께 그대로 남아있다.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던 개털이 우주를 기억하고 싶은 순간만큼은 끝까지 남아있어주길 바랐다.
가끔 털이 날린다고, 혹은 더워보인다고 빽빽하게 나 있는 털을 밀어버리는 보호자들을 볼 때가 있다. 어느 정도 수준이라면 괜찮겠지만 분홍색 속살이 보일 정도로 빡빡 털을 밀어놓으면 개의 면역력이 떨어진다. 개의 피부는 털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털을 그렇게 밀어놓았다면 적어도 옷이라도 입혀주길 바란다. 가장 좋은 것은 털에 손을 아예 안 대는 것이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미용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
개를 키우는 이상 개털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개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그 순간부터 개털은 끊임없이 우리 일상을 침투하리라는 사실을 알아두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털로 인한 알레르기, 불편함 등은 파양을 정당화 할 수 없다.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이유로 파양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엔 워낙 무균의 환경이 익숙하다 보니 아이들의 면역력도 약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깨끗한 환경이 오히려 면역력에 안 좋다는 기사도 있다. 개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 자체가 안 좋기 때문인 것이다. 개는 아무 잘못이 없다.
무강이 없이 나온 외출, 내 가방이나 옷에선 개털이 몇 오라기씩 묻어 있다. 격식을 차려야 할 자리에 간다면 깔끔하게 돌돌이를 돌리고 나가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면 그냥 나가는 편이다. 의외의 장소에서 나온 무강이의 털은 나를 미소짓게 한다. 이 사랑스러운 흔적이 오래오래 곁에 남아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