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팔자가 상팔자

과연 그럴까

by 익호

비가 오던 날, 무강이와 나는 우비를 입고 산책하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라 공원에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대놓고 구경했다. 나는 이런 시선이 달갑지 않았지만 감내하기로 했다. 나라도 우비 입은 개와 사람을 봤으면 쳐다봤을 것이다.


“무슨 개한테 우비를 입혀?”


조용히 길을 걷던 내 귀에 목소리가 꽂혔다. 이 글에 소리를 입힐 수 있다면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던 그 뉘앙스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인데 아쉽다. 짧은 한 문장 안에 다양한 높낮이가 뒤섞여 개 따위는 감히 우비를 입을 수 없다는 생각이 전해졌다.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듯, 나에게 한 마디 말을 던진 그 사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굳이 그 뒷모습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한 마디 던졌다고 어렵게 입힌 우비를 벗기진 않을 것이다.


18-1.jpg 고르고 골라서 산 우비 입고 활짝^_^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있다. 아무 것도 안하고 사는 개의 삶이 자신의 삶보다 낫다는 자조적인 속담이다. 만 원짜리 우비도 덜덜 떨면서 사 입는 나와 10만원이 훌쩍 넘는 우비를 입고 진흙탕을 구르는 무강이를 보면 누구나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겠다.


요즘엔 개를 위한 모든 것이 상품으로 나와 있다. 고급 원료가 들어간 사료와 간식은 물론이고 산책 서비스, 반려견 초상화, 반려견 여행 패키지 등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상품이 되어 팔리고 있다. 얼마 전 뉴스에는 반려견 오마카세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급 식당에서 멋지게 차려진 음식을 받아먹는 강아지의 모습은 신기하게만 보였다.


개를 반려하고 있는 이상 내 개가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란다는 마음은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도 일단 내 품에 들어온 이상 고생은 모르고 즐거운 순간만 누리고 갔으면 좋겠는 게 사람 마음이다.


개를 자식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동물 윤리도 높아졌다. 개집에 묶어두고 짬밥을 먹이던 때는 완전히 사라진 듯 했다. 이제 묶여 있는 개줄도 1m를 넘어야 한다. 한쪽에선 개농장 철폐, 식용견 종식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 때는 당연했던 “복날에 개 패던” 행동이 이제는 범법 행위로 간주되어 형사 처분을 받게 되었다. 이런 일들을 보면, 개 팔자는 상팔자라는 말이 얼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개 팔자가 상팔자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걸 모두가 안다. 선택받은, 운이 좋은 몇몇 개들만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아간다. 사실 선택을 받은 그 개들조차도 상팔자의 삶을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무강이는 산책을 나가는 시간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내가 나가야 나갈 수 있고, 내가 가자는 길대로만 걸을 수 있다. 먹는 것도 내가 주는 것만 먹을 수 있고, 그 시간도 내가 정해준다. 무강이 좋으라고 하는 통제지만 자유로운 삶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무강이는 행복해 보인다. 산책을 나가면 나를 올려다보며 웃고, 놀자 며 장난을 건다. 집에 오면 배를 뒤집고 편하게 잠에 빠진다. 완전히 마음을 놓은 모습을 보면 안도의 미소가 나온다.


18-2.jpg 반려견 전용 케이크를 놓고 파티하는 무강이는 상팔자


가끔 무강이가 살던 농장이 생각난다. 우리를 맞아준 진돗개는 무강이를 쥐 잡듯이 잡고 있었다. 진흙 범벅의 무강이는 그 등쌀을 피해 바들바들 떨었다. 근처엔 사료가 담긴 대야가 보였다. 아마 그 개들은 무강이가 사료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경계하느라 그랬던 것 같았다. 동물을 좋아한다던 전 주인은 그 작은 농장에 개를 많이도 길렀다. 지금 그 개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니, 지금 살아는 있을까.


개 팔자는 아직까진 상팔자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인간에게 의존해야 하는 개들은 자칫하면 그 손에 죽을 수도 있다. 너무 쉽게 생사가 갈리는 그 삶이 어떻게 상팔자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농장에 가만히 앉아서 먹이만 먹고 사는 소, 돼지, 닭을 보면서 우리는 상팔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고 자기만 하는데도 내 눈엔 측은함이 흘러나온다. 그들의 생이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TV를 보다가, 농장의 소들에게 톱밥만 갈아주었는데도 온 몸을 비비며 좋아하는 것을 보았다. 그 작은 환경의 변화에 기뻐하는 소를 보니 고기를 먹는 게 순간 죄 지은 것 마냥 부끄러워졌다. 개를 비롯한 모든 동물들이 상팔자의 삶을 살려면 그런 죄책감마저 들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닐까. 깨끗한 톱밥이 당연한 일상이 되도록 인간의 손이 더욱 노력해야 한다.


지금도 산책을 나가면 어르신들이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집에서 키우냐고 묻는다. 이런 개는 밖에다 묶어 키워야한다는 게 상식인 삶을 살고 계신 거다.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개 팔자는 상팔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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