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내 개새끼
무강이와의 산책은 하루의 가장 큰 일과다. 보통 하루에 두 번 정도 산책을 하는데, 가끔 욕심을 부려 3번을 나가면 산책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가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무강이와의 산책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강이는 여느 개처럼 보호자와 속도를 맞추어 걷지 않는다. 산책로에서 마주친 다른 강아지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자신의 옆을 스치는 오토바이 역시 그냥 보내지 않는다. 잠깐 벤치에 앉아 쉬려고 해도 쉬지 않는다. 계속 주변을 경계하느라 눈과 귀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나는 항상 움직이는 시한폭탄과 함께 걷는다는 생각으로 공원을 거닌다.
무강이는 전형적인 문제견이다. 남들이 본다면 당장 훈련소에 맡기라고 말이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방문훈련을 신청했다. 이건 무강이만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한 행동이기도 했다. 우리는 도시의 반려견 문화도 모르고 개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초보 견주였기 때문이다.
나는 우주를 데려올 때도 걱정이 많았다. 작은 개도 아니고 보더콜리라는 큰 개를 데려오는데 초보인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주도 문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집 밖에 나가지 않으려고 해서 애를 먹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데 2주는 걸렸다. 그러더니 배변 패드를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온 바닥이 배변 패드의 흡습제 알갱이로 모래사장처럼 까끌까끌 거칠어졌다. 아무리 놀아줘도 우주는 패드를 찢었다. 이 행동은 한 달 동안 계속되었다. 겨우 밖에 나가니 이젠 줄을 당긴다. 커다란 버스나 트럭에 달려들었다. 공원까지 나가니 다른 개들에게 짖는다. 집에서 치는 사고야 어떻게든 수습이 가능했지만 밖에선 차원이 다르다. 쩔쩔매던 우리에게 펫시터 조끼를 입은 사람이 다가왔다. 그 사람의 조언대로 짖어대는 우주를 몸으로 눌러 억지로 엎드리게 했다. 몇 분 뒤, 우주는 얌전해진 걸로 모자라 공원의 다른 강아지들과 뛰어 놀기 까지 했다.
이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날뛰던 개가 불과 몇 분 만에 진정을 찾고 심지어 다른 개들과 놀기까지 하다니. 우린 바로 그 사람의 연락처를 받아 훈련을 받기로 했다. 이게 나의 방문훈련 첫 에피소드다.
비록 우주가 갑자기 떠나는 바람에 계약한 훈련 횟수도 못 채우고 헤어지게 되었지만, 개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 후 무강이가 왔다. 다행히 무강이는 집 밖으로 아주 잘 나갔다. 문제는 다른 강아지에 대한 공격성과 분리불안이었다.
무강이는 집에 온지 일주일도 안 되어 분리불안 증세를 보였다. 우리와 유대감을 쌓기 전인데도 혼자 남겨지는 걸 무서워했다. 그리고 우주와 놀던 리트리버 친구와 내가 인사를 하자마자 바로 그 강아지에게 달려들었다. 줄 당김과 오토바이를 쫓는 건 기본이었다. 우주 때 배운 대로 무강이를 바닥에 눌러보고 줄을 채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무강이에겐 무강이에게 맞는 훈련이 필요했다.
사실 훈련소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그렇게 말 안 듣는 녀석들이 훈련소만 다녀오면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효과가 지속되려면 우리도 훈련소와 똑같이 무강이를 대해야 했다. 초크체인으로 목을 당기고 돌멩이가 든 생수병으로 귓전을 때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무강이가 어렸을 때 반려견 운동장을 간 적이 있다. 그 땐 무강이의 공격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때였다. 줄만 없으면 잘 놀거라고 생각했는데, 무강이는 또 다른 강아지에게 이를 드러냈다. 그 때 그 곳의 훈련사가 나타났다. 우리를 내보내고 무강이의 줄을 잡았다. 곧이어 바로 무강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무강이를 때린 게 아니라 줄을 조금 세게 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무강이는 금방 조용해졌지만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아마 대부분의 위탁훈련, 방문훈련이 줄을 세게 채거나 초크체인을 쓰고 있다고 들었다. 이 방법이 틀린 게 아니라 나에겐 안 맞는다는 걸 알았다. 나는 무강이의 비명을 듣고 싶지 않았다.
무강이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예민한 개였다. 시력도 좋고 청각도 좋다. 똑똑해서 우리의 행동을 쉽게 예측한다. 사료를 밥그릇에 담으면 알아서 켄넬에 들어가 기다리고 있다. 1층에 퇴근한 남편의 자동차 후진 음이 들리면 현관에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이런 무강이를 힘으로 누르면 용수철처럼 튀어 나갈 뿐이다. 시간이 걸려도 무강이에게 알맞은 방법이 필요했다.
필요 이상으로 개를 너무 봐주고 있는 거 아니냐고? 그렇다면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자. 모든 인권과 동물권 등은 ‘나’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어느 날 갑자기 군대에 끌려가 3년 동안 훈련을 받은 내가 사회로 나오면, 며칠은 바짝 정신 차린 듯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엔? 게다가 사람은 영장이라도 받지 개는 그런 것도 없다.
그래서 무강이와의 산책은 늘 힘들다. 하지만 진전은 있다. 이제 무강이는 오토바이에 달려들지 않는다. 그가 내는 굉음에 몸이 굳긴 해도 지나갈 때까지 참고 나를 올려다본다. 공격성도 줄었다. 이제 아무도 없을 때 나가는 도둑산책은 졸업했다. 낯선 강아지와 아무렇지 않게 인사할 경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건 가능하게 되었다. (일정 거리를 두고 가능하다) 이런 변화를 맞이하기 까지 총 2년이 걸렸다.
그래도 무강이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차도를 지나는 오토바이에 반응하는 건 나아졌어도 횡단보도에서 신호 위반하는 오토바이에는 달려든다. (이건 굳이 고치고 싶진 않다) 무강이의 공격성을 알게 된 이후 운동장에 가서 모르는 강아지와 노는 일은 없어졌지만 마당이 딸린 펜션을 찾아 여행하는 횟수가 늘었다. 하나의 길이 막히면 새로운 돌파구가 나온다. 정답은 아니겠지만 우리에겐 해답이 된다.
TV엔 문제견들이 넘치게 나온다. 나는 언젠가부터 그런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무강이가 TV 속 개를 보고 무서워하는 것도 있지만, 그 개에게 맞는 방식과 내 개에게 맞는 방식이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 아이에게도 각자 성질에 맞는 솔루션이 나오는데, 하물며 개라고 다를까 싶었다.
우리는 무강이가 문제견이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니 무강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결 넓어졌다는 걸 알았다. 무강이가 짖었다면 짖었다는 사실에 급급해 하지 않고 왜 짖었는지, 당시 상황은 어땠는지 따져본다. 그러면 무강이의 짖음이 큰 잘못이 아니었음을, 우리가 좀 더 세심히 살폈어야 했음을 알고 다음날 산책은 더 조심하게 된다.
아무리 그래도 무강이의 문제행동이 괜찮은 건 아니다. 늘 속상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무강이와 집을 나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무강이는 미우나 고우나 내 가족이 되었는걸. 조금 잘못된 행동을 한다고 해서 새로 바꿀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시간이 걸려도 무강이에게 우리와 함께 사는 법을 알려주면 된다고 믿는다. 그 누가 아무리 뭐라고 그래도 어쨌든 내 새끼인 것을. 속상해도 다음 날 다시 산책한다. 그렇게 조금씩 손발을 맞춰나간다. 문제견과 함께 사는 일상, 속상하긴 해도 행복한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