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을 어디에 쓴대요?

또 다른 시비의 시작

by 익호

“이봐요! 개똥 안 치워?!”


무강이는 오줌 쌌거든요. 오줌. 흐른 것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무엇보다 내 산책가방에는 이미 묵직하고 따뜻한 똥봉투가 달려 있었다. 암컷 특성상 주저앉아 일을 보는 탓에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지적하는 경우를 왕왕 당한다.


“치웠는데요.”


똥봉투를 들어 보여주면 말대꾸 한다고 삿대질하며 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는 아직까지 나보다 어리거나 동년배인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일반화 하고 싶지 않은 슬픈 현실이다.


우리 동네는 공원이 많다. 산책하기 너무 좋은 환경이다. 너른 공원을 직원들만으로 관리하기 힘들어 공공근로 직원이 일하는 때가 있다. 눈에 잘 띄는 형광색 조끼를 입은 어르신이 쓰레기를 줍는다. 그런 사람을 보면 나와 무강이는 거리를 둔다.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하기 때문일까? 그분들의 눈엔 무강이가 걸어 다니는 똥으로 보이나 보다.


도시에서 대형견과 함께 길을 걷다보면 여러 가지 시비에 많이 걸린다. 그중 가장 많은 경우가 입마개. 그리고 두 번째가 똥이다.

개똥은 아주 오래전부터 입에 오르내렸던 문제다. 길거리에 널린 개똥을 소재로 한 동화 ‘강아지똥’이 1969년도에 나왔다는 사실을 보면, 개똥은 우리나라에 반려견 문화가 자리 잡기 훨씬 이전부터 문제가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장군님 포즈로 쉬하는 무강이


우리가 사는 동네가 도시이건 시골이건 간에, 개똥은 길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 가끔 거름이 된다고 화단의 개똥을 치우지 않는 경우도 본다. 그저 악취와 벌레만 꼬일 뿐이다. 그런 생각은 동화 강아지똥에서 비롯된 잘못된 지식이다.


산책을 하면서 길에 개똥이 그렇게 많은 지 처음 알았다. 갓 나온 따끈한 똥부터 며칠이 지나 바싹 말라 풍화되어가는 똥까지 다양한 타입을 볼 수 있었다. 가끔은 사람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도저히 그냥 두고 갔다는 걸 믿을 수 없는 크기도 봤다.

짧은 산책 경력이지만 길에 그렇게 개똥을 두고 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개에게 집중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맑은 햇살이 기분 좋았던 날이었다. 멀리서 강아지와 산책하는 어르신이 보였다. 어르신이 앞서가고 강아지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길이 겹칠까봐 나와 무강이는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강아지가 주저앉았다. 강아지가 멈춰도 어르신은 계속 걸어갔다. 자동줄을 하고 있나? 아예 줄을 하고 있지 않았다. 거리는 계속 멀어졌다. 맨몸의 강아지는 잠시 힘을 주더니 곧 어르신을 따라갔다. 현장엔 손가락만한 똥이 따끈한 온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렇게 눈앞에서 개똥유기장면을 목격했다면 차라리 낫다. 짜증은 나지만 원인을 명확하게 알 수 있고 내가 바로 치울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 속을 뒤집는 건 개똥으로 인해 생기는 오해다.

무강이는 실내‧실외 배변을 동시에 한다. 그러나 집에서는 지정된 자리에 있는 패드에서만 싸고, 실외에서는 풀 한포기라도 나 있는 흙에서만 엉덩이를 내린다. 마음에 드는 자리가 나올 때까지 산책 내내 돌아다닌다. 하지만 개를 키우지 않거나 잘 모르는 이웃들은 집 근처의 개똥이 전부 무강이의 소행이라고 단정지어 버린다.

이런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 산책을 마치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나와 무강이는 엘리베이터에 타면 항상 구석에 선다. 벽에 무강이를 붙이고 내 다리로 막는다. 그런 구석 자리에 개똥 치우라는, 화가 단단히 난 쪽지가 붙어있었다.


이상했다. 보통 건물 내 공지가 있으면 게시판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시판이 아닌 엘리베이터 구석 벽, 그것도 거울 밑 애매한 자리에 쪽지를 붙인다? 누가 봐도 우리를 저격한 거였다.

사실 아침에 이상한 일이 있기는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 것이다. 하지만 냄새였을 뿐이고 우리는 산책을 위해 막 나온 참이었다. 그냥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고 넘긴 일이 큰 오해가 되어 다가왔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우리 아니라고 답글이라도 적어놓고 싶었다. 그러나 쪽지는 저녁이 되자 없어졌다. 몇 달 전 새로 이사 온 집 문 앞에 개모차가 놓여있는 게 생각났다. 세대수도 적은 빌라, 개라곤 무강이밖에 없는 이곳에 또 다른 용의자였다. 하지만 쪽지도 없어지고 그 일은 그렇게 찝찝하게 종결되었다.


가끔 문을 열고나서면 필로티 주차장에 보란 듯 놓여있는 개똥을 마주할 때가 있다. 입주민이 아닌 사람이 산책을 하다가 똥을 치우지 않고 그냥 간 것이다.

마지못해 치우긴 하지만 (절대 기쁜 마음으로 치울 수 없다) 손에 닿는 차가운 감촉은 기분이 정말 더러워진다. 내 새끼 똥이야 이리저리 헤집어 볼 정도로 애정이 넘치는 부산물이지만, 남의 개똥은 말 그대로 쓰레기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우비를 입어도 볼일은 봅니다


내 개의 똥이야 스스럼없이 만질 수 있다. 물론 맨손은 아니지만. 개똥엔 개의 건강에 대한 정보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 우주를 데려온 날, 우주의 똥엔 털실같은 기생충이 꿈틀거렸다. 우주는 바로 구충제의 약을 늘렸다. 무강이의 똥엔 한참 전에 없어진 장난감 조각이 통째로 묻혀 있었다.

과식을 했으면 무른 똥이 나오고 적게 먹었으면 아주 단단한 똥이 나온다. 조금 무리한 날에는 혈뇨를 보기로 한다. 바꾼 사료가 맞지 않아도 무른 똥이 나온다.


내 개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개똥을 살피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실내배변이든 실외배변이든 상관 없는 일이다. 어디든 무강이가 배변을 하면 살핀다. 상태를 보며 건강을 가늠한 다음에야 봉투에 담아 버린다.

개똥 마저도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 보인다. 단순히 에티켓의 문제로 치부하는 게 아니라 온전히 내 책임이라고 여겨야 수풀 깊숙이 싸놓은 똥을 집어낼 수 있다.

길에 굴러다니는 개똥을 보았다면 그것은 자신의 개에게 매우 무관심한 보호자가 지나갔다는 증거다. 그런 무책임한 결과에 모든 사람들이 고통받는다.


아직 나는 길에 굴러다니는 개똥 모두를 줍고 다닐 정도로 착하지 못하다. 그래도 내 개의 똥은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어서라도 줍는다. 밤에 똥을 싸면 후레쉬를 켜고 땅을 뒤진다. 남의 과오까지 치워줄 정도는 못되지만 적어도 내 잘못은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개똥은 더 이상 약이 아니다. 그저 과오의 부산물일 뿐이다. 오늘도 깨끗한 산책을 위해 나는 오늘도 개똥을 줍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노 펫, 노 키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