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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Dec 20. 2023

그래도 계속하는 것이 산책

계속한다는 마음


따뜻한 겨울이라고 걱정하던 지난 날이 무색하게 영하 10도가 넘는 한파가 들이닥쳤다. 그동안 이상기후를 즐겼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것처럼 온 몸에 두꺼운 옷을 두르느라 난리였다. 춥다고 발을 구르는 사람과 달리 강아지들은 추운 날씨를 오히려 반기는 날씨다. 지난 여름, 폭염에 느리게 걷던 무강이는 한파를 만나 기운이 더욱 좋아졌다.      


보더콜리는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국경에서 양치기를 위해 개량한 품종이다. 기후가 그렇게 변덕스럽지는 않지만 넓은 들판에서 양을 몰던 생활 때문에 야외 생활에도 적응할 수 있도록 이중모가 주로 나는 종이다. 무강이 역시 이중모가 두툼하게 몸을 감싸고 있다. 그 덕분에 여태까지 살면서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은 튼튼한 건강을 자랑하고 있다.      


겨울이 오면 무강이는 더욱 신난다. 사람에겐 한파인 날씨가 무강이에겐 뛰어놀기 좋은 시원한 날씨이기 때문이다. 여름엔 더워서 축 처져서 걷던 발이 이젠 기운이 넘쳐서 속도가 빨라졌다. 지난 여름, 줄당김이 나아졌다고 좋아했던 건 내 착각이었다. 단순히 더워서 걸을 기운이 없었던 거였다.      


여름엔 여름대로, 겨울엔 겨울대로 산책의 애로사항이 있다. 일단 지금 당장 산책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은 바로 눈이다. 언젠가부터 눈이 내리면 예쁘다는 생각보다 한숨이 먼저 나오게 됐다. 현실에 지친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일까?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보다 꽁꽁 얼어 미끄러워진 길 걱정이 먼저 들어버린다. 게다가 이젠 걱정이 한 가지 더 추가되었다. 눈길을 가득 채운 염화칼슘에 대한 공포.      


개를 키우기 전엔 겨울 길에 뿌려진 염화칼슘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아무리 눈이 많이 쌓였어도 염화칼슘을 뿌려두면 금방 깨끗하고 말끔한 길이 나왔다. 누군가 따뜻한 물이라도 뿌려 일부러 녹인 것처럼 자취를 감춘 눈이 신기하고 편했다. 눈이 온 날엔 일부러 염화칼슘이 뿌려진 길을 밟으며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염화칼슘이 지뢰처럼 보인다. 회색의 아스팔트에 하얗게 뿌려진 염화칼슘과 눈을 구별하느라 바삐 움직인다. 염화칼슘은 강아지의 피부를 다치게 만든다. 밟으면 화상을 입을 정도니 반드시 신발을 신기고 다니라는 팁이 돌아다닐 정도다. 나도 그 소리를 듣고 호기롭게 강아지 신발을 샀으나 대차게 실패했다. 몇 번 더 시도해봤지만 짜증 섞인 으르렁 소리만 듣고 실패해야 했다. 무강이는 발을 탈탈 털며 다시는 신발을 신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여주었다. 네 발이 다칠 수 있다는 나의 호소는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염화칼슘이 없는 길은 빙판길이다. 게다가 치고 나가는 줄당김이 있는 무강이와 함께라면 넘어지는 일도 부지기수다. 맑은 날씨의 뽀송한 길에서도 줄을 당기는 버릇이 있으니, 차가운 눈을 밟는 신난 무강이의 발걸음은 더욱 거세게 줄을 당긴다. 빙판길에서 이렇게 갑자기 달려나가는 개에게 중심을 빼앗기면 넘어지는 걸 막을 수 없다. 뒤로 넘어가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넘어가면 코도 깨지고 무릎도 깨진다. 한 번 넘어지는 일에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많은 나는 무강이가 신나지 않도록 줄을 더욱 단단히 잡는다. 마음 먹은 대로 몸이 나가지 않으면 무강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그럴 때마다 다시 내 옆에 서게 하고 발걸음을 맞춰 걸어간다. 그래봤자 3보 후에 다시 앞서 달려 나가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반복하며 무강이와 겨울 산책을 마친다.      



여름 산책 역시 호락호락 하진 않다. 겨울엔 폭설과 한파가 있다면 여름엔 폭우와 폭염이 있다. 올해는 이상 기후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 탓에 폭염, 폭우, 폭설, 한파를 골고루 겪는 중이다. 일단 여름이 되면 기상 시간부터 달라진다. 겨울엔 오전 10시에 나가면 적당한 온도를 느꼈던 날씨가, 여름엔 새벽 5시에 나가야 겨우 걸어다닐 수 있는 수준이 된다. 해도 일찍 떠서 일출 시간에 맞춰 나가려면 가끔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출 때도 있었다. 새벽에 눈을 비비며 나가도 조금만 걸으면 금방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날씨가 더우니 무강이도 금방 지친다.      


폭우도 산책을 방해하는 요소다. 비는 적게 내리건 많게 내리건 어쨌든 몸이 젖는다는 사실이 나를 집에 묶어두곤 한다. 하지만 하루에 적어도 한 번은 나가야 무강이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풀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우비를 집어들게 만든다. 

다른 강아지들에 비해 무강이의 다리가 조금 긴 편이지만, 겅중겅중 걷는 발걸음에 빗방울은 사정없이 무강이의 털을 적신다. 단순히 빗물만 묻는다면 좀 낫겠지만 빗물과 함께 묻는 이물질이 문제다. 게다가 웅덩이를 골라 밟는 버릇은 하얀 털을 금방 더럽게 만든다. 매일매일 배를 씻어내면 진이 다 빠진다. 몸의 반만 씻어내는 일인데 온 몸을 씻기는 일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      


날씨만이 산책을 방해하는 건 아니다. 산책은 무강이 혼자 나갈 수 없다. 반드시 나나 남편의 동행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니 인간의 건강 역시 산책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만약 누군가 아프면 산책을 해줄 다른 사람이 있어야만 한다. 아무도 없으면 아픈 몸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 법정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진통제를 먹고 나가는 일도 많다. 그런 날은 평소보다 원반도 못 해주고 거리도 짧아지지만, 그래도 나갔다는 사실에 오늘 하루 다 끝냈다는 안도감이 든다.      


산책은 다녀온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다녀와서도 산책은 끝나지 않는다. 실내 생활을 하는 무강이가 여기저기 집안 곳곳에 발자국을 찍게 놔둘 수 없으니 꼼꼼하게 발을 닦아야 한다. 궂은 날씨는 무강이의 발을 더욱 더럽게 만들기 때문에 필수다. 가끔 비누칠을 해서 씻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물티슈와 마른 수건으로 해결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른 일을 해낼 기운이 없다.      


이렇게 고단한 절차를 마치면 무강이는 바로 침대에 자리를 잡는다. 잠시 몸을 핥다가 곧 눈을 감고 잠이 든다. 그러면 나는 그때부터 내 할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개와 함께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꽤나 큰 수고가 들어가는 일이다. 하루에 두 세 번 산책을 하면 아무 것도 안 했는데 금방 하루가 다 가버리는 기현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만큼 내 강아지에게 나의 수고를 다 써버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끔은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 무강이에게 살짝 섭섭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발을 닦는데 으르렁거리며 짜증을 내면 나도 덩달아 짜증이 나는 경우다.      


그래도 산책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무강이가 다시는 걷지 못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나는 무강이와 함께 산책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고 너를 데려왔다. 추워도, 더워도, 심지어 (내가) 아파도 산책은 빼먹을 수 없다. 늘 재미있는 경험과 편안한 일상을 누리게 해주고 싶은 것이 개를 키우는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사실 얼마 전 브런치 북을 만들고 난 이후로 더 이상 브런치를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때가 있었다. 책 한권을 만들었다는 마무리가 해방감을 안겨준 걸까? 끝났다는 완결성이 연필을 놓게 만들었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아도 무강이는 여전히 내 옆에 있었고 산책은 매일매일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브런치 역시 무강이와 함께 하는 산책처럼 끝을 내지 않고 계속 해보려고 한다. 그래도 계속하는 것이 산책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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