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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Jan 10. 2024

외계인 같은 내 강아지

함께 살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눈 온다!’    

 

출근한 남편의 메시지에 누워있던 나는 벌떡 일어난다. 창밖을 보니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마치 스노우볼에 갇힌 예쁜 풍경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얼른 목줄을 집어들었다. 눈이 오면, 나가야 한다.      


개를 키우기 전엔 눈이 오는 걸 그렇게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눈이 오면 길이 얼고, 그 후엔 질척해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잘 넘어지는 나는 빙판길에 여러 번 엉덩이가 깨진 적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눈이 온 다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눈이 오는 길은 보기엔 예쁘지만, 나가면 현실이다. 그러나 개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눈이 오면 가장 먼저 개가 생각나게 되었다. 내 강아지에게 첫눈을 밟게 해주고 싶었고 눈의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함박눈을 뚫고 공원에 가니 아무도 없다. 폭설 수준으로 퍼붓는 눈에 아무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이게 웬 횡재람. 우리는 내리는 눈을 맞으며 신나게 놀고 걸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드문드문 나온 사람들이 보인다. 그 사람들 역시 손에 줄을 잡고 있고 잔뜩 신난 강아지가 곁에 서 있다. 날씨가 궂어도 나와야 하는 사람들, 반려인들만이 공원을 채우고 있었다.      


눈폭탄을 맞으


우산, 우비 따위 챙기지 않았다. 우리는 맨 몸으로 눈을 맞으며 한 시간 이상을 산책했다. 나도 젖고 개도 젖었다. 어차피 씻길 각오를 하고 데리고 나온 산책이었다. 사실 궂은 날씨의 산책은 즐겁기만 하진 않다. 비나 눈이 오면 주변의 냄새가 달라지는지 평소보다 더 흥분하며 걷는다. 미끄러운 길에서 내달리듯이 걷는 무강이와의 산책은 힘이 두 배로 든다. 길에 잔뜩 뿌려진 염화칼슘도 피해서 걸어야 한다. 신발을 신겨보려고 했지만 정색하는 녀석 때문에 애저녁에 포기한 지 오래다. 다행히 바로 씻기면 된다는 글을 봐서 산책 후 매번 발을 씻는다. 그것도 힘들지만, 싫어하는 신발을 신기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에 매번 발을 씻고 닦고 말리는 전쟁을 되풀이 하는 중이다. 궂은 날씨에 나가는 건 개와 한바탕 씻고 말리는 전쟁을 기꺼이 치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매 순간 필요하다. 모르는 길도 물어보기 힘들던 나는 이제 처음 보는 가게에 들어가 강아지가 들어가도 되냐고 스스럼없이 물어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개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눈치 채고 인사해도 된다고 다가갈 수 있게 되었고, 처음 보는 강아지를 보면 자연스럽게 내 손등을 내어줄 수 있게 되었다.      

나 혼자라면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갈 수 있었지만, 내 옆에 개 한 마리가 붙은 뒤론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내 개를 인간들의 세상에 녹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거침없이 다가가 용기 있게 물어보고 원하는 것을 따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무조건 옳은 행동만 할 순 없으니 양보도 해야 하고 때로는 손해를 봐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의도치 않게 내가 피해를 주는 순간도 있다. 아직도 교육을 하며 산책을 하는 무강이는 예민한 기질을 조절하지 못해 짖거나 달려드는 경우가 있다. 너무 빠르게 달려오는 자전거나 오토바이는 무강이에게 지뢰처럼 터진다. 그럴 때면 개를 잡고 사과를 한다. 나의 사정으로 피해를 끼쳤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일을 몇 번 겪다 보니 길에서 짖는 개를 보면 혀를 차기보다 그 뒤에 숨어있을 사정을 먼저 헤아리게 되었다. 저런 개는 산책을 하면 안 된다는 탄식이 아니라 짖을 수밖에 없었던 앞 뒤 상황을 살피고 최대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본다. 내 개 역시 개의 입장에서 본다면 짖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카페에 갈 때는 얌전히 앉아있으려고 "노력" 합니다 ^_^


누구나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삶을 산다. 당연하게 피해를 주려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소위 민폐를 끼치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대단히 상식 밖에 있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앞뒤 상황을 살피고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한다. 공공장소에서 우는 아기, 키오스크 앞에서 헤매는 어르신,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휠체어를 보면 이젠 자연스럽게 다가선다.      


개를 키우게 되면서 내가 다가갈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삶의 범위까지 확장되었다. 시선이 넓어지면서 헤아릴 수 있는 상황 역시 많아졌다.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가 많아졌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뜻이다. 지구는 절대 인간만이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이런 단순한 진리를 개를 키우면서 깨달았다. 어쩌면 내 개는 말도 통하지 않는 인간 위주의 세상에서 홀로 떨어진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오로지 인간 위주로 돌아가는 지구에 외계인처럼 살아야 하는 내 개를 위해, 나도 그런 시선을 달아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니 세상도 나와 개를 위해 그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줬으면 좋겠다. 다 함께 사는 거, 생각보다 되게 재밌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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