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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Jan 17. 2024

내겐 너무 과격한 그녀

건강이 효도다!

 우리 집엔 인형이나 쿠션이 없다. 귀여운 소품을 좋아하는 나는 무강이가 온 이후로 솜으로 채워진 소품들을 모두 버려야 했다. 무강이가 전부 박박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집을 정리하다 먼지 쌓인 인형이 하나 나왔다. 인형을 꺼내는 순간 무강이는 자연스럽게 내 손에서 인형을 물고 사라진다. 그리고 처형식이 시작된다. 


이제 그만 제발 죽여달라고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던 토끼 인형은 곧 숨을 거둔다. 배에선 이미 하얀 솜이 삐져나와 있고 다리 하나는 너덜너덜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무강이는 달랑거리는 다리를 깔끔하게 물어뜯어 나에게 가져온다. 빨리 잡아. 나랑 놀자.      


무강이가 가져온 인형의 한 쪽 끝을 잡으면 그 때부턴 목숨을 건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무강이는 온 몸의 힘을 실어 있는 힘껏 인형을 당긴다. 나 역시 인형을 서로 당긴다. 인형의 텐션이 높아질수록 무강이의 목에선 기분이 좋다는 그르릉 소리가 나온다. 잔뜩 신난 표정으로 인형을 물고 당기며 우리의 놀이가 시작된다.      

이 놀이는 터그놀이라고 부른다. 강아지들은 입으로 물고 당기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너무 좋아해서 집에선 웬만하면 터그놀이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너무 흥분하기 때문이다.      


“악!”     


한참을 신나게 놀아주다가 다리에 통증이 왔다. 무강이가 인형을 물다가 내 다리까지 함께 물어버린 것이다. 괴로운 내 비명과 달리 무강이의 표정은 해맑기만 하다. 너무 재밌다는 표정에 이걸 야단을 치기도 머쓱한 상황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무강이는 일부러 내 다리를 물려고 한 것은 아니다. 인형을 물었는데 내 다리까지 제 입에 들어온 것일 뿐이다. 도무지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해맑은 표정을 보니 야단을 쳐도 뉘우치지도 못할 것 같아서 놀이를 그만두었다.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무강이의 놀이는 꽤나 격하다. 반갑다고 온 몸을 부딪쳐 애정을 표시하고, 원반이 다 헤져 걸레짝이 될 때까지 놀아야 한다. 처음엔 이 방식에 적응하느라 우리 부부는 팔다리에 근육통을 달고 살아야 했다. 무강이가 나에게 전속력으로 달려와 점프하고 내 몸을 물 때 나는 큰 소리로 혼을 내지 않았다. 그 뒤에 깔린 무강이의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너무 좋아해서 어쩔 줄 모르는 반가움이 나에겐 너무 격한 표현으로 다가온다.      


너덜너덜한 원반이 외친다. 이제 그만 죽여줘..


다만 이게 잘못이라는 건 알려줘야 한다. 무강이가 이렇게 날뛰는 이유는 우릴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니, 우린 너의 이런 방식을 좋아하지 않으니 너와 놀지 않겠다고 자리를 피한다. 혹은 반응을 멈추거나 아예 시선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진정하고 옆에 털썩 엎드린다. 그럼 그때서야 인간의 표현 방식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애정을 표시한다. 이렇게 살다보니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외출하고 돌아올 때마다 두 발로 깡충깡충 뛰어주며 반기는 건 그대로다.      


무강이가 얌전해질수록 의젓해보여 뿌듯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철없고 해맑은 무강이에게 점점 나이듦이 보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젠 단골카페에 가서도 30분을 얌전히 앉아있을 수 있다. 1년을 꼬박꼬박 다닌 끝에 드디어 그 장소에 익숙해졌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내가 옷을 벗을 때까지 꼬리를 흔들며 엎드려 기다려주기도 한다.      


무강이는 지치지 않는다


가끔은 이 과격한 애정이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온 몸으로 반갑다고 표현해주는 존재가 나에게 몇이나 있을까? 이런 애정은 오로지 개, 반려동물만이 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저 잠깐 외출했다 돌아왔을 뿐인데도, 혹은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도 순도 100%의 애정을 표현해주는 존재는 개가 유일무이하다.      


언젠가 우리가 헤어지는 순간이 온다 해도, 내 기억 속 무강이의 모습은 언제나 해맑고 과격한 애정을 보여주는 강아지로 기억할 것이다. 무강이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과격한 애정을 선물해주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만수무강하라고 이름도 무강이로 지은 무강이가 어느 날부터 조금씩 얌전해진다면 매우 마음이 아플 것 같다. 건강과 활기를 잃어버린 무강이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무강이의 애정이 부담스럽고 때로는 몸에 상처를 입히기도 하지만, 이젠 이 애정이 없으면 너무 허전한 지경이 되었다. 그래봤자 그저 개일 뿐인데. 그 작은 개 한 마리가 주는 변화가 삶에 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살면서 큰 소리 한번 내지 않고, 공원은 그저 걸어다니는 곳일 뿐이었던 내 일상은 이제 공원에서 개와 함께 뛰고 뒹굴며 놀아주고 가끔은 야단치느라 큰 소리도 내며 살게 되었다.      


산책하고 놀아주느라 팔다리에 상처가 가득해도 우린 너를 사랑하는 일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너의 과격한 애정을 받아주기 위해선 언제나 건강하고 강한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늘 다짐한다. 무한한 애정을 무한하게 받아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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