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형? 외향형? 뭐가 중한디?!
<내향형 인간에서 외향형 인간으로?!>
요즘 내 일상은 많이 바빠졌다. 출퇴근 이외에도 다양한 일정이 내 일상을 채우고 있다. 가장 먼저 글쓰기 모임을 들 수 있다. 글 쓰는 습관을 길러보기 위해 동네 책방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에 참가하고 있다. 우리 동네에 이런 책방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무강이와 산책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지나가는 길에 종종 들러 인사만 드리다가 글쓰기 모임이 열린다길래 냉큼 참가해서 열심히 마감에 쫓기고 있는 중이다.
또 다른 저녁엔 수영장에 간다. 수영은 내가 초등학생 2학년 때부터 하던 운동이다. 어렸을 때 아토피 피부염을 심하게 앓았는데, 그 땐 피부가 단순히 건조해서 그런 줄만 알고 수영을 가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이런 행동을 하는 아토피 환자들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까마득한 그 때, 그땐 그랬었다. 아토피는 수영장이 아니라 이사를 가고 나서야 나았고 수영은 지금도 계속 하고 있다. 수영을 오래 하다 보면 자연스레 아는 사람들이 생긴다. 강습을 오랫동안 받다 보니 얼굴이 익은 동료들이 생겼다. 지금은 그 친구들과 함께 한달에 한번 회식도 한다. 운동 얘기만 하다가 자리가 끝나는 모임이다.
이런 내 일상을 들은 친구는 네가 어떻게 내향형이냐며 놀란다. 말만 들으면 ENFP 아니야? 하는 질문에 나는 도리어 역질문을 한다. 아닌데? 나 INFP 인데? 완전 쌉 I 인데?!
<외향형 강아지에서 내향형 강아지로?!>
무강이의 하루 일과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일정이 있다면 바로 산책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두 번은 꼬박꼬박 나간다. 매일 걷는 똑같은 길이지만 지나치는 사람들, 동물들은 다르다. 평소 익숙한 사람이나 동물이라면 반갑게 인사를 하겠지만 낯선 동물이 무강이의 앞에 나타난다면 사정은 다르다.
사실 무강이의 외향성은 사람에게만 발현된다. 사람의 손길은 그렇게 좋아하는 녀석이 처음 보는 강아지를 만나면 180도 돌변하여 순식간에 이빨을 드러낸다. 심하면 서로 싸우기도 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처음 무강이를 데려오던 날, 그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강아지와 만남을 가졌다. 무강이는 우리와 유대감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강아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도 그 친구와는 만나지 못한다. 멀리서 서로의 존재만 확인하고 카톡으로만 반가웠다고 후일담을 나누는 게 전부다.
하지만 만나는 모든 개들을 이렇게 보낼 순 없다. 만나는 강아지 모두와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지만 그 모두와 싸울 필요도 없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매 순간 무강이를 교육시킨다. 낯선 강아지가 올 때, 오토바이가 마주 올 때, 커다란 우산을 든 사람이 지나갈 때 등등.. 들쭉날쭉한 세상에 무강이가 적응해야 할 것은 너무 많았다.
무강이는 분명 사람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한다. 몇몇 뿐이지만 친하게 지내는 강아지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자신이 함께 놀 수 있는 강아지를 정해놓고 사는 것 같다. 이 친구들 아니면 절대 놀지 않겠다는 결의까지 엿보이는 것 같다. 뭐 그것까진 존중해줄 수 있다.
하지만 보자마자 꺼지라고 짖어대는 것만큼은 제발 안 해줬으면 좋겠다. 부탁이다.
<어쩌면 서로 닮아가는 걸지도 몰라>
어쩌면 우리는 서로 닮아가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무강이와 함께 다니면서 낯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며 다가가는 법을 배웠고, 무강이는 자기 눈에 거슬린다고 함부로 들이대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외향, 내향으로 나뉘는 성향은 말 그대로 성향일 뿐이다. 성향은 성질에 따른 경향을 부르는 말로, 성격, 가치관 등이 해당한다. 보통 이러한 성향을 MBTI, 심리테스트 같은 재미로 알아보는 때가 많다. 나는 지금도 MBTI 테스트를 하면 INFP와 INTP가 번갈아 나온다. 무강이를 기르면서는 가끔씩 ENFP가 나오기도 한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다양한 사람과 상황을 많이 만나게 된다. 변수가 많은 상황을 겪게 되면서 올곧게 지켜왔던 나만의 생각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러면서 나만의 우주가 만들어진다. 성향이나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험한 세상에 살아가려면 가면을 쓰듯이 자신의 처세를 바꿔야 하는 상황은 반드시 생긴다. 성향은 바로 이럴 때 빛을 발한다.
성향은 본성이 향하는 방향이라 볼 수 있다. 성향의 각 한자어를 풀어보면 성품 성 性 향할 향 向을 뜻하는데, 직역해보자면 당신의 성품이 향하는 방향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방향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도착지가 어디든 간에 인생이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이미 옳은 방향이다.
나와 무강이의 성향 역시 살면서 수시로 바뀔지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올곧게 서 있다가 꺾이는 대나무보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남는 갈대의 삶이 더 유의미하다고 하지 않는가. 살아남는 방법으론 갈대의 삶도, 대나무의 삶도 무엇 하나 옳다고 정의할 수 없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