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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Jan 31. 2024

산책은 짧게, 자주, 천천히 걷자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

   

무강이를 처음 만났을 때, 과연 우리 잘 살 수 있을지 의문부터 먼저 들었다. 비가 온 다음날 방문한 농장은 진흙이 가득 차 발이 푹푹 빠졌다. 무강이는 빗물과 진흙, 그리고 그 곳에 살고 있는 다른 동물들의 오물까지 모두 뒤집어 쓴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사실 나는 무강이를 데려올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덜덜 떨고 있는 강아지를 본 순간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이러고 있는데 어떻게 그냥 두고 옵니까


강아지를 처음 집에 데려왔다면 목욕은 웬만하면 참는 게 좋다고 한다. 면역력도 문제지만 집에 오자마자 심은 첫 기억이 좋아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무강이의 몸에선 도저히 참아줄 수 없는 냄새가 났다. 결국 우리는 무강이를 씻겼고, 영문 모르는 무강이는 온 몸이 굳은 채 목욕을 해야 했다. 지금도 무강이는 목욕을 싫어한다. 어쨌든 어린 무강이는 샴푸 냄새로 겨우 덮은 오물 냄새를 퐁퐁 풍기면서 집안을 활보했다. 그때 또 의문이 들었다. 우리 진짜 잘 지낼 수 있겠지?     


나의 걱정과는 무색하게 무강이는 이리저리 냄새를 맡고 다니면서 인형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아깐 이리저리 치이는 걸 봤는데, 혼자가 되니 지가 대장이 되었다. 배변패드도 바로 잘 알아보고 패드를 찢어발기는 저지레도 하지 않았다. 가구를 갉거나 물어뜯는 사고도 치지 않았다. 무강이가 뜯는 건 오직 인형뿐이었다.      

무강이의 말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 같이 산 지 3년이 다 되어 가는 데도 아직 무강이의 언어를 몰라 실수하는 순간이 많다. 무강이만이 보이는 미세한 카밍시그널을 놓쳐 예민한 기질이 폭발할 때도 많았다. 분명 방금 전 까지 잘 놀다가 갑자기 싸워대는 강아지들을 보며 속상해서 오던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내가 개를 키울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일주일 동안 줄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고 다니고 하지 않아도 될 불필요한 통제까지 해가며 무강이를 채근했다. 정작 고쳐야 할 건 나였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0살 4개월때의 모습 


무강이와 나는 너무 달랐다. 사람을 피하는 나와 사람을 좋아하는 무강이가 서로 맞을 리 없었다. 무강이는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에게 자주 짖었다. 처음엔 사람에게 공격성이 있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당황한 나는 사람만 보면 피해 다녔다. 나중에 가서야 알았다. 무강이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사람에게 짖는 이유는 바로 보지만 말고 빨리 만져달라는 요구성 짖음, 한마디로 떼를 부리는 거였다. 이제 나는 무강이를 가만히 쳐다보는 사람을 보면 먼저 다가간다. 인사해주셔도 돼요. 사람 좋아해요. 만져주세요.      


무강이가 진짜로 싫어하는 것도 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다른 강아지였다. 활발해 보이지만 예민한 무강이는 시야도 넓다. 그만큼 신경쓰는 범위가 컸다. 멀리서 달려오는 강아지,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는 까치들, 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는 청설모 등 무강이의 신경을 거스르는 게 너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줄을 매번 채지 않고 무강이가 나를 향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준다. 이러면 다섯 번 중 세 네 번은 내 옆으로 돌아와 준다. 우리의 산책은 그렇게 천천히 걸어간다. 다섯 번 중 한 두 번은 어쩔 수 없이 무강이가 폭발하는 순간이다. 우리가 아무리 조심하고 다녀도 마찰이 일어날 때가 있다. 멀리서 달려오는 강아지를 보고 최대한 구석으로 피했지만 어쩔 수 없이 눈이 마주쳐버리는 경우다. 무강이는 여지없이 짖고 나는 녀석의 몸을 최대한 잡아 바닥에 고정시킨다. 강아지가 사라지면 무강이는 씩씩대다가 잠시 뒤에 겨우 진정한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너만 기분 좋으면 다냐 이것아. 싫어하는 것도 많으면서 그만큼 쿨하게 잊어버리는 것 같아 황당하기도 하지만, 귀여워서 봐준다는 심정으로 산책을 계속한다.      


아직도 우리는 이해하는 중



무강이를 이해하면서 포용할 수 있는 상황의 범위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을 사귈 때 그 사람의 우주가 나에게 온다고 얘기하곤 한다. 개도 마찬가지다. 모든 생명이 저마다의 우주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무강이를 데려온 날, 무강이의 우주도 우리의 우주와 결합했다. 서로의 세상이 합쳐져 더 다양하고 풍성한 우주가 만들어졌다.      


무강이 역시 우리의 세상을 이해해주고 있다. 무강이는 분리불안이 심했다. 무강이는 혼자 있는 걸 못 견디는 강아지였다. 처음 무강이를 두고 외출했던 날, 무강이는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내내 짖고 울었다. 우리는 그날부터 무강이를 웬만하면 혼자 두지 않는다. 어떻게든 같이 있으려고 노력하고 불가피한 사정이 생길 때에는 호텔링을 하거나 분리불안에 좋은 장난감을 주곤 한다. 혼자서 열심히 장난감을 물어뜯는 모습을 펫캠으로 지켜볼 때면 흐뭇한 미소가 감돈다. 이제 짧은 외출 정도는 아무런 장난감 없이 그냥 나가도 얌전히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철 든 강아지 아닌가?     


아직까지 우리의 호흡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계속 공부하고 정보를 알아보며 뭐가 더 맞는지 비교하고 체크하며 살고 있다. 무엇이 옳은지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산책을 계속한다. 우리의 산책은 짧게, 자주, 천천히 걷는다. 매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놀이를 해도 우리는 다르게 재밌다. 그날그날의 해가 다르고 만나는 사람이 다르다. 가끔은 친구를 만나 놀기도 한다. 그러면 더 재밌다. 질리도록 놀기보다는 아쉬울 때 헤어져야 다음에 만날 때 더 반갑다. 매일 밟는 잔디공원의 냄새를 깊숙이 맡으며 어제는 없었던 버려진 공을 발견하면 그날 하루는 로또 4등 맞은 것처럼 기분이 좋다.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을 보내면서 점점 닮아가는 우리를 본다. 절대 헤어질 수 없는, 그래서 평생 같이 살아야 하는 따끈한 몸을 껴안으면서 오늘도 산책을 나가기 위해 주섬주섬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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