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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Feb 07. 2024

너는 너무 이중적이야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기

  

분석심리학 이론을 창시한 융에 따르면 누구나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이지는 않으며 두 가지 태도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겉보기에는 외향적이라 할지라도 무의식에서는 내향적일 수 있고, 반대로 의식에서는 내향적이라 할지라도 무의식에서는 외향적일 수 있다.

 
- 책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게 발췌     



흔히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우린 나쁜 사람이라 일컬으며 저러면 안된다고 손가락질한다. 나에겐 좋은 미소를 보였던 사람이 뒤에 가선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있다. 이 역시 사람의 다면적인 모습 때문에 나온 말이다. 그만큼 사람은 복잡한 속내를 품고 살아가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사회는 다양한 관계로 맺어진 신경망 같은 생태계다. 이 복잡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처세는 필수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내향인에게 가장 곤욕스러운 순간이 있다. 바로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장기자랑 하기 이다. 굉장히 억지스러운 설정 같지만 나는 몇 번 겪어봤다. 이런 일은 생각보다 꽤 자주 일어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보면 많은 사람의 시선을 한 곳에 받아야 했던 순간들이 몇 개 떠오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그런 순간이 오면 귀가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얼어붙기만 했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안다 해도 하기 싫었다. 객석에서 박수라면 손이 닳도록 쳐줄 수 있지만 그 주인공이 되기는 싫었다. 나는 그런 주인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을 때가 온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부딪쳐야 했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춤도 추고 연기도 했다. 궁지에 몰리니 생존의 몸짓으로 터져 나왔다. 이제 다시는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즐거운 추억이지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마치 남자들이 군대 얘기를 즐겁게 하지만 재입대 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꺼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이라는 커다란 뿌리는 변하지 않지만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할 수 있는 유연성이다. 그러니 자신의 성향을 굳이 하나의 유형에만 가두고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누구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강아지마저도.      


무강이는 누구나 인정하는 외향적인 강아지다. 무강이를 본 사람들은 녀석의 해맑은 미소에 모두 경계를 풀고 다가와 준다. 사람을 좋아하는 무강이는 행복한 미소를 얼굴에 잔뜩 띠고 꼬순내 폴폴 나는 정수리를 들이댄다. 이런 강아지가 어떻게 내향적이겠는가! 하지만 내향적인 면이 분명히 있다.      


무강이는 모든 사람들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간혹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다가와 주시는 분들이 있다. 호감을 표현해주는 건 너무 고맙지만 소리를 지르며 다가오면 무강이가 놀란다. 무강이는 그런 사람들을 피해 내 곁에 숨어버린다. 나는 죄송한 마음에 무강이를 어떻게든 끌어내보려고 하지만 요지부동이다. 이미 상한 마음은 돌이킬 수 없었다. 혹은 너무 조용히 쳐다봐서 싫어하는 타입도 있다. 강아지가 예쁘다고 눈을 계속 쳐다보면, 개는 그걸 공격하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조용한 카페에서 무강이에게 계속 눈을 맞추던 여자분이 계셨다. 워낙 말없이 쳐다보셔서 나도 그 시선을 느끼지 못했는데, 무강이는 그 시선에 그만 크게 짖고 말았다. 조용한 카페가 무강이의 짖는 소리로 크게 울렸다.      



친구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슬픈 뒤통수


무강이는 개도 좋아한다. 단, 자신이 아는 개만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만난 친구가 아니면 멀리서도 이빨을 드러낸다. 덕분에 나는 걸어다닐 때 시야가 훨씬 넓어졌다. 무강이보다 더 멀리 봐야 낯선 강아지와의 원치 않는 마주침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녀석의 이중적인 면은 또 있다. 사실 무강이는 나를 좀 귀찮아하는 것 같다. 침대에 배를 뒤집고 누워 있다가 내가 누우면 바로 일어나버린다. 내가 침대에 누워있으면 밥 달라고 깨울 때 말고는 가까이 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침대에서 강아지랑 껴안고 뒹굴 거리기도 하던데, 나는 그런 순간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무강이가 아주 독립적인 성격인 줄 알았다. 하지만 무강이를 두고 외출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 살 이전엔 분리불안이 너무 심해서 몇 시간동안 계속 울기도 했다. 혹시나 싶어 설치한 카메라에 4시간 내내 울고 있는 모습만 찍혀 있는 걸 보고 바로 펫캠을 사고 분리불안에 좋은 교육을 꾸준히 했다. 지금도 부부만 외출해야 할 때면 꼭 장난감을 한가득 선사해주고 나가야 마음이 놓인다. 무강이는 생각보다 의존적이며 내향적인 면을 가진 강아지였던 것이다.      


무강이가 이런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나쁜 개일까? 아니다. 그저 그런 성격을 가진 강아지일 뿐이다. 무강이와 함께 살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면모를 마주했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때로는 문제가 있다고 여겨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무강이의 모든 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규범은 지켜야 하겠지만, 최대한 무강이의 본성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이해하며 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가끔 내향적인 면이 현대 사회에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억지로 성향을 바꾸려는 사람을 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역효과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향적인 면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일부러 큰 목소리를 내고 나서지 않아도 될 순간에 나서보면 그 순간은 잘 넘겼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마 집에 와선 엄청나게 지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설빔 리본 하고 활짝.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겉과 속이 다른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일 뿐이다. 사람도 개도, 이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무강이도 우리도 각자의 성향에 맞는 방식을 선택하기로 했다.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그것마저도 정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나하나 맞춰가면서 진짜 우리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인생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아마 원하는 장면이 빨리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여기저기 손볼 곳도 많고, 덧칠하거나 다시 그려야 하는 장면도 나올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함께 한 장의 인생을 그리며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행복할 것 같다. 그게 아마 정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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