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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Feb 14. 2024

나와 정 반대의 강아지

정확히 다른 성향과 함께 산다는 것


SNS에 MBTI 유형별 잘 맞는 반려견 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호기심에 살펴본 이미지엔 보더콜리도 들어가 있었다. 보더콜리는 INFP인 나와 정확히 정 반대인 ESTJ인 사람과 잘 맞는 반려견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출처 : 비주얼다이브


흔히 성향의 반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I(내향형)이냐 E(외향형)이냐로 구분하곤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정확하면서 세세한 구분이 가능한 성향이 있으니, 바로 S(감각형)와 N(직관형)의 차이다. S는 Sensing, 즉 감각형을 뜻한다. N은 Intuition으로 직관형을 뜻한다. 이 단어는 정보를 인식하는 유형에 대한 차이를 나타낸다. S는 보이는 그대로 관찰하고 바라보려 한다. 그래서 어쩔때는 너무 직설적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N은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을 보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망상이 많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 망상과 상상력이 창의력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물론 사람의 성격유형인 MBTI를 강아지에게 들이대는 것은 상당히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3년여를 지켜본 결과 무강이의 성격과 나의 성격은 정말 많이 달랐다. 정반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차이가 났다. 나는 N이 상당히 발달한 직관형의 타입이다. 그래서 길을 걸으면서도 다른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러나 무강이는 산책을 하면 산책에만 집중한다. 길을 걷다가 자신을 사로잡는 냄새가 나타나면 바로 멈춰서 냄새를 맡고, 확인하고, 자리를 뜬다. 이 냄새가 어디서 왔는지, 누구에게서 묻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정보다. 무강이에겐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      


상상력이 많은 내 별명은 걱정부자이기도 하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하도 걱정을 많이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러나 무강이는 바로 직진하는 스타일이었다. 산책을 하다 샛길이 보이면 반드시 방향을 틀었다. 가던 길로만 가는 걸 좋아하는 나와 부딪쳤다. 산책하다 마주친 사람이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꼬리를 흔들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의 옷에 털 한 오라기라도 묻혀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나 나는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번화가에 가는 것도 조심스럽다.      


아빠가 뭐 먹는지 궁금한(먹고 싶은) 무강이


무강이는 호기심이 많은 강아지다. 궁금하면 신경이 쓰이고, 신경이 쓰이면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직접 확인하지 못했는데 신경이 쓰이면 큰 목소리로 짖는다. 그것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가 실체를 확인하고 냄새를 맡아서 정체를 밝혀야 조용해졌다. 그래서 지난겨울, 갑자기 생겨난 눈사람을 보고 많이도 짖었다. 당황한 나는 눈사람을 확인시켜주는 대신 반대의 방향으로 끌어당기기만 했다. 공원엔 사람들이 많았다. 무강이의 짖음이 다른 오해를 살까봐 무서웠다. 큰 개의 짖음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불렀다. 짖음이 곧 문제가 되는 도시에 사는 이상 무강이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살아야 했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공원 구석에서도 눈사람은 거대하게 서 있었다. 무강이는 또 자세를 낮추며 경계 태세로 들어갔다. 나는 주변을 살펴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다음 눈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번엔 무강이가 마음껏 눈사람을 관찰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었다. 무강이는 눈사람의 냄새를 자세히 맡더니 이제 다 끝났다는 듯 갈길을 재촉했다. 그러고 나선 단 한번도 눈사람을 보고 짖지 않았다.      


내가 강아지를 키우고, 게다가 보더콜리를 데려왔다고 했을 때 주변 친구들은 놀람과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 집순이인 네가 다른 개도 아니고 보더콜리를 키운다는 사실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보더콜리를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기 때문에 당연했다.      


개를 키우면서 가장 노력했던 일은 아무래도 교육과 훈련이었다. 우리 개가 도시의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시 말하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힘을 기울였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무강이의 성향을 우리의 성향에 맞추도록 길들이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내향형인 우리 부부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무강이에게 무조건 우리의 방식에 맞춰 살라고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무강이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많았고, 위탁훈련소를 보내야 할지, 우리의 방식을 바꿔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사실 지금도 무강이는 혈기가 왕성하지만 1살 이전의 무강이는 더더욱 혈기가 왕성했다. 팔에 근육통이 생길 정도로 줄을 당겼고 지나가는 모든 것에 반응하여 짖었다. 우리는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여 강도 높은 체벌을 생각했다.      


무강이는 자신의 삶을 말하고 있었다. 무강이가 살던 곳은 아무것도 없던 농장이었다. 치아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유치가 까맣게 죽을 정도로 안 좋았던 환경에서 갑자기 드넓은 공원과 실내의 집으로 오니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자신을 스치는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이상하게 보였을테다. 그걸 우리는 알아주지 않았다. 그저 이제 우리의 개가 되었으니 우리의 삶에 녹아들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었다.      


언니 뭐 들고 있어요 줘봐요 내가 입으로 확인할게요


우리는 무강이의 방식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종과 함께 산다는 것은 그의 세계와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을 1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정반대의 성격을 그대로 고치려고 들기보단 그의 성격을 공부하고 이해하며 받아들여야 온전한 관계가 완성되는 것이었다. 수많은 성향, 성격 관련 심리상담 테스트가 유행하는 것 그만큼 서로를 더 알고 싶어하는 당연한 욕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      


세상의 중심은 당연히 나로부터 돌아가는 것라곤 하지만, 세상이 모두 나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나를 비롯하여 다양한 사람이 있고 동물, 자연이 있다.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것들을 공부하고 이해하려 하다 보면 이전보다 더 달라진 세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엔 강아지를 위한 MBTI, 즉 멍BTI 테스트가 나온 것도 봤다. 그 테스트에서 무강이는 과연 무슨 유형일까? 아직 해보진 않았지만 결과를 어렴풋이 예측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무강이는 호기심이 강하고 통제 성향이 강한 전형적인 보더콜리다. 그만큼 감각이 발달하고 예민해서 도시에선 말썽도 많이 부리지만, 이건 무강이의 타고난 성향이다.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말이 있다. 무강이의 말썽은 문제가 아니다. 그냥 그렇게 타고난 것일 뿐이다. 우리는 그걸 공부하여 도시의 기준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그래도 좋은 보호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여전히 산책을 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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