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익호 Feb 21. 2024

J와 P의 차이

파워 J와 파워 P가 만나 모두가 배려받는 세상을 꿈꾼다


다른 사람과 나의 성향이 다르다고 느끼는 구체적인 순간은 바로 여행을 함께 다니는 때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친한 친구와 여행을 가고 돌아올 땐 원수가 된다. 다시는 얼굴을 안 보는 사람도 많다. 여행을 가기 전 아무리 세심하게 조율을 하고 계획을 짜도 막상 비행기를 타고 떠나면 그런 합의가 전부 무너지는 때가 많았다.      


여행은 변수의 총 집합이다. 생전 처음 가보는 초행의 여행지. 게다가 만약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이라면 변수의 수는 더 많아진다. 그런 상황에 던져진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이 어떻게 한 번의 마찰도 일으키지 않고 즐거운 여행을 하다 올 수 있겠는가. 예전엔 이런 차이를 그저 성격 차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했지만 이제는 이런 차이를 말할 수 있는 기준이 생겼다. 바로 MBTI 유형 중 J와 P의 차이다. 


MBTI 유형 중 맨 끝에 자리하고 있는 이 두 단어는 판단형-J-와 인식형-P-로 나뉜다. 이 둘의 차이는 계획성의 유무로 나뉜다. P는 큰 틀에서의 판단만을 마친 상태이고 그 이상은 정보를 인식한 뒤 판단하고자 한다. 반면 J는 미리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을 내리고자 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들이닥쳤을 때 P 성향의 나는 일단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 다음 단계를 어떻게 나아갈지를 생각한다. 그러나 J 성향의 친구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겼다는 그 자체에 일단 짜증이 난다. 그래서 왜 그 상황이 벌어졌는지 분석한다. 하지만 나는 일단 벌어진 상황을 얼른 수습해야 하니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길 원한다. 친구는 원인에 집중한다. 이렇게 싸움이 난다.      


다행히 우리는 여러 해 동안 만나면서 각자의 성향을 이해하고 한동안 각자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는 등 개인적인 활동을 중시하기로 했다. 개인적인 시간이 주어지니 달아올랐던 마음이 진정되고 우리는 친한 친구의 사이를 몇 년 동안 이어올 수 있었다.      


너무 다른 우리지만 잘 살아보자



이런 상황은 나와 무강이의 사이에서도 여러 번 생긴다. 특히 무강이는 양몰이견의 대표 종인 보더콜리이며, 훈련사도 인정한 아주 훌륭한 워킹독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보더콜리는 보통 쇼독과 워킹독 두 가지로 구분되어 길러진다. 쇼독은 말 그대로 도그쇼 위주에 나가기 위해 개량된 개다. 털이나 몸의 골격, 형태, 성격 등이 모두 보기 좋고 예뻐야 하며 기준에 맞을수록 좋은 개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워킹독은 말 그대로 일을 하는 개다. 워킹독은 예쁠 필요도 없다. 일만 잘하면 된다. 보더콜리의 원래 사용 목적에 맞게 양을 잘 몰면 된다. 수많은 개량으로 보더콜리는 양몰이에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      


문제는 이 양몰이의 대표적인 행동이 바로 양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양을 통제하는 특성이 도시로 옮겨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들판에서 마구 달리며 양들을 몰았던 특성은 도시를 쌩쌩 달리는 오토바이를 몰기 위해 도로로 달려들게 만든다.      


강아지는 매우 계획적이다. 일상의 루틴을 지켜줘야 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가고 매일 같은 시간에 밥을 먹어야 행복하다고 한다. 그래서 무강이는 동이 트면 침대에 올라와 자고 있는 나의 얼굴을 툭툭 친다. 얼른 밥 먹고 산책 나가야 한다고 말이다. 무강이의 거친 발바닥과 꼬순내가 침대에 달려들면 그 때부터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비몽사몽 일어나 밥을 챙겨주고 하네스를 입히고 외투를 걸친다.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마시면 그때부터 정신이 든다. 이른 아침의 공원은 조깅하는 사람조차 없다. 겨울의 서리가 녹지 않아 하얗게 얼은 잔디에 도착한다. 무강이는 잔디를 밟으면 노는 걸 알고 있다. 잔디에 왔으니 놀아야 한다고 나에게 두 발 들어 점프한다. 옷에 무강이의 발자국이 남는다. 툭툭 털어내고 원반을 꺼내주면 한쪽 다리를 들고 집중한다. 던질 듯 말 듯 무강이의 약을 올리며 원반을 던져주고, 가져오면 터그 놀이를 해준다. 그래서 우리집 원반은 무조건 저렴한 걸 사야 한다. 튼튼한 이빨에 원반이 금방 망가지기 때문이다. 원반을 몇 번 던져주다 보면 내 몸에도 열이 오른다. 무강이의 입에선 이미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제 놀이를 끝내자는 의미로 기다리게 한 다음 잔디 곳곳에 간식을 숨겨두었다. 열심히 코를 킁킁대며 간식을 찾는 노즈워크를 끝내면 잔디에서의 일정은 모두 끝난다.      


노는 산책이 끝났으면 걷는 산책이 시작된다. 무강이는 배변을 하는 장소도 정해져 있다. 어지간히 급한 용무가 아니면 아스팔트 위에선 잘 보지 않는다. 푹신한 수풀이 길게 자라 우거진 곳을 선호한다. 자신의 몸을 가릴 수 있는 길이면 더 좋다. 그래서 나는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 무강이의 응가를 주워야 한다. 가끔 보이지 않아 플래시를 켜고 샅샅이 찾아야 할 때도 있다. 그래도 응가 찾기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따끈한 응가를 주워 봉투에 담고 쓰레기통을 향해 다시 걷는다. 걷는 산책이 다 끝나갈 무렵, 무강이는 줄을 다시 끈다. 자신만의 길로 요리조리 가다 보면 단골 카페가 나온다. 사장님과 손님들의 예쁨을 마음껏 받고 난 뒤에야 집에 가자고 조른다.      


여기까지는 행복한 산책의 루틴이다. 그러나 모든 일엔 항상 변수가 있다. 불쑥불쑥 나타나는 변수는 무강이를 패닉에 이르게 만든다. 계획적인 강아지에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표적으로 인도를 질주하는 오토바이가 그렇다. 몇 년간 꾸준한 산책 덕에 도로 위를 지나가는 오토바이는 얌전히 보내줄 수 있게 되었지만 인도를 질주하며 정면으로 마주 달려오는 오토바이는 내가 봐도 놀랄 정도다. 그러니 무강이는 어쩌겠는가. 사고를 막기 위해 무강이의 몸을 잡고 힘을 주어 버티다 보면, 그 작은 심장이 콩닥거리는 진동이 내 손 전체를 울린다. 오토바이나 스포츠카의 엔진이 부릉거리는 소리가 개에게 공격적인 소리로 들린다고 한다. 동네 전체를 크게 울려대는 그 엔진 소리가 청각이 몇 배로 발달한 개에겐 어떻게 들리는지 굳이 상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런 소리를 무강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참아내며 극복하고 있었다.      


또 다른 변수는 오프리쉬 강아지다. 오프리쉬는 오프(off) 리쉬(leash)를 발음한 것으로 리쉬(리드줄)을 오프(놓았다)는 의미다. 직역 하자면 목줄을 하지 않은 강아지다. 도시엔 강아지가 뛰어놀 곳이 매우 부족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곳이나 줄을 풀어놓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한국의 도시는 개에게 너무 위험하다. 공원의 잔디광장 같은 곳에서의 오프리쉬는 나도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는 편이다. 그런 곳에서라도 맘껏 뛰어노는 강아지를 보면 행복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외의 곳이다. 산책로를 걷다가 줄이 풀린 채 달려오는 강아지를 보면 나까지 패닉이 온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무강이는 마구 짖는다. 이 짖음에 대형견이라는 편견이 덧씌워지면 무강이는 순식간에 공격적이며 입마개를 해야 하는 문제견으로 인식된다. 혹은 멀리서부터 무강이를 보고 짖는 강아지도 있다. 사회성이 부족한 일부 강아지는 뭐든지 보기만 해도 짖는다. 무강이 역시 어렸을 때 그랬으니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통제를 하지 않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개가 있는 힘껏 우리에게 달려들려고 몸을 달려드는데 보호자는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고 가던 길을 간다. 걷는 산책을 방해당한 건 무강이인데 우리는 오히려 구석에 숨어 그 개가 지나가길 기다려야 했다. 물론 여기서도 무강이의 심장은 뛰었고 호흡은 거칠어졌다. 우리는 진정하기 위해 또 다시 기다려야 했다.      


새로운 곳에서의 산책은 즐거운 변수가 된다



파란 하늘과 양만 있던 들판과 달리 도시는 이것저것 튀어나오는 변수가 너무 많은 환경이다. 이런 환경에서 계획적인 삶을 꿈꾸는 무강이의 본능은 매우 힘든 순간을 맞이하곤 한다. 개를 훈련하거나 통제하기 위한 방법을 배울 때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단어가 사회성이다. 개의 사회성이란 인간의 규칙에 잘 따를 수 있는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인 것 같다. 얼마나 본능을 억누르고 도시의 삶에 적응할 수 있는가. 얼마나 본성을 죽일 수 있는가.     


계획적인 무강이의 일상에 패닉이 오지 않도록 나는 앞으로도 여러 가지 변수에 대응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인도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도 줄이 풀린 채 달려드는 강아지도 모두 내가 막아줄 수 있길 바란다.      


무강이와 함께 살면서 개와 인간의 기준이나 삶이 얼마나 다른지 몸소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많다. 인간은 자연을 밀고 도시를 만들었지만 그것이 이 지구의 기준이 되는 건 아니다. 인간이 자연을 가질 수 없듯이 말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기준을 이해하며 배려하는 도시가 되길 꿈꾼다.           

이전 09화 나와 정 반대의 강아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