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탁란 된 욕구도
오래 품으면 나의 것이 된다.
밟고 서 있어 보이지 않던 지도,
기호로 표시된 세계 너머로
크게 한 발만 내딛어도
경계를 넘어
보이지 않던 것들이
가져다 놓였다.
산길을 오르는 것은
물길을 거스르는 것
짐 싣고 가는 나귀들의 종소리와
제 몸보다 큰 짐을 진 포터들의 숨소리
돌로 쌓아 올린 계단의 높이만큼
발길도 무겁고 호흡이 거칠다.
머리는 눈을 인 거칠고 높은 산을 그리나
눈을 채우는 건
오르는 길 옆 한 땀 한 땀 일구어 놓은
덧대고 이어 붙인 끝 간 데 없는 층층밭
2.
설산을 헤매고 있으리란 발걸음은
무성한 랄리구라스 나무숲 꽃길을 걷고 있다.
8000미터 봉우리들이 이고 있는 눈의 무게에 덮여
북위 28˚의 위치는
판단의 기준이 되질 못 했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정신은
강렬하게 붉은 랄리구라스 꽃 군락의
여린 향내에 느닷없는 물들어 혼미하다.
3.
정전으로 손전등에 기대어
안나푸르나 가는 길의 마지막 마을에서 저녁을 먹는다.
익숙했던 불빛을 잃으니
볼 것들이 모두 깊숙해졌고
가까운 것들이 멀어지자
먼 별빛이 가까이 왔다.
“나마스떼, 해피 뉴이어”
오고 가는 산객들이 서로 나누는 인사가 바뀌었다.
봄으로 들어선 네팔에 와서
다시 새해를 맞는다.*
다른 시간에 들어와서 걸으니
눈도 귀도 새롭다.
4.
며칠을 걸은 몸이 피곤할 만도 한데
해 뜨는 장관을 보고 싶은 마음은
찬 공기 속에서도 식지 않아
침낭 벗어나기를 꺼리지 않는다.
어둠을 벗어나기 시작하는 하늘에는
조각난 달이 눈물 반짝이며 걸어가고
희뿌옇게 경계를 드러내는
어두운 입속 같은 산이 있다.
세상이 밝아지고 나서야 해는 솟아오른다.
붉은 황금빛으로 설산 봉우리가 물드는 순간,
잡고 싶었던 찰나를 몸에 간직한 걸음은
한 걸음 밖 깊이를 재기 힘든 낭떠러지 앞에서
또 하나의 세상을 얻었다.
덧붙여 1
‘그런데, 해는 어디에 있어?’
안나푸르나 일출을 저장한 동영상을 카톡으로 보내주고 받은 반응.
봉우리가 붉게 빛나는 모습이 정말 멋이 있긴 한데, 일출이라면서 해는 보이질 않는다고.
덧붙여 2.
저거 마차푸차레, 저건 안나푸르나 사우스, 저건 안나푸르나 1봉, 저건 히운출리
방향이 달라질 때마다 가이드는 봉우리 이름을 친절히 알려준다.
마차푸차레를 지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를 향하는 길에 웅장한 멋진 설산 봉우리가 있길래 이름을 물어보니 그건 알 수 없단다. 조금 낮은 것은 출리라는 이름이 붙는데, 저건 그 정도가 안 되는 거라니. 저 정도는 그럼 동네 뒷 산?
그러다 알게 된 사실, 향해 가고 있는 ABC는 히운출리 아래에 있다는 것.
안나푸르나 1봉을 정면으로 보았을 때 왼쪽으로 안나푸르나 남봉이 있고, 그 왼쪽 앞쪽으로 히운출리가 있는데 ABC는 그 아래쪽에 있다.
* 네팔은 3개의 날을 신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네팔 달력을 기준으로 한 네팔 새해(힌두력에 따른 새해, 4월 13~14일경), 로싸(티베트계 유민들의 신년축제 2월 26~28일경 ), 새해(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