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지 않는 곳에 천국이 있다.

- 에리체에서

by 깡통로봇

트라파니에서 천공의 성 에리체를 가는 날.

구글이 해결해 주지 않는 교통 정보에 당황하며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을 피해 가며

묻고 물어 찾은 버스 정류장,

그러나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음으로

노동절을 알렸다.


덜컹하며 멈춰 선 케이블카에

가슴이 더 크게 덜컹거렸다.

경사의 가파름만큼이나 움직임이 컸다.


눈앞으론 지중해를 향해 손가락을 쭈욱 뻗은 트라파니

마음이 흔들리니 하늘 저 아래 펼쳐진 풍경이 더 깊이 들어온다.


눈을 가져다 댄 곳마다

천상의 풍경을 만들어 놓은

에리체의 골목골목을

여행객인 사람들이 서로 스치며

감탄 하나도 빼먹지 않으려는 걸음을 걷는다.


성당과 기념품 가게와 카페와 음식점들이

발걸음을 잡고 잡아

비너스의 성으로 가는

보석 같은 돌길은

멀고 아름다웠다.


오르고 올라

하늘에 떠 있는 마을의

꼭대기 성에 도착을 하니

사람들마다 감탄의 말을 금치 못했던

시칠리아 동쪽 마을들과 어우러진 지중해 바다를

새의 눈으로 바라보는 전망이 펼쳐진다.

카메라에 다 담지 못한 것들은

오래오래 둘러두고 보다

소중한 이들에게

사랑한다 말 대신으로 영상을 보냈다.


다른 전망 포인트를 찾아 걷다 문득 주변에 사람 없음을 즐거워한다. 이미 관광의 욕망을 충족한 사람들은 큰길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땅 위의 마을들과 숲과 넓은 경작지를 가진 들판과 바다의 어우러짐을 보며 한적한 길을 걷고 걷는다.

바보들의 행진을 놓치고 한 걸음 밖으로 나오니 한가로운 고양이가 이끌어 가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 나왔다.


작살 촉 같이 날카롭던 지중해의 5월 볕을 다정한 숨소리로 바꾸는 키 작은 자잘한 들꽃 무리들이, 지나온 곳들을 반짝이며 장식해 놓은 하늘들판이 시선을 잡고 놓아 주지를 않아, 벗어날 힘을 잃은 우리는 평평한 바윗돌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잠시나마 풀꽃들과 같이 바람에 흔들리며 조는 듯 앉아 있는다.


보이지도 않는 아랫동네에서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공간을 지배하는 힘을 가진 소리는 꽃을 흔들고 풀을 춤추게 하다 낯선 곳에서 신기함으로 가득 찬 이방인의 춘정을 마구 흔들어 놓는다.


신의 눈으로 세상을 굽어 보러 와서는

흔하디 흔한 들꽃들의 풋풋한 흔들림에 정신을 빼앗겨

앉은뱅이꽃처럼 일어서지를 못한 에리체의 한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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