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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통로봇 May 27. 2022

어떤 꿈

   

1.

민들레 꽃대에는  

바람을 타고 날 

비상을 기다리는 

가벼운 꿈이 가득하다.     


흙냄새를 가장 가까이에서 마시려 

줄기도 올리지 않고 바닥에 붙어 잎을 키워도,

남을 앞서려지 않는 꽃들을 피운다.           



2.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 

코로나를 이야기하고

치매를 앓는 부모님들의 안부도 묻고

매운 공기 가득한 교정에서 나누던 30년 된 농담을 하다가

돌아오는 길,

가던 길이 없어졌다.    

 

“이번 역은 우리 열차의 종착역인 성수, 성수역입니다.”

“오늘의 우리 열차가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고객 여러분께서는 다른 교통수단 편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하철 막차는 더 이상 가는 길이 없음을 안내하는데 

그 너머 길에는 어둠이 까맣게 내려앉아 있고,

사라진 어제의 길 앞에 서성이다, 

비틀거리며 집을 찾는 걸음에서 기억되지 않을 오늘을 본다.  


        

3. 

사라질 때까지 네 뒷모습을 지켜보던 굽은 골목길도

키 작은 대추나무 오랜 작은 그늘도 사라졌다.

높게 솟은 아파트 담장마다 

붉은빛 쏟아내는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담장을 타고 흐르는 향기에 취해 사진을 찍으면,

초점을 맞추지 못해도 

자동 노출의 선명한 결과물이 

나의 사진인 듯이 번듯하게 새겨졌다.   


       

4.     

민들레 꽃대 아래에 

아직 날려 보내지 못한 

조금 남은 꿈들은

바람이 더 세차게 부는 날 

새 터를 잡으러 멀리 가려고 

무게를 비우고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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