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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통로봇 Mar 14. 2023

봄이 오려나요?

- “일하며 살고 싶다. 살아서 일하고 싶다.”



바람이 살짝 불어 공기가 차가운 느낌은 있으나 미세먼지가 좀 없어져서 가까이 있는 응봉산을 가 보기로 한다. 서울숲을 지나 응봉산으로 가기 위해서 용비교 쪽으로 가다 보면 얼마 전에 철거가 완료된 삼표레미콘 공장터를 지나게 된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과 달리 인도로는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아 한적하다.



마을 버스정류장 아래 설치된 조형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일하며 살고 싶다. 살아서 일하고 싶다.”

 가슴이 찌르르하다.


철거된 공장 울타리 담벼락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니 삼표레미콘 공장에서 산재로 사망하신 분들을 추모하는 산재 추모 노동자 프로젝트로 설치된 조형물인 듯하다.

(* 검색을 해보니 문화·예술인을 주축으로 결성된 ‘노동자 빈자리 사업단’이 유태인 학살의 기억을 보도블록에 새긴 독일 작가의 ‘걸림돌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아 노동자 죽음을 기록하자는 취지로 설치했다고 한다. -출처:매일노동뉴스)     


여러 이름들과 사건들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다.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구의역 김 군, 평택항 이선호.

이외에 이름도 사건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일하러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망한 노동자가 한해 2000여 명이 된다고 한다.   

   

- 고용노동부의 2022년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서 보면 건설업 341명(328건), 제조업 171명(163건) 기타 업종 132명(120건)이 산업재해로 사망하였다.

- 5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중재재해처벌법이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고 있으나 산재 사망사고의 80% 이상이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2024년 1월 27일에나 5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적용이 예정되어 있어 이 법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많은 실정이다.

- 김용균 법이라 불리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2020년 1월 16일)이 시행된 이후에 도급 책임자가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위반해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례와 형량이 미미하게 증가했지만 안전보건책임자의 실형 비율이 겨우 2%에 불과해 법원의 ‘온정주의’가 여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기업 하기 힘들다며 보완 입법을 요구하는 재계의 요구에 대통령이 “결함이 많다”며 “기업이 최대한 피해 입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했다니, 일해야 먹고살 수 있는 사회에서 일하러 나왔다가 오히려 살 수 없게 되는 악순환의 반복으로 소중한 생명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사건들을 우리는 더 겪어야만 하나 보다.

    

생명을 희생해 가며 어떤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인지, 우리 사회가 가는 방향에 대해서 어떤 책임을 느끼며 바꿔야 하는지, 참 막막한 심정으로 걸어간다.  



   

용비교를 지나 데크길을 따라 산을 올라가다 보니 마른 가지들 사이로 살짝 얼굴을 내미는 개나리 꽃봉오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응봉산은 봄이 되면 개나리가 온산을 뒤덮어 산을 온통 노랗게 물들여 사람들이 일부러 구경을 하러 오기도 하는 개나리 꽃구경의 명소이다.)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고 긴 겨울을 이기고 올라오는 신비로운 힘에 감동을 하다가도, 아직 날이 찬데 먼저 나온 꽃봉오리들이 다 피기까지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에 찬바람이 스친다. 겨울을 이겨내고 찾아오는 봄이라는 상투성 속에서 어린 꽃봉오리는 온몸으로 차게 바람을 견딜 것이다.   

  


     

산꼭대기 전망대에 서니 먼지 다 날려버린 바람 덕분에 깨끗한 풍경이 넓게 시야에 들어온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좋은 점은 평소에 커다랗게 보이던 것들이 다 자잘 자잘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느끼던 심리적인 벽들을 쉽게 넘어갈 수도 있게 해 준다.  

   

욕망을 숨기지 않고 우뚝우뚝 솟은 건물들과 작은 나무숲 같은 아파트들 위로 하늘은 욕망 따위에 가려지지 않는 얼굴을 하고, 끝 간데 모르게 파랗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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