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숫자를 센다

by 깡통로봇

그 붉은 하늘 아래서는 눈물이 났다.

하루를 달려와 뜨거워진 몸을 식히려는 거친 숨결이 뜨겁게 하늘을 물들였다.

너를 쫓아 낯선 거리로 달려가지 못한 것은 숫자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숫자를 세”, “그리고 숫자가 끝나면 돌아서서 나를 찾아.”

석상처럼 골목 끝에 서서 너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숫자를 센다.

너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아, 이제 마음이 흔들거리면 해가 지나는 소리가 째깍거린다.


어떤 아이는 짧은 치마를 입고 우주선을 타러 가고, 어떤 아이는 검은 옷을 입고 물속을 지나 안개를 뚫고 들판을 가로질러 간다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돌아서는 것이었다. 잿빛 구름을 뚫고 나오는 푸른빛을 맞으러.


나는 숫자를 세고 있다.

네가 간절할수록 센 숫자는 많아졌고, 너를 만나 술래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숫자는 돌아봐 주지 않는다.

“숫자가 끝날 때까지 돌아보면 안 돼.”

되뇌던 네 목소리가 쏜살같이 달려들어 내 것처럼 느껴질 때쯤,

나는 앞으로 걸었다.

키 맞춰 서 있는 애써온 숫자들을 놓아주고, 몇몇과 손을 잡고

물들어가는 사과 한 알을 아삭 씹어 먹는다.

두 팔을 두 번 벌려도 닿지 않던 골목을 벗어나는 데는 몇 걸음 필요하지 않았다.

입안에 고여든 과일향에선 항구를 찾아드는 배들의 부산스러운 소리가 났다.


골목을 벗어나는 하늘은 붉었고 거칠게 주름졌지만 고왔다.

하늘이 푸르지 않아 안심이 되었다.


그의 목소리가 그리웠지만,

늘어선 숫자들이 짝이 맞지 않을까 걱정도 하며

건져 올린 숫자에 콧노래 섞어

붉게 물든 하늘 그늘 아래

살짝 펴서 넣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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