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딸과 옆동네 놀이터를 갔다. 모래놀이를 하는데 여자아이 3명이 모래놀이터 한쪽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3살 정도의 동생을 돌보며 함께 놀고 있는 두 명의 여자아이들의 대화가 멀리서 들려왔다.
'언니랑 문방구 가자! 장난감 사줄게.'
아이들은 장난감을 사준다며 동생을 한참 동안 꼬셨지만 3살 동생은 생각보다 모래놀이를 많이 하고 싶어 했고 시간이 지나자 두 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뭔가 자기들이 사고 싶은 장난감이 있는데 그걸 사러 갈 수 없어서 답답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난 아이들에게 제안했다.
'아줌마가 동생 봐줄게 다녀와.'
요즘은 이런 제안을 거절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세상이 험해지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이 느슨해지면서 마을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서로에게 도움받는 경험은 더더욱 생소할 수 있다. 게다가 난 다른 동네 사람 아닌가? 그래서 그냥 가볍게 얘기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신나서 동생을 나에게 맡기고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갔다.
엄마가 봤으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나에게 동생을 맡길까? 분명히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훈련을 받았을 텐데 깜박했나?
언니들이 가고 3살 아이는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언니들을 찾았지만 4살 아이가 곁에 있어서 그런지 울거나 보채지 않고 곧 놀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두 아이와 모래놀이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20분 정도 지나자 언니들이 돌아왔다. 그리고 동생들의 놀이에 합류한 아이들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저... 이모라고 불러도 돼요? 저는 청주에서 왔어요. 7살이고요. 여기 아파트에 사는 언니네 놀러 왔어요. 이 언니는 8살이고 302동 살아요 얘는 제 동생이에요.'
아줌마라고 하면 된다고 얘기를 해도 이모라고 부르겠다고 말하고, 물어보지도 않았던 정보를 술술 얘기하는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나를 믿어주는 아이들이 고마웠지만 마음 한편은 다른 위험에 노출될까 봐 걱정이 됐다. 그래서 진지한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물었다.(꼭 무서운 이야기에나 나오는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의 대사 같다는 생각을 하며 )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니?
' 네! 좋은 사람 같아요. 나쁜 사람은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랑 모자를 쓰거든요. 이모는 그렇지 않으니까. 무섭게 안 생겼으니까...'
나름의 정보를 모으고 나를 '좋은 사람'으로 판단했다.
검은 옷, 마스크, 모자, 악마 같은 얼굴을 하지 않은 나쁜 사람에 대해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그렇게도 많이 얘기했는데... 왜 효과가 없었을까.
그리고 잠시 말이 없던 아이들이 불안을 가득 담은 눈으로 나에게 묻는다.
저.... 나쁜 사람인가요?
'지금 나는 누군가를 돕는 행동을 하고 있어. 너희들과 즐겁게 모래놀이를 했고, 장난감을 빌려줬지. 그리고 너희들이 문방구에 다녀올 때까지 동생을 돌봐줬고. 그게 좋은 사람의 기준이라면 난 좋은 사람이네. 하지만 앞으로 너희들을 힘들게 하는 나쁜 행동을 할 수도 있지. 그래서 한번 보고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해.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도 가끔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을 하기도 하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나를 힘들게 하거나 아프게 할 수도 있단다. '
아이들은 좋은 사람들의 나쁜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나쁜 사람도 좋은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누고 나면 그 사람들은 영원히 좋은 사람으로 또는 나쁜 사람으로 남아있었다. 사람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이 때론 자신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 내가 믿었던 사람도 때론 나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7,8살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때론 어른도 이런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때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하게 될지라도 소중한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다시 누군가를 믿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는데 그런 것들을 알려주기에 우리의 만남은 너무 짧았다. 그리고 앞으로의 만남도 기약할 수 없는 다른 동네 아이들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림책에서 만난 주인공들은 처음부터 착하거나 처음부터 나쁜 놈이다. 마녀나 도깨비는 처음부터 나빴고 공주는 늘 어려서부터 착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고.
하지만 세상에 절대 악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착한 사람이 정말 착한 사람일지. 아니면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정말 절대 악인 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엄마나 아빠, 가족들도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할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럼 엄마, 아빠는 나를 사랑하니까 좋은 사람인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으므로 나쁜 사람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아프게 할 때는 어떻게 하라고 알려줘야 할까? 날 소중하게 생각하는 줄 알았던 사람이 자신의 욕구를 위해 나의 희생을 강요하는 상황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상대방은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고 아니면 나의 경계가 약하다는 것을 알고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는 복잡한 상황에서 대처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우린 이것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것은 세상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저 자신의 욕구를 달성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사람과 자신이 원하는 것과 타인이 원하는 것을 함께 보고 이를 얻 기위해 이해와 배려, 존중의 태도로 다양한 방법을 찾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쁜, 좋은 사람인지가 아니라 나 또는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말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의 선택이 혹시 타인의 소중한 것을 해치지 않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연습시켜야 한다. 만약 내가 원하는 것과 상대가 원하는 것이 다르다면 힘을 사용해서 상대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약하더라도 존중하고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한다.
'넌 참 착한 아이야. 쟤는 나쁜 아이야.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저런 나쁜 놈! '이라는 말 대신에 '저렇게 행동하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해. 그렇게 하면 안 돼, 다른 사람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네 마음도 있고 쟤 마음도 있어. 네가 힘이 세다고 네 마음대로만 하면 안 돼. 쟤는 어떤 마음인지 묻고 방법을 찾아보자.'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원칙이 있다. 타인의 감정을 살피다가 내 감정이나 욕구를 무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무조건 양보하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라면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나에게 중요한 거야. 안돼.'
우리가 선한 행동, 좋은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이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로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나의 욕구를 뒤로 미뤄야 하거나 조정을 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의 꼬리표를 달기 위해 자신에게 폭력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