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
엄마! 오빠가 협박해요!
오빠 방에서 울면서 나오는 둘째는 '협박'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었다.
첫째는 억울하다며 '엄마 협박 아니야! 그냥 방에서 나가라고, 안 나가면 혼날 줄 알라고 했어!!!!'
협박이란 단어는 내가 알려준 단어다. '엄마가 내 말 안 들어주면 이 장난감 던질 거야!'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 그건 협박이야. 사람을 겁나게 해서 움직이게 하는 걸 협박이라고 해. 그건 나쁜 행동이야.'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그 말을 꼭꼭 씹어서 기억 속에 넣었나 보다. 오빠가 하는 말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순간 협박이라는 말을 꺼냈으니 말이다.
일상에서 가족들끼리 벌어지는 협박과 강요는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부모라는 이유로, 힘을 더 많이 가졌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족 안에서 힘의 원리를 이용해 상대를 움직이게 하는 방법을 학습한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도 이 기술을 이용해서 관계를 맺고 사회생활을 해나간다. 그리고 수많은 협박과 강요 안에서 인간관계를 맺으며 불편한 마음을 누르고 살아가는 연습을 한다.
어떤 행동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 행동을 명료화하고 판단해서 멈추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상대를 내 마음대로 조종하고 겁을 줘서 강제로 원하지 않는 것을 하게 하는 것은 일상에서 있을 수도 있는 나쁜 일. 하지만 친구도 하고 엄마도 하고 선생님도 하는 일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협박은 범죄자처럼 나쁜 사람이 하는 짓, 범죄라는 생각을 한다.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쓰기에 너무 과한 단어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적도 있었다. 협박이란 단어를 들으면 상대가 잠깐 놀라기도 하고 억울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때론 그것이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에게 나의 선을 알려줄 때는 매우 효과적이다. 낯선 단어, 무게 있는 단어에서 오는 잠깐 놀람이 정신을 차리게 해 준다.
야! 여기 선 있다. 지금 너 선 넘으려고 하는 거니?
협박은 상대를 빠르게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특히 부모의 역할을 할 때는... 더더욱.
하지만 이 매력적인 말은 교실 안에서 폭력으로 바뀌어 서로를 아프게 한다.
'야 축구하자, 너 이번에 축구 안 하면 다시는 축구에 너 안 껴줄 거야.'
'야! 너 쟤랑 놀지마. 쟤랑 놀면 너랑 절교야'
성교육 수업 시간에 친구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면 아이들은 여러 이유를 말한다. 그중에 가장 많은 것은 친구가 나랑 안 놀아 줄까 봐, 두 번째는 친한 친구라 상처 받는 것이 싫어서다. 이미 아이들은 충분히 두렵다. 너랑 안 놀아, 너랑 절교야, 너 안 껴줄 거야!라는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까 봐 충분히 두려워하고 눈치를 본다. 이렇게 일상에서의 친구 사이에서의 작은 거절도 힘든데 성희롱, 성추행 상황에서 단호하게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관계의 선을 지키는 것을 학습하는 곳은 일상이어야 한다. 나의 욕구를 위해 타인의 욕구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래서 대화와 조율이 필요하다는 것, 힘이 어느 쪽에 있는지 늘 민감하게 보고 약자가 힘든 일이 발생했을 때는 힘을 나눠야 한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는 아이들이 가해자와 방관자가 될 리 없다.
'야! 쟤랑 놀지마!'
'나 그말이 협박처럼 들려...'
'야! 너 예민한 것 아냐? 이게 무슨 협박이야?'
'나 겁먹을 뻔했어. 그래서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할 뻔했네.'
' 그래? 미안해 무섭게 하려고 한건 아니었어.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가 내가 싫어하는 애랑 노는게 싫어서...'
'나도 네가 참 좋아. 하지만 나에게 자유가 사라지면 우정은 감옥으로 변한대. 난 우리 우정이 변하는 게 싫어.'
이 대화가 현실에서 가능할까?
첫째, 진지한 대화를 혐오하지 않는다면.
진지함이 진지충이라는 단어와 붙으면 이 대화 자체는 혐오스럽고 재미없는 대화일 뿐이다.
둘째, 삶과 가치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우정에 대해 자유에 대해 폭력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대화를 나눠본 경험이 있는 아이라면 가능하다.
셋째, 거절을 수용받아본 경험이 있다면.
과거 거절에 대해 어떤 경험을 갖고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거절해도 괜찮아. 너의 삶이고 가치를 지키는 삶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자주 듣고 나의 의견을 존중받았다면 가능하다.
넷째, 상대와 균등한 힘을 갖고 있다면.
거절했을 때 상대가 떠나는 것을 정말 두렵다면 이 말 자체를 꺼낼 수 없다. 사랑도 힘이고 권력이 될 수 있다.
결국 이 대화가 가능하려면 문화, 교육, 시스템 등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교육에서는 이 모든 것을 다 무시하고 성과 관련된 상황에서만 거절하는 것을 학습시킨다. 삶의 맥락 안에서 빠져나온 성은 점점 삶과 동떨어져 간다.
남편이 퇴근하면서 사온 반지 사탕을 딸에게 건네며 말한다.
'이렇게 율이 생각해서 선물도 사 오는데 왜 아빠한테 입술 뽀뽀 안 해줘? 이제 자주 해줘. 아빤 율이랑 뽀뽀하는 거 좋아하는데...'
'아빠, 지금 강요하는 거야?'
'아니... 서운하다고 말하는 거야.'
'아빠, 뽀뽀는 서로 좋아할 때 하는 거야.'
'율이는 아빠 안 좋아?'
'좋아! 그런데 지금은 하기 싫어'
'응.. 알았어... ㅠ.ㅠ'
이 대화는 아이들의 학교 수업, 1년에 한 번 받는 성교육 40분 만으로 어렵다. 삶이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4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생각을 바꾸고 말을 바꾸고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길 수 있을까?
부모도 교육을 받고 존중을 가족의 문화로 만들고 존중과 배려가 당연한 가정, 작은 세상에서 충분히 연습하고 관계를 더 넓혀 학교에서 친구들과 연습하고 그리고 사회로 나갈 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