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케키 놀이

성폭력을 포장한 놀이

by 한희
Photo by Hasan Almasi on Unsplash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 6학년 때까지도 남자아이들은 아이스케키를 했었다. 여자아이들은 이에 대응해서 바지 벗기기를 했었는데 나중에는 성별과 상관없이 팬티까지 잡아서 바지를 벗기는 놀이가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성추행이 놀이라는 탈을 쓰고 만행됐던 시절인데 그땐 학교에서 그 놀이에 대해 어떤 제지도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저 그 짓을 하는 남자아이들이 피곤했고 당하지 않기 위해 잘 벗겨지지 않는 바지를 입는 방법밖에 없었다. 치마를 입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팬티를 보여주고 싶다는 무언의 메시지와 같았고 여자아이들 안에서는 왜 치마 입었냐고 책망을 하거나 남자애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애처럼 취급당하기도 했다.

왜 그때는 신고하거나 아이들과 연대해서 그들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미숙한 방법이라고만 생각했을까. 이미 우린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학교라는 공간에서 잘못된 성을 배우고 있었다.


다행히도 요즘 교실에서는 아이스케키가 사라졌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부터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이제 교실에서 아이스케키를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놀이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형태의 성폭력이 시작된다.








초등학교 4학년 교실, 아이들은 모두 하교를 하고 빈 교실에서 남자아이들 5명이 고추 땡 놀이를 했다.


고추 땡 놀이? 그게 뭐야? 그런 놀이도 있었나?


아니, 없다. 고추 땡은 만들어진 놀이다.



아이들의 놀이는 시시각각 변한다. 아이들은 기존의 놀이 규칙을 이리저리 바꾸며 한 가지 놀이를 100가지 놀이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동물들이 사냥 능력과 사회적 기술을 배우기 위해 놀이를 하듯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관계를 배우고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리고 일상에서는 불가능하고 금지된 것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즐거움을 느낀다.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친구를 전략으로 이기고 달리기로는 이길 수 없는 친구를 순발력으로 이길 때, 내가 왕이 되어 몸집이 큰 아이들을 시종처럼 부릴 때. 아이들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즐거워한다. 그리고 놀이 안에서의 으뜸 경험을 통해 사람에게는 다양한 강점이 있다는 것도 배우게 된다.


놀이는 힘과 권력의 여러 가지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밀치고 잡아당기는 놀이를 할 때는 강한 힘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다치지 않게 조절하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고 서로의 실력차는 놀이의 재미를 떨어뜨리므로 깍두기나 공격 횟수, 놀이 인원수 등의 페널티를 스스로 또는 힘이 센 아이에게 줌으로써 힘을 나누는 방법도 알게 된다.


이런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놀이가 성과 만나면 어떻게 될까? 놀이 안에 성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순간, 놀이는 성폭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처음부터 작정하고 성폭력의 가해자가 되기보다는 평소에 하고 놀던 놀이를 하다가 호기심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놀이를 변형하면서 성폭력 상황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익숙한 놀이의 규칙이 달라지는 것이어서 아이들은 놀이 안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기 어려워한다. 또는 상황이 불편하고 싫지만 친구들의 즐거운 분위기를 깨는 것이 눈치 보이고 부담스러워서 입을 닫아버리거나 힘 있는 아이가 주도할 경우 무리에서 떨어질까 봐 동참하기도 한다. 물론 그 행동이 안된다는 것도 알고 상대가 괴로워한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나의 즐거움과 재미를 위해 폭력을 가하는 아이들도 있다.


고추 땡 놀이는 얼음땡 놀이의 규칙이 변형된 것이다.


술래가 도망가는 아이들을 잡으러 뛰어가면 술래가 되지 않기 위해 '얼음'이라고 외치고 그 자리에 멈춘다. 그러면 술래는 얼음이 아닌 아이들을 잡으러 뛴다. 같은 편의 아이들이 땡을 해주면 다시 움직일 수 있다. 술래 외의 모든 아이들이 얼음이 되거나 얼음이라고 외치기 전에 술래에게 잡히면 술래가 바뀐다.



이것이 원래 규칙이다. 그런데 이 규칙을 변형해서 얼음 대신에 '고추를 보여준다'로 바꾼 것이 고추 땡이다.


'술래가 잡으러 오면 바지를 벗어서 자신의 성기를 보여준다. 그러면 술래는 잡을 수 없다.'


이 규칙은 술래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의 바지를 스스로 벗게 했다.


교실에 들어오시던 담임선생님께서 이 모습을 보시고는 '너희들 지금 교실에서 뭐 하는 거야!'라며 혼을 내셨고 이때 한 아이가 말했다.


'저희 모두 동의했는데요.'


아이들 성교육에서 늘 강조하는 것이 '동의'이다. 내가 알려준 동의라는 단어가 폭력을 덮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니 기가 막혔다. 배운 것을 이렇게 이용하는 녀석들이 괘씸하고 얄미웠지만 이번이 제대로 된 동의를 알려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행히 담임 선생님은 현명하게 대처하셨다. 무조건 반성문을 쓰거나 혼내신 것이 아니라 동의에 대한 설명과 공적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알려주셨다. 만약 아이들이 그냥 규칙을 어긴 것에 대한 혼만 났다면 동의와 공적 공간에 대한 살아있는 교육은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규칙과 처벌이 두려운 아이들은 규칙 안의 허점을 찾고 권력자의 뒤에서 은밀하게 일을 저지른다. 그래서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는 규칙을 얘기하는 것과 동시에 규칙이 만들어진 이유와 아이의 행동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받는 영향을 함께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만약 타인이 피해를 입었다면 피해와 전혀 상관없는 벌이 아니라 피해를 입는 사람이 회복할 수 있는 직접적인 행동을 생각해보고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다른 학교 수업에 가서 고추 땡 놀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학교를 달리하며 여러 학년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4,5, 6학년 아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그것은 이날의 놀이가 진짜 원해서 한 동의가 아니었을 수 있다는 점과 싫다고 말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싫었는데 안 한다고 하면 친구가 싫어할 것 같아서.

재미있게 놀고 있었는데 싫다고 하면 분위기 깨니까.

친한 친구들끼리 였다면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 안 그럼 의리 없는 자식이 되니까.

싫다고 했다가 왕따 당하면 어쩌나 싶어서

같이 놀면 맛있는 것을 나눠주니까



두려움에 의한 선택, 맛있는 것 때문에 하는 선택은 동의가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은 정말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놀이를 제안한 아이에게 분노했다.



초등학교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바지 벗기기 놀이, 성기 치기 놀이, 귀에 신음소리 내고 도망가기 놀이, 쉬는 시간 남자아이들끼리 하는 성행위 놀이. 중고등학교에서 음란물에서 본 여성의 모습을 반 친구 사진으로 합성하기 놀이, 카톡방에서 친구 외모 품평하기 놀이. 성인이 되어서 하는 애인과 스킨십 진도 자랑하기 놀이, 음란물 공유 놀이, 불법 촬영 놀이.


이건 놀이가 아니다. 놀이의 탈을 쓴 폭력이고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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