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힘들게 일했으니 집에서라도 편히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청소일 때도 있지만 화난 목소리와 한숨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다.
5살 아이와 깨끗하게 정리된 집에서 저녁을 맞이 하는 것은 참 어렵다. 나와 아이는 온갖 장난감을 풀어놓고 놀이와 놀이를 넘나들며 노는 스타일이라 아침에 잘 청소를 해놓더라도 아이가 집에 오고 나면 3~4시간 만에 난장판이 된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성장한 남편은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퇴근을 꿈꾼다.
깨끗하게 정돈된 집에 들어서면 반갑게 달려와 맞이 하는 아내와 아이들. 아내는 앞치마를 하고 있고 주방에서는 된장찌개가 끓고 있다. 아이들은 아빠에게 달려가 안기며 보고 싶었다고 뽀뽀하는 그 장면.
그 장면이 일상인 집도 있겠지만 우리 집은 아니다.
밥을 하려면 아이에게 만화를 틀어주거나 핸드폰을 쥐어주며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고 밤에 강의가 있는 날이면 강의 안을 준비하느라 배달음식을 시켜먹기 일쑤다.
그날은 밤 강의도 없었고 나의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에 아이와 청소를 함께 하는 흔하지 않은 날이었다. 물놀이를 하고 팬티만 입고 나온 아이가 청소하던 나의 밀대를 봤다. 그리고 옷도 다 입기 전에 엄마를 돕겠다며 밀대를 잡고 뛰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들어왔다.
아빠 왔어~!! 오~ 귀여워!!
귀엽고, 사랑스럽고, 대견하고!!! 안다. 어떤 느낌인지 나도 알 것 같다.
하지만 갑자기 등장한 아빠는 청소하고 있는 아이 행동과 정서의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엄마를 돕고 있다는 뿌듯함, 행복,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등으로 에너지가 올라가고 있는 아이는 지금 감정을 통해 자신의 가치와 강점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감정 안에는 아빠의 친밀감이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그저 아빠 안녕!이라고 하는 건조한 인사가 있었을 뿐. 하지만 아쉬웠던 아빠는 아이의 뒤로 가서 엉덩이를 양손으로 조몰락거리며 다시 한번 말한다.
귀여워~
아이가 저리 가라고 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아빠는 들리지 않는다. 왜? 자신의 친밀함의 욕구는 자신이 원하는 말만 선택적으로 지각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고, 자신은 딸에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고, 또 그것이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엄마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초등학교 수업에서 수많은 아들들이 내게 보고 했기 때문에 이미 잘 알고 있다.
성폭력 예방교육에서 참여자들이 불편해하는 지점이 있다.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모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다는 것이다. 남자가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다. 나도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역할에 의해, 힘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엄마와 아빠 모두 아이들을 아프게 할 수 있고 언제든 그들의 주체성을 빼앗고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느낌과 욕구, 비합리적 신념이나 자동적 사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약자들에게 조심하라고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가해자가 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좀 더 조심해야 한다고 왜 가르치지 않는가!
지켜보던 나는 또 참지 못하고 말한다.
'하지 마! 싫다잖아.'
이 말이 갈등을 만들고 감정을 불편하게 하고, 오늘 저녁을 살벌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한다. 나는 불편한 마음을 이기고 얘기했다. 그를 알아차리게 하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다. 바로 나와 내 아이들이 듣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꼭 얘기해야한다. 그래야 그 곳에 선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격려 차원에서 두드려 준 건데 뭐!
직원의 엉덩이를 두드리는 사장도 말한다. 네가 딸, 아들 같아서 엉덩이 좀 두드려 준 건데. 오버하지 말라고.
정말 격려하고 싶다면 이름을 부르고 잠깐 멈추게 한 후 눈을 보고 얘기하면 된다. 너의 이런 모습을 보니 내가 뿌듯하고 감사하다고. 뒤에서 응원할 테니 맘껏 너의 능력을 펼쳐보라고 말이다. 이 긴 이야기가 당신의 손을 통해 상대의 엉덩이로 전달될 리 만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