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따먹자!

어른들의 무신경한 말

by 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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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예방 교육을 할 때면 늘 등장하는 인물은 시댁 어른들이다.


아이들의 친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쩌다가 아이들 성교육의 장애물이 되었을까?


양육자 성교육의 대부분이 엄마들이고 그들이 편하게 말하기 어려워하는 대상은 보통 시댁 어른들이다. 물론 엄마의 가족도 지금까지 지켜온 문화가 있고 모든 가족 구성원들과 친한 것은 아닐 테니 말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자신의 가족들 얘기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댁 가족 얘기하는 것보다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관계가 왜 소원해졌는지를 설명하다 보면 성교육이 아니라 상담시간이 되어버리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원래 남이었던 가족을 얘기하는 것이 편하다.


성교육을 하고 경계를 가르치는 나조차도 시댁 어른들의 행동에는 쉽게 나서기가 어렵다.


얼마 전 시할머니가 위독하셔서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에 다녀왔다. 소식을 들은 할머니의 동생 가족이 왔었고 가족 중에는 내게도 낯선 사람들의 얼굴들이 보였다.


긴 대화가 끝나고 손님들 중 한 분이 오셔서 내 다리를 베고 누워있던 6살 딸을 보며 많이 컸다고 몇 살이냐고 물으셨다. 여기까진 괜찮았는데 갑자기 귀엽다며 허리와 다리를 쓸어내리고 엉덩이를 두드리며 예쁘다고 하셨다. 아이는 표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조금씩 내 몸으로 피하더니 결국은 내 뒤로 숨었다. 아이의 불편한 감정이 표정에 드러났고 몸의 경직이 느껴졌지만 아이를 귀여워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어른의 권위와 권력으로 무시하며 계속 원하는 행동이나 말을 하거나 숫기가 왜 이리 없냐며 비난을 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숫기 없음을 얘기하기 전에
당신의 무신경함과 존중 없는 태도나 돌아보시죠!





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을 몇 번이나 삼키게 되는지 모른다.


나는 그 낯선 어른에게 뭐라고 말하지 못했다. 가족 분위기도 그렇고 앞으로 볼일이 거의 없는 분이었기 때문에 긴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뒤로 숨는 아이에게 부끄러움이 많은 애구나 라고 말하는 그분이 들을 수 있도록 '불편해? 싫어? 부끄러워? 이쪽으로 와~'라고 얘기했다.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하고 싫은 느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아이도, 어른도 알아야 한다.


앞으로 계속 봐야 하는 가족들과 일상 속에서 아이들의 경계 존중 교육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황 발생 전에 미리 얘기한다]

아이의 고추를 잡고 있는 상황이나 강제로 뽀뽀를 요구하는 장면, 강제로 껴안고 얼굴을 비비는 장면을 봤을 때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지금 성추행하신 거 아세요? '라고 말한다면 가족과 함께 교육하기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상대방에게 죄책감과 수치심을 주면 한편이 되어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목격했다면 우선 말하지 말고 평화롭거나 대화가 가능한 상황이 되기를 기다린다.

사과를 먹거나 뉴스를 보거나 떡을 빗거나 명절 음식을 만드는 등 사람들이 동그랗게 앉아서 대화하는 상황이 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조두순이 출소했대요'

'요즘 성폭력 관련 뉴스들이 많이 나와요. 걱정이 돼요'

'제가 얼마 전에 성교육을 받았는데요'



성폭력과 관련된 사회 이슈나 성교육과 관련된 정보들을 얘기한 후 본론으로 들어간다.


'성폭력 예방 교육에서 경계 존중 교육이 중요하대요. 가정에서 지속적으로 하면 성폭력에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도와준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혼자 하는 건 소용없고요 온 가족이 힘을 모아야 한대요. 어머니, 아버님 도와주실 거죠? '


그리고 뽀뽀나 성기 만지기, 외모 품평 등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이야기를 듣고 가족들 중에 '애들한테 끌려다니면 안 된다. 엉덩이 몇 번 두드리는 것에 과민 반응하지 마라. 다 그렇게 컸다. 그래도 지금 잘 살지 않느냐.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얘기를 듣고 성장한 어른들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니까 지금 우리 아이에게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몸을 만질 때는 허락이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끌려다니는 행동이 아니라 신체적 경계를 존중하는 태도이다. 엉덩이 몇 번 두드리는 것이 괜찮은 것이라면 처음 본 내가 당신의 엉덩이를 두드려도 괜찮은지 묻고 싶다. 다 그렇게 컸다고? 그래서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당신처럼 과거에 갇혀 누군가를 힘들게도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지금 잘 산다고 생각하는가? 그 행동은 잘 살고 있는 행동이 아니다. 당신은 잘 살지 몰라도 상대방은 불편함을 아주 오래 갖고 살아갈 수 있다.


위의 얘기는 속으로만 생각한다.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또 싸움이 되고 우리의 목적이 실패할 수 있다.


'네. 맞아요 예전에는 다 그렇게 컸죠. 그런데 요즘 그렇게 키우면 큰일 나요. 세상이 바뀌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어머니. 도와주실 거죠?' 이렇게 말하고 '알았다'라는 대답을 꼭 듣는다.


그리고 집에 갈 때 또 강제뽀뽀나 용돈 준다면서 안아달라고 하는 행동을 하시면


'어머니 도와주세요~^^'라고 말해서 기억나게 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생각과 말의 습관이 오랜 시간 쌓여서 알지만 같은 행동을 반복할 수 있다. 그때는 정색하고 분노하지 말고 우리의 대화가 기억나도록 해주는 문장을 짧게 말하면 된다.













어린 시절, 성적으로 불편했던 기억은 오랜 시간 남는다.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그날은 주말 아침이었고 겨울이었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막내 작은아버지 부부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뵙기 위해 왔던 날이었다. 아랫목에서 몸을 녹이던 작은 아버지가 할머니의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빗고 있던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가슴을 갑자기 만지며 '너도 이제 몽우리가 생겼구나'라고 얘기했다. 그때 두 손을 모두 머리카락 높게 잡는데 쓰고 있어서 다가오는 손을 막을 수도 없었고 가슴을 만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황해서 하지 말라고 밀치지도 못했다. 그냥...





뭐지?




작은 엄마가 옆에서 애한테 왜 그러냐고 하지 말라고 하자 '지금 아니면 언제 만져봐~사춘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가슴 커지면 못 만져'라는 얘기를 하며 웃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짜증과 분노가 솟구친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 따져 묻지도 못하고 만약 살아있다 하더라도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할 것이 뻔한 평온한 일상 속 한 순간이었다.


6학년 때 기억이라고는 소풍, 졸업식 정도밖에 없는 내게 이 기억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나름 큰 충격이었나 보다. 그때 놀람과 당황, 수치심은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어줬다.


나의 아이들과 우리의 아이들이 이런 기억을 갖고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 나와 비슷한, 또는 더 상처 받고 분노할 만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나의 경험을 과소평가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들이다.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예민하게 굴며 평생을 살았구나. 아이고 니 인생도 참 괴롭겠다'


가해자들은 자신의 수치심을 피해자에게 떠넘긴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다. 내가 괴로웠고 내가 슬펐고 내가 무서웠다면 그런 거다. 그때 그들이 해야 할 말은 '유난 떤다. 피곤하다'가 아니다.




미안하다




있었던 일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상처는 남을 것이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괴롭다고 또 얘기할지도 모른다.


지난번에 사과했는데 또 얘기하냐고. 지겹다고 그만하라고 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때 당신이 해야 할 말은




미안하다





아이들에게 허락과 동의 없이 몸을 만졌다면




미안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상처를 주고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주지 않도록 그들의 경계를 관찰하고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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