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몰라도 돼

여자는 몰라야 하는 것들

by 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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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민원을 두려워한다. 두려운 게 아니라 피곤한 건가? 내가 학교에 근무하고 있지 않아서 학교 근무자들이 민원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민원을 환영하고 기다리는 곳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여중 성교육 하루 전날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어떤 학부모님이 연락을 해서 성교육 시간에 아이들에게 하지 말아야 하는 단어를 말해줬다고 한다.




자위, 성관계, 피임, 음란물





수업에서 이 단어들을 절대 언급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성교육을 하다 보면 다양한 부모들을 만나게 된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성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하고 어떤 부모들은 몸의 변화만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하고, 때론 성폭력 가해자가 되지 않게 단속을 잘해달라고 하기도 한다. 어떤 부모들은 순진한 아이들이 너무 많이 알게 될까 봐 걱정된다고 수위조절을 부탁하기도 한다.


보통 남자아이들의 엄마들은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단속시키는 성, 성에 대한 숨김없는 정확한 정보를 원하고 여자아이들의 엄마들은 아이들이 성교육을 받고 너무 많이 알게 돼서 순수함을 잃지 않도록 해달라고 한다.


최대한 천천히 알게 해 주기를 바라는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들도 많다. 하지만 무조건 사춘기 몸의 변화만 얘기하고 관계에 관련된 내용은 빼달라고 얘기하는 분들을 만나면 답답할 때가 있다. 사춘기 몸의 변화는 성이라는 커다란 코끼리의 아주 작은 꼬리일 뿐인데 아이들이 그 꼬리만 보고 성은 '월경, 몽정, 털이다!'라고 얘기할 까봐 걱정이 된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도 꽤 많다.

본인이 직접 성교육하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말 못 하게 하고 그리고 스스로 찾아보는 것은 더더욱 원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어디서 자신의 성에 대해 배울 것인가? 그냥 모르고 평생 살다가 순수함을 지켰다는 것을 트로피처럼 가져가길 바라는 것일까? 제대로 알지 못하면 가짜 지식과 정보위에 세워진 생각, 태도, 감정이 아이들의 성을 지배하게 된다.


위의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얘기하는 부모님들이 모두 같은 이유로 민원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45분이란 수업 동안 많은 얘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단순한 단어의 나열은 잘못된 성지식을 찾아보게 하는 창구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위는 자연스러운 거야.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 다만 사적 공간에서 청결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해' 이 한마디를 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면 이미 자위를 하고 있고 할 때마다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아이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아이들은 어떨까?

'그게 뭐야? 뭐길래 죄책감을 느끼지 말래?' 자위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본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선별되지 않은 정보들을 접하게 된다. 그러면 왜곡된 정보 안에서 잘못된 성가치관과 태도를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충분히 정확히 설명할 시간이 없으면 그냥 얘기 조차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이 있을 수도 있다. 그 부분은 나도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성교육 시간에 알려주지 않았다고 아이들이 모를것이라는 생각이야 말로 순진한 생각이다. 요즘은 키워드 검색을 통해 알게 되는 지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연 또는 우연을 가장한 추천에 의한 정보 노출도 많은 세상이다. 성적인 콘텐츠와 전혀 관계없는 유튜브를 보거나 검색을 하다가도 알 수 없는 추천 알고리즘에 의해 성폭력적인 영상을 접할 수도 있고 검색 창 위에 쉴세 없이 뜨는 광고창을 닫으려다가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 이때도 아이들이 순진하기를 바라며 교무실에 전화하듯 해결할 수 있을까. 유00에 전화하고 네00에 전화해서 ' 네~ 알겠습니다. 바로 삭제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도 그 안에 유해 광고와 영상을 모두 찾아서 신고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고는 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유명 검색 사이트에 전화를 했다는 몇몇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아이들이 볼까 봐 걱정되니 성적인 광고는 노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에 '저희는 비용을 받고 광고 자리만 제공합니다.'라는 말을 듣게 될 수도 있다.

' 나 이걸로 광고료 받고 회사 운영해. 이 영상, 광고 내려주면 넌 얼마 줄 건데? 누가 클릭하래? 열어본 게 잘못이지. 안 열어 보면 되잖아? 너희 애들이 어떻게 되든 관심 없어. '라는 말을 그들이 직접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내 안의 해석기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익 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이 해 온 상상도 할 수 없는 만행들을 기억해보라.






고민을 하다가 중1 아들에게 물었다.


성교육 시간에 어떤 엄마가 자기 딸에게 얘기하지 말라는 단어들이 있는데.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그걸 왜 그 엄마가 결정해? 딸한테 직접 물어봐. 알고 싶냐고.





그렇다. 그건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포스트잇을 나눠줬다. 그리고 아이들의 질문을 받아서 진짜 궁금해하는 얘기들을 들려줬다. 아이들은 '자위, 성관계, 피임, 음란물'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임신에 대한 두려움이 큰 아이들



학부모의 민원보다 상위에 있는 원칙이 있다. 그것은 학생이 수업시간에 질문하면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난 그 원칙을 지켰다.


당당하고 멋지게 수업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내 안의 소심한 나는 그 포스트잇을 보관하라고 말하고 있었고 안전장치로 깊숙이 잘 넣어놨다. 다행히 안전장치는 쓸 일이 없었다.



영원한 비밀은 없다. 숨기다 걸리면 신뢰만 잃는다. 오죽하면 수업시간에 어떤 성교육을 원하냐는 질문에 '숨기지 말고 돌리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주세요!'라는 글을 적었을까.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우리가 알려주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무조건 음란물을 보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음란물을 제작하고 성인광고를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늘어놓은 어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인지를 분석하게 한다. 어린이들이 이것들을 접하고 음란물에 중독되면 그것을 제작한 어른들은 어떤 이익을 얻게 될지. 그런 방법으로 돈을 벌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를 예측하게 해 보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보는 드라마에서 키스 장면이 나올 때는 티브이를 꺼버리거나 '아이 부끄러~'하면서 눈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저 둘이 키스까지 가는데 얼마나 많은 설렘과 신뢰가 있었는지, 키스를 할 때는 동의가 필요한데 여기서는 어떤 동의가 있었는지, 왜 저 여자는 싫다고 했다가 눈을 감는지, 벽키스는 어떤 위험 요소를 갖고 있는지, 어떤 맥락 안에서 이뤄진 스킨십인지, 사랑하지 않는데 저렇게 키스하면 어떨지, 왜 여자는 먼저 키스를 제안하지 않는지, 왜 드라마에서는 동의를 구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지, 동의를 구하는 질문을 받으면 어떨지, 질문받고 싶지 않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나중에 어떤 스킨십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 스킨십을 계속 요구하는 이성을 만나면 어떨지, 사랑에는 있고 음란물에는 없는 것이 무엇인지, 음란물은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몰입감은 떨어지겠지만 연령대 별로 수준에 맞는 대화를 통해 현실과 가상의 상황을 구분하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줄 수 있다.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훈련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시작할 수 있다. 타요, 뽀로로를 보면서 성편견에 대해 말할 수도 있고 뿌까를 보면서 스킨십과 동의에 대해 대화할 수도 있다.


서울시 제공


뿌까는 7세 이상 애니메이션이지만 6살 아이가 좋아해서 함께 보는 편이다. 뿌까와 가루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뿌까는 가루를 좋아해서 틈만 나면 뽀뽀를 한다. 그런 뿌까를 피해 가루는 늘 도망치지만 뿌까는 가루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이 장면을 보면서 아이에게 가루의 기분이 어떨지, 뿌까는 왜 싫어하는데 계속하는지, 말을 하지 않고도 가루가 싫어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얘기한다.


비판적 사고는 국어 점수를 잘 받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 아니다. 미디어가 심어 놓은 편견과 은밀한 조종에 휘둘리지 않고 내 생각과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어른이 되면 저절로 생기는 능력이란 것은 없다. 저절로 되는 것은 몸의 성장과 노화뿐이다.


'우리 아이는 순수해요. 성에 대해 몰랐으면 좋겠어요'는 불가능한 바람이다. '우리 아이가 성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을 때에도 판단할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바람이 현실적이고 아이들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태도다.


어떤 정보, 어떤 사람,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 만의 원칙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그렇다면 알아야 한다. 순수함이 무지함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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