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사랑

생명, 사랑, 존중의 가격

by 한희


출처: 가을동화





얼마면 돼?



사랑을 돈 주고 살 수 있다면 얼마에 살 수 있을까? 아주 오래된 드라마 가을동화는 원빈의 명대사로 유명하다.


'사랑? 웃기지 마. 이젠 돈으로 사겠어. 돈으로 사면될 거 아냐.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고 장면들도 희미하지만 송혜교를 벽에 몰아넣고 팔로 도망갈 수 없도록 가로막은 후 45도 각도로 바라보며 이글거리는 눈으로 이 대사를 말하던 원빈의 모습과 대사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드라마 속 인물들과 상황을 전체적 맥락 안에서 전지적 시점으로 보고 있으니 가슴 저리거나 멋있거나 웃긴 것이지 만약 내가 주인공이고 상대를 좋아하지 않는 상황이었다면 그곳은 살 떨리는 공포와 범죄의 현장이었을 것이다.








사랑은 여러 가지 행동과 감정, 생각을 포함하고 있는 포괄적인 단어이다. 돈으로 사랑을 샀다는 것은 사랑과 생명이라는 가치를 물건, 도구적 관계로 바꿨다는 것인데 물건이 된 사람이 인권을 바탕으로 세워진 성적 자기 결정권을 발휘할 수 있을까? 성적 자기 결정권이 없는 사랑은 착취와 폭력으로 변질되기 쉽다.


성적 자기 결정권은 '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 따위를 바탕으로 사회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성적 가치관을 확립하고, 사생활 영역에서 스스로 내린 성적 결정에 따라 자기 책임하에 상대방을 선택하여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권리.'라고 법률에서 정하고 있다.


성적 자기 결정권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지금도 논란이 많다. 아이들이 성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이 성관계를 선택할 자유를 보장하라는 것이 곱게 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단어를 성관계할 수 있는 권리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수업을 해보면 아이들조차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경쟁이 치열한 학교와 늦은 시간 이어지는 사교육, 성적 말고는 나의 존재를 확인하거나 보여줄 수 없는 사회 구조안에서 통제받으며 살아온 아이들은 이 단어를 '자유'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른 것들은 내 맘대로 되지 않지만 내 성만큼은 내 맘대로 할 수 있어.


그렇다. 당신은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원한다면 성관계할 수 있다. 책임감 있는 주체적인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한다면 괜찮다.


인생관, 성적 가치관, 스스로 내린 결정(주체성, 자유, 자발성, 자율, 충분한 정보, 예측가능성), 자기 책임, 성관계. 이 단어들은 어른들이 들어도 추상적이고 어렵다. 인생관과 가치에 대한 생각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깊이 고민하지 않으면 말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그리고 깊고 긴 고민이 필요한 삶의 주제에 대해 통찰을 얻기 위한 노력은 수능의 적이다. 수학 문제를 하나라도 더 풀어야 하는 시간에 철학적인 주제를 던져 주는 것은 금쪽같은 시간을 뺏았는다. 공부 시간이 줄어드는 것보다 더 공포스러운 일은 당연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지금의 삶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면 통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당연함의 단어는 타인을 통제하고 조종, 비난하는데 탁원한 기능을 수행한다. 상위권 대학 진학은 어렵다. 하지만 상위권 대학을 진학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진로를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고 사회적 편견에 맞서야 하며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더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대학 진학을 선택한 아이들에게는 공부해라만 말하면 되는데 진로를 고민하는 아이에게는 공부해라라는 지시가 아니라 끝도 없는 질문을 해야 한다.






내가 배우지 못해서, 나도 그게 뭔지 잘 몰라서, 사회 시스템이 이미 그렇게 만들어놨기 때문에 뒤로 미뤄놨던

주체적 삶에 대한 것들을 고민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성관계'는 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것은 오랜 시간 찾아야 하고 학습하며 적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성은 이미 갖고 태어났다. 그런데 성관계는 나의 성과 타인의 성과 함께 만나는 것이고 관계 안에서는 늘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기 때문에 쉽고 재미있고 즐거운 성으로만 접근했다가는 큰일 난다. 하지만 이조차 인간의 삶과 관계에 대한 관심, 고민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것이 어려워서 가볍게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출처: 영화 알라딘



알라딘의 지니도 할 수 없는 세 가지 중 한 가지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즉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은 못한다였는데 그것을 돈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사랑 가득한 관계도 감수성이 떨어지는 순간 폭력으로 변하는데 돈으로 이뤄진 관계야 말해 뭐하나.




성매매는 비즈니스야, 아줌마들은 이해 못해.




명절 가족 모임. 맥주 한잔을 하며 사업 얘기를 하다가 나온 지인의 한마디에 속이 뒤집혔다.

'영업하려면 접대를 해야 하는데 상대가 성접대를 좋아하면 해줘야지. 나도 싫지만 하는 거야. 우리 마누라, 새끼들 먹여 살려야 하니까. 그런데 눈치 없이 마누라들은 싫다고만 말하니 답답해. 내가 만난 회사 여직원은 눈치껏 '좋은 데 가시라며'자리를 피해 주더라. 일하는 여자들은 참 세련됐어...'

옆에 배우자가 있었고 그 옆에는 우리 부부를 포함한 두 쌍의 부부가 함께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매매 경험을 이렇게 대놓고 떠들어 대다니...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부인들은 남들은 다 해도 되는데 내 남편만은 안 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손사래를 쳤다.


분위기 좋은 상황에서 이 기분을 깨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왜?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그들한테 이 소리를 또 듣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가만히 있으면 자기가 잘하고 있는 줄 알고 동의와 지지를 얻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너 지금 불법적인 일을 했다고 자백하는 거야? 성매매는 불법이야.'


역시 분위기는 싸해졌다...


승리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승리는 재수 없게 걸렸다 였을까 아니면 더 조심해야지 였을까, 아니면 이제 세상이 변하고 있구나 였을까, 성매매는 범죄구나 였을까...


지인들의 입에서 편견과 착취, 폭력이 가득한 이야기가 나올 때


나는 웃을까, 정색할까, 자리를 피할까, 불편하다고 말할까, 범죄자라고 비난할까,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줄까, 연을 끊을까.


고민이 많아진다. 눈치 없다며 옆구리를 찌르던 남편도 곁에서 내 남편만 아니면 된다고 했던 이들도, 웃으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도 다 짜증 난다.


그리고 그 얘기를 하고 있던 나는 참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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