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던 시절 그곳에 근무하는 간호사, 코디네이터, 피부관리사는 모두 여자였다. 그리고 피부과라는 특성상 외모를 많이 보고 채용을 했는지 다들 키가 크거나 늘씬하거나 예쁜 외모를 갖고 있었다. 예약 상담을 하는 사람들도 피부에 대한 전문지식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신 원장님 중 한 분은 매주 한 시간씩 직원들에게 수업을 해주실 정도로 열정적이셨고 직원들을 소모품이 아닌 동료로 대해주셨다. 그렇게 전문지식이 중요하다고 하고 외모를 가지고 한 번도 뭐라고 하는 의사 선생님은 안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코디네이터들 안에서는 다이어트 열풍이 불었다. 정상체중이었던 나도 그 분위에게 이끌려 함께 더 아름다운 몸매를 위해 체중조절을 시작했다. 그때는 건강한 몸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그냥 날씬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 곧 건강한 것이었다. 20대 때 미성숙함은 40대 중반의 나는 꿈도 못 꾸고, 하고 싶지도 않은 그 일을 하게 하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동료가 추천해준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아 탄수화물 흡수를 막아준다는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배추로 연명하는 삶을 한동안 살았다. 동료들과 함께 다이어트하며 나누는 대화들은 참 즐거웠고 일을 통한 동료애보다 함께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끈끈하게 연결해 주는 것 같았다. 그때의 나를 떠올려보면 줏대 없는 선택들과 삶에 대한 얕은 고민들,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살던 삶이 부끄럽기도 하다. 연예인들이 항상 대기실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피부 레이저 시술을 하면 6개월 이상 바깥공기를 마시지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하는데도 그 감옥 같은 삶을 기꺼이 선택하는 고객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아기들의 태반을 주사받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역시 아름다움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해!'라는 확신을 갖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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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를 만났다.
지방흡입을 예약하고 방문한 그녀는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교차하는 상태였다. 지방흡입은 전신마취를 하고 많은 구멍이 뚫린 바늘을 지방층에 넣어서 앞뒤로 움직이며 진공청소기처럼 지방세포를 흡입하는 시술이다. 그런데 지방세포를 흡입할 때는 혈액도 함께 빨려 나오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이 할 수는 없다. 이 시술 전에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안내를 받고 사인을 한다. 이런 싸인은 번지점프를 할 때도 하는 것이고 간단한 수술을 할 때 최악의 상황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의료진이 하는 안내라는 생각을 하면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더 크게 긴장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시술 한 번에 날씬해진 몸을 기대하는 마음과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감정이 같이 생기게 마련이다.
싸인을 끝낸 고객은 수술실로 들어갔고 워낙 여러 번 진행됐던 수술이라 별 걱정을 하지 않고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119 구급대원들이 병원으로 뛰어들어왔다. 모든 것이 문제없이 진행됐고 의료진의 처치가 적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심장이 멈췄다.
이 일로 나는 많은 충격을 받았다. 목숨을 걸고 만들어야 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그 후로는 건강한 체중조절을 생각하며 약 따위는 먹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아이들이 다이어트 얘기를 하면 유리문을 열고 뛰어들어오는 구급대원들과 이동침대에 실려 나가던 그 사람의 모습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성형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얘기를 하는 고객들이 있다.
하루를 살아도 사람처럼 살고 싶어요.
과체중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왕따를 경험했고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꼬리표가 따라와서 죽고 싶었던 시절, 지하철에 자리가 나서 앉았더니 자리 많이 차지해서 불편하다고 짜증 냈던 아저씨, 목이 말라서 탄산음료 하나 사 먹었더니 저렇게 먹으니까 돼지가 된다고 뒤에서 숙덕거리던 사람들, 집에 와서 날 보자마자 한숨 쉬는 엄마. 한 번도 사람답게 살아보지 못했다고 죽어도 좋으니 날씬한 몸으로 죽고 싶다고 말하는 고객들을 만난다. 외모에 대한 부정적 경험은 그렇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주고 그녀를 죽음에 몰아넣은 것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아이들이 말한다.
초등학교 친구들이요.
지하철에서 만난 아저씨요, 길거리에서 쑥덕거린 사람들요, 엄마요, 우리 모두요, 외모가 중요한 세상이요.
조용해진 교실, 나는 아이들의 가슴이 기억하도록 정성을 담아 천천히 말한다.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어 전달되는 것은 진정성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나의 한마디가 잠깐의 아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잊지 마. 선생님은 청년들을 만난단다. 선생님이 만났던 언니, 오빠들은 마음이 힘들어서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그러더라. 지금도 초등학교 때 자기를 욕하고 놀리며 따돌렸던 아이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누군가에게 거부당하거나 상처 받은 경험은 아주 오래간단다.
마음에 기록하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이 있기는 하다. 몸에 기록시키는 것이다.
우리 반은 성희롱 없어요.
외모를 가지고 놀리면 반성문 써야 해요. 1,2,4,8,16장 끝도 없이 늘어나요.
반성문 쓰기 싫어서 안 놀려요.
규칙과 원칙을 세우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은 일시적이다. 규칙이 없는 곳이나 선생님이 보지 않는 곳에서 벌을 받지 않는다면 해도 된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래서 반에서는 욕을 하지 않는 아이들이 학원에서는 쌓아놨던 욕과 놀림으로 한풀이를 한다. 힘으로 유지되는 비폭력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규칙을 정하기 전에 자신의 행동이 타인과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려주고 보호를 위해 안전의 울타리가 필요하다는 것과 그것이 깨졌을 때 보호를 위한 힘이 작용할 것이라는 점을 꼭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함께 규칙을 정하고 공유해야 한다. 학교와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정한 규칙은 아이들에게 힘을 나눠주지 못하고 공동체 구성원이 힘을 갖고 있지 않으면 보호의 울타리를 칠 수 없다. 만약 이미 만들어진 규칙이 있다면 이 규칙이 왜 만들어졌고 어떤 가치를 포함하고 있으며 어떤 행동이 가치를 포함한 행동인지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냥 하라면 하지 뭔 말이 많아? 그냥 하라면 해 안 하면 혼날 줄 알아!
말을 한다는 것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옳은 일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약자를 돕기 위해 연대할 수 있다.
그래서 난 왜요?라고 묻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참 반갑고 좋다.
초등학교 6학년 수업에서 성편견에 대한 수업을 했다. 다움의 저주라는 주제로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은 이 저주라는 말에 솔깃해한다. 공포스럽고 은밀한 주술적인 무엇이 있을 것만 같은 이 '저주'라는 말이 난 마음에 든다. 한 사람의 인생을 흔들어 놓고 평생을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게 하는 것이 저주가 아니면 무엇인가?
저주의 이야기는 전족으로 시작된다. 결혼하고 선택받기 위해 5살 아기의 발로 살아야 했던 여성들의 삶, 그리고 코르셋으로 얇아진 허리는 재채기만 해도 부러져서 기침 한번 시원하게 못하는 삶에 대해 말하면 교실 안은 여자아이들의 분노 섞인 말들로 시끄러워진다.
미친 거 아냐?
아니 저걸 부모들이 가만히 뒀어요? 저걸 엄마가 해줬다고요? 엄마도 아니네.
결혼 안 해도 돼요. 저렇게 사느니 혼자 살지. 와~ 모두 다 사이코 같아.
흥분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쯤 시력을 잃어가며 착용하는 서클랜즈, 기형이 돼가는 발을 보면서도 하이힐을 신는 사람들, 아름다움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다가 거식증이 생겨 목숨을 잃는 사람들, 몸에 나쁜 성분이 있는데도 문방구에서 화장품을 사서 바르는 아이들, 그것을 부추기는 어른들과 미디어에 대해 얘기하면 아이들은 숙연해진다.
미래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똑같이 말할 수도 있겠다. 맞아... 현대판 전족이네.
아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작은 자극에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연결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 힘을 잃어가지 않도록,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이다.
지역이나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내가 갔던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는 화장을 하고 앉아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학교에서는 아이들 화장을 안 하게 해달라고 하고 부모들은 지금은 안 하지만 중학교 가서 화장할까 봐 걱정이라고 말한다.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어차피 할 거면 10~20만 원짜리 좋은 것을 사줘야겠다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화장품으로도 빈부격차가 생기는 세상이다. 화장을 반대하거나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엄마 몰래 문방구에서 1000원짜리 화장품을 바르고 화장할 거면 좋은 것을 쓰라거나 자기표현과 스트레스 관리 방법으로 화장을 바라보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고가의 화장품은 아니더라도 부모가 선택을 도와준 안전한 화장품을 쓰게 된다.
예전에는 노는 언니들의 상징이었던 화장이 지금은 또래와 연결되고 나를 표현하며 학업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창구 역할도 하고 있다. 그래서 어른들의 학생답지 못하게 무슨 화장이야! 는 먹히지 않는다. 다움의 저주는 어디서든 머리를 든다.
그 말은 나를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스트레스받아서 죽을 것처럼 괴로워도 상관없으니 외톨이로 공부만 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업에서는 화장을 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자신이 원한다면 계속 화장을 하거나 다이어트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화장하고 싶지 않을 때,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고 싶을 때 타인의 시선이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건강에 해가 되는 일이 아닌데도 원하는 행동을 눈치 보며 하지 못하는 것은 주체적이지 못한 삶이라는 점을 알게 되는 것이다. 몸살감기에 걸려서 앉아 있기도 힘든데 다른 사람들이 나의 못난 얼굴을 보게 할 수 없다며 화장하는 모습을 완벽한 자기 관리라는 말로 포장하지 않기를.
사회와 문화 안에 숨겨진 편견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선택하는 나를 바라보며 그것이 정말 나의 선택인지 아니면 선택을 하도록 훈련받은 것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름다운 외모인지 아니면 인정과 사랑인지,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내가 스스로 채운 전족과 코르셋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긴 고민 끝에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확신이 생긴 아이들은 세상이 정한 틀 안에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짜 나를 사랑하고 표현하기 위한 선택을 할 것이다.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으면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을 불쌍하다고 말한다.
그럼 나는 아이들에게 묻는다
몸을 통제받는 것이 불행할까? 감정을 통제받는 것이 불행할까?
너희들은 울면 안 되고 두려워해서도 안돼. 너희들은 언제나 강해야 하고 강하지 못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거야.
와! 말도 안 돼! 왜요? 여자애들이 더 세고 키도 커요. 무서운 게 왜 부끄러워요?
그래 키가 작은 것이 문제야. 남자는 키가 커야지, 그러니까 여자애들이 너희 싫어하는 거야. 키도 작고 힘도 없고 겁쟁이라. 이 말을 들으니 어떠니?
화나요, 짜증 나요, 답답해요, 속상해요.
그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거야, 슬픔과 두려움도 인간이라면 느끼는 감정이지. 남자이기 이전에 너희는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 마, 누군가 사내자식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을 듣게 되면 속으로 생각해. 안전한 상황이면 말로 해도 좋고.
감정 없는 로봇 남자가 되느니 감정 가진 사람으로 살래요.
키가 커야 한다고요? 그건 성 편견이에요. 성편견을 가지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키는 남자로 사느니 지금 키로 살면서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 큰 사람으로 살래요
사춘기는 몸과 생각과 감정이 자라는 시기란다. 이 시기에 몸만 크고 생각과 감정이 크지 못하면 몸은 어른인데 초등학생 같은 생각과 말을 하지. 몸과 마음이 성장하면 어른 안에 숨어있는 초등학생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단다. 그래서 지금 너희들의 사춘기는 정말 중요하고 소중하고 기대되는 시기야. 몸의 변화만 보지 말고 생각, 감정도 잘 돌봐주렴. 그럼 몸과 마음이 같은 나이를 가진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