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희 Mar 03. 2021

야! 네가 모르면 어떻게 해?

비난이 난무하는 세상을 산다는 것

오랜만에 시댁 가족 모임을 가졌다. 6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아이와 함께 이동해야 하는 나는 큰 마음을 먹어야 했다. 차 안에서 놀 것과 먹을 것. 아이가 좋아할 만한 숙소를 예약하고 출발했다


멀어서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친척들을 만나자 남편은 신이 났다. 그리고 술에 취한 남편은 자연스럽게 차키를 나에게 넘겨줬다.


 길눈이 어둡고 내비게이션과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내게 늦은 밤 운전은 큰 스트레스다. 술에 취해 정신이 없는 남편과 아이들을 태우고 가는 것도 불안하고 특히 불빛 하나 없는 시골의 낯선 도로를 운전하는 것은 두려움이란 감정에 기름을 뿌리고 있었다.


60Km로 운전을 하니 뒤차들은 계속 나를 앞질러 갔다. 빵 소리 한번 내지 않고 나를 앞질러 가는 차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예약해 둔 펜션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1Km를 남겨두고 아무리 봐도 숙소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길, 집과 집 사이의 작은 샛길로 들어가라는 안내가 자꾸 나왔다.


'여기 맞아? 여기 들어가라는 거야? 아... 모르겠어...'


라고 말하니까 남편은 짜증을 냈다.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해?
운전하는 사람이 모르면 어떻게 하냐고!





그래서 되도록이면 남편 차는 운전하고 싶지 않다. 한 팀으로 어딘가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대리운전기사가 되어 고객을 모시는 마음으로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뒤에 있던 중2 아들이 아빠 말에 한마디 더 보탠다.


'뭐야~ 아~ 완전! 와~ ' 


그때 뒤에 있던 6살 딸이 해맑은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는 가는 길을 모르는구나.




어. 엄마는 숙소 가는 길을 몰라ㅠ.ㅠ


 한심하고 답답하고 네비가 알려주는 길도 못 찾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숙소 가는 길을 모를 뿐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길을 잃거나 내가 가던 길이 잘못됐다는 의심이 생길 때도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들이 생길 수 있다. 길 앞에서 당황스러워할 때마다 주변에서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비난과 판단, 조언의 말을 쏟아 놓는다.


그 나이 먹도록 뭐했어. 한심해.

왜 머뭇거려? 애가 왜 이렇게 확신이 없니? 바보 아냐?


그 말들은 길을 찾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난과 질책에 두근거리던 마음을 다독여주고 '그럼 니들이 운전해봐!'라며 차키를 던져 버리지 않게 해 줬던 한마디는 넌 할 수 있다는 응원이나 다시 한번 잘 들여다 보라는 조언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잘 모른다는 것을 판단 없이 봐주고  찾아가는 시간을 기다려줬던 마음이었다.


어렵게 길을 찾은 숙소에 도착하자 아이가 기뻐하며 말한다.




이제 오는 길을 알았네.
매거진의 이전글 거지나 하는 짓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