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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Nov 05. 2020

거지나 하는 짓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칼

중1, 몸과 마음의 폭풍을 견뎌내는 아들은 요즘 들어 남편과 많이 부딪친다.


청소를 잘하지 않아서,

스마트폰 사용이 많아서,

말을 또박또박하지 않아서,

공부하는 자세가 좋지 않아서,

말을 안 들어서,

잠을 늦게 자서...


혼날 일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어제는 아들이 빵을 손에 들고 돌아다니며 TV를 보다가 남편에게 걸려서 잔소리를 들었다.


앉아서 먹어!

 


네가 거지야? 왜 거지들이나 하는 짓을 해!
속상할 땐 이불부터 뒤집어 쓰는 아들, 그럼 꼭 옆에 와서 자리잡는 딸랭이



이 말은 두 가지 때문에 나를 불편하게 한다.


첫 번째, 거지라는 말.

거지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비난이나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물론 외제차 타면서 구걸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것은 내가 직접 본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없고 만약 그런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 또한 안타깝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경제적 도움을 받느냐 심리적 도움을 받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두 번째, 나의 바람이 아닌 아이를 깎아 내리는 말.

남편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자리에 앉아서 먹는 것, 아이가 예의를 배우는 것, 공동체의 문화를 잘 익히는 것, 자신의 말을 잘 들어서 통제 안에 들어오는 것, 존중받는 것 등을 원하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 외에도 더 많을지도 모르고 또는 한 가지 이유만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지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말로는 이런 바람들이 이뤄지기는 어렵다. 내 말에 따라 자리에 앉아서 먹을 수는 있겠지만 이것은 두려움에 의한 행동이지 상대를 존중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은 아니다.


아빠만 없으면 반복될 그 행동들. 나는 남편이 없을 때 그가 금지한 모든 행동들을 하고 있는 아들을 지켜봐 왔다.


자리에 앉아서 먹어, 돌아다니면서 먹으니까 마음이 불편해.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행동하다가 미움받을까 봐 걱정돼. 이렇게 말해도 될 것을 꼭 비난하고 아이에게 수치심을 주는 방법을 택하는 남편이 안타깝다.





좋게 말하면 말을 들어먹지 않잖아!
이 새끼가! 내가 우스워?




당신의 새끼인 것은 맞지만... 그렇게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이니까.


화나서 하는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하지만 말하고 나서 후회가 남는 것은 그 말이 상대에 가슴에 칼이되어 박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칼은 아주 오랜 시간 그 곳에서 아이를 아프게 할 것이다.

나는 평소에 아이들에게  '화가 나면 10분 안에 후회될 짓을 하게 될 것이라는 알림'이라고 말해준다.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이지만 그것을 상대나 나를 아프게 하는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꼭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화가 났을 때 나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미리 생각해 놓는다. 집에 필요한 것은 비상상비약과 마음 구조함이다.



소리 지르며 후회될 짓을 하기 직전, 5살 아이가 달려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엄마, 숨 쉬어! 후~ 하~ 후~ 하~




아이가 자기 오빠와 엄마, 아빠를 살린다.

정신이 돌아오게 만든다.

그래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지.

독기로 가득히 날이 선 칼을 다시 칼집에 집어넣는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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