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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Jun 29. 2020

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나 봐!

마음 번역기

14살 오빠와 싸우던 5살 아이가 침을 뱉었다.

물론 처음 뱉어 본 침이라 멀리 나가지 못하고 아이의 턱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나중에 큰애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턱 밑을 흐르던 침'에 대해 얘기하며 한참을 웃었지만 그 당시에는 흐르는 침을 보고 난 이성을 잃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침을 뱉어! 그건 나쁜 짓이야,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


물을 엎거나 벽에 낙서를 하거나 물건을 깨는 상황에서는 대부분 그럴 수 있다며 다음에는 조심하라고 애기한다. 하지만 침을 뱉거나 때리거나 욕을 하거나 해서 상대를 의도적으로 다치게 하거나 마음의 상처(수치심과 모욕감)를 주는 행동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대응하는 편이다.


쉴 새 없이 다그치는 나를 보고 아이가 울며 하는 말





엄마는 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나 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를 꼭 껴안으면서


"엄마가 이렇게 말하면 심장이 멈추는 것처럼 괴로워? 그래서 죽을 것 같아? 그걸 알려주고 싶었어?"


응, 죽을 것처럼 괴로워...


그 후로 아이는

혼나는 상황이면 '죽었으면 좋겠나 봐'를 외쳤고

내가 귀찮아하면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나 봐'를 얘기했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할 때마다 '그게 아니라~' 하면서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번역기를 켜게 됐다.


죽었으면 좋겠나 봐가 아니라 함께,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야.

사라졌으면 좋겠나 봐가 아니라 엄마가 오늘 많이 피곤해서 쉬고 싶은 거야. 너 때문에 그런 건 아니야. 미안해.


감정의 태풍이 몰려올 때 이 말들은 나를 태풍의 눈으로 데려가 줬고 이성을 찾은 나는 비난과 비판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들에 집중해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더 부드럽고 세련된 말로 나의 바람을 알아차리게 해 주면 좋았겠지만 슬프게도... 가공되지 않고 아이가 생각하는 그대로를 말해주는 이것이 나에게는 가장 효과적이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그 말을 듣고 " 아니 얘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게 엄마한테 할 소리야? " 또는 " 그래 너 귀찮아 죽겠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고 말하며 더 열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그런 행동이 위험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아이들은 그것을 자기 존재 대한 피드백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는 아이가 그것을 말해줘서 알게 된 것이지만 많은 아이들(나의 어린 시절 포함)은 내면의 메시지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보호가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기에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 할 수 있지만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영향을 미친다.









tvN 호텔 델루나의 한 장면


누군가의 삶을 망쳐 버리고 싶을 때, 장만월의 가장 잔인한 저주는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들어가서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메시지를 심어주는 것이었다.





너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후회해,
너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이 재수 없는 것,
봐~ 온 가족이 너만 두고 가버렸잖아.





이 메시지는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의 삶을 망쳐버릴 수 있는 힘이 있다.



아이는 공동체의 규칙과 세상의 가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며 실수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번 혼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하는 시간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평소에, 잠자기 전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야기해준다.


넌 참 소중한 사람이야. 네가 오기만을 기다렸었지. 널 만나기 위해 많은 상상들을 하며 기다렸었어. 그 시간이 정말 행복했단다. 엄마가 간혹 혼을 낼 수도 있고 화를 내는 날이 있을 수 있지만 그건 널 미워하거나 싫어해서 그러는 게 아니야. 혹시 그런 생각이 들 땐 참지 말고 물어봐. 그 생각은 진짜가 아니야. 진짜 엄마 마음을 들려줄게.


그리고 내 존재를 의심하는 내 안의 어린아이를 만날 때면 그 아이에게도 얘기해준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넌 참 소중한 사람이야. 내가 널 알고. 내가 널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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