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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Mar 13. 2021

그래서, 날 버릴 거야?

버려짐의 두려움

우리 집에서 절대 용납되지 않는 것이 있다. 아니, 나에게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그것은 약자를 괴롭히는 행위다.


그래서 나보다 힘이 약한 존재를 함부로 대하거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 나에게 발견됐을 때는 엄청나게 혼이 난다. 그것은 남편도 예외가 아니다.


힘의 불균형은 늘, 언제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힘의 이동이나 변화, 크기를 관찰하지 않으면 힘을 가진 사람들의 폭력에 피해자가 되거나 내가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힘을 가진 사람들은 늘 조심해야 한다. 힘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고 그러다 보면 주변 사람들의 바람들은 무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아이들에게 좋은 집을 주거나 큰돈을 물려줄 자신은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나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약자를 돕는 힘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6주된 병아리...닭?


6주 전에 태어난 병아리들은 둘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6살 아이는 시골에서 알을 가져올 때부터 3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가슴에 알을 품었다. 부화기에 알을 넣을 때는 알 하나하나에 꽃짝이, 꼬냥이, 삐약이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딱 21일이 됐을 때 꽃짝이와 꼬냥이가 인공 파각으로 세상에 나왔다.


유난히 알도 작았고 긴 시간 동안 일어서지 못했던 꽃짝이었지만 지금은 긴털을 가진 작은 암탉으로 성장하고 있다.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동자를 쪼아대는 꼬냥이와 달리 꽃짝이는 순하고 겁도 많아서 결국 6살 딸아이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됐고 그렇게 사랑이라는 이름을 단 학대가 시작됐다.


닭장에 갇혀있는 병아리를 빼주자고 가장 많이 얘기하는 사람도 둘째,

밀웜 먹이를 가장 많이 찾아주는 사람도 둘째,

목이 마를까 봐 소꿉장난 그릇에 물을 따라서 나르는 것도 둘째,

과자나 맛있는 것이 있으면 꼭 나눠먹고 싶어 하는 것도 둘째

꼬냥이가 맛있는 것을 독점하면 꽃짝이를 몰래 방으로 데려가서 특별식을 대접하는 것도 둘째다.


둘째 율이는 병아리들, 특히 꽃짝이를 예뻐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살뜰한 돌봄의 마음이 함께 놀이하고 싶은 마음으로 발전할 때 생긴다.


상자에 꽃짝이를 넣고 '까꿍 놀이', 멀리 날아보라며 '하늘에서 던지기 놀이', 몸을 길게 뻗는 '로켓놀이'는 병아리에게 귀찮고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하는 놀이들이다. 병아리 입장에서 얘기하면 폭력이다. 아이에게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을 주고 다른 한 생명에게는 공포가 된다면 그것은 놀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얘기하지만 즐거움에 귀가 멀어버린 아이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 같이 놀이를 할 때마다 병아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병아리가 싫다는 표현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관찰하게 하지만 손에 보드라운 병아리를 쥐고 있는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의 잔소리로만 들렸나 보다.


그러자 내 눈이 닿지 않는 순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지켜보는 눈이 사라지자 율이는 꽃짝이와 새로운 놀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해진 분위기를 수상하게 느끼고 아이에게 달려갔을 때는 이미 꽃짝이는 바닥에 엎드려 있는 상태였다.


'꽃짝이 왜 이래?'

'그냥 앉아 있는 거야.(몸을 들어 올리며) 일어나 봐.'

계속 앉아 있는 꽃짝이

'못 일어나는데?'

'계속 앉아있네. 일어나 보라니깐?'

'지금 무슨 놀이 했어?'

'내가 꽃짝이 리를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어. 하늘에서.'


얘기만 들어도 무서웠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가 작은 병아리 꼬리를 잡고 허공에서 흔들어대는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눈앞에 쓰러져서 움직이지 못하는 병아리를 보자 눈물이 나면서 화가 났다.



'왜! 왜 그랬어! 그러면 꽃짝이가 다칠 수도 있다는 걸 몰랐어? 아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못했어? 왜 그랬어!!!'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아이 눈은 휘둥그레지기 시작했다.

'다칠 거 알았어, 아플 것 같았어'

'그런데 왜! 왜 그랬어, 아플 것 알면서 왜 그랬어!!!'


지금까지 배운 감정코칭이고 대화법이고 다 생각나지 않았다. 머리 한쪽에서 작은 목소리로 '새가 중요해 애가 중요해?'를 물어보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 상황은 누가 중요하고 좋으냐를 묻는 질문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를 아끼니까 더 강하게 소리친다고 생각했고 작은 생명을 그렇게 대한 율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렇게 매일 얘기했는데! 내가 그러면 안된다고 얘기했는데! 왜! 왜!

넌 꽃짝이를 키울 자격이 없어. 이제 꽃짝이 만지지 마. 일주일 동안 접근 금지야!

오빠 봐 딸랑이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라고. 사랑한다는 건 그런 거야. 아프게 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

너 꼬리 잡고 흔드는 거 호랑이한테도 할 수 있어? 무서워서 못하지? 무섭고 큰 동물한테는 하지 못하는 행동을 작은 동물한테 하는 것. 이건 비겁한 짓이야. 나 보다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나보다 약한 사람한테 강하게 하는 것처럼 비겁한 게 없어. 약한 생명한테 더 잘해줘야지!'


비난, 비교, 협박이 난무하는 말들이 끝나자 아이가 울면서 말한다.





그래서, 엄마 나 버릴 거야?




정신을 차렸다. 분노로 불타오르며 주변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처럼 소리 지르던 내게 아이가 한 말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같이 순식간에 모든 불을 꺼버렸다.


'널 왜 버려. 가족은 버리지 않아.

밉고 화난다고 버리는 건 사랑이 아니야. 엄마는 자기 아기를 버릴 수 없어.

꽃짝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무서워서 그래. 그렇다고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는 것은 아냐.'


옆에 15살 아들에게 물었다.

'너도 그런 생각 했던 적 있어?'

'응,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 몰래 새벽 2시에 거실 나와서 게임하다 걸렸잖아. 그때 엄마가 엄청나게 화를 냈는데 화나서 나를 버리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했었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아니'

'지금은 엄마 없어도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응'


별로 서운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엄마 죽어도 상관없어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려질까 봐 두려워하는 삶을 살지 않겠어'라고 들렸다. 자신과 타인이 구분되는 경계를 인식하고 심리적 독립을 준비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생각을 하니 안심이 되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혼날 때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는 글을 책에서 읽었는데 직접 아이의 입으로 그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꽃짝이와 꼬냥이는 율이를 떠나 나에게 왔지만...


난 네 곁에 있을 거야.
어떤 행동을 해도 절대 널 버리지 않아.




아이가 좀 더 크면 알게 될 것이다. 아이를 버리는 엄마, 때리는 엄마, 죽이는 엄마도 있다는 것을. 가족은 절대 서로를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 거짓말이 되버린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이가 그런 세상에 대해 묻는다면 난 어떤 말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까. 그날이 되도록 늦게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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