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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Apr 15. 2021

나 이런 사람이야!

나를 증명한다는 것

코로나 이후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이와 갈등이 생기는 시간도 많아지고 길어졌다. 


태블릿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6살 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흥미가 떨어지면


엄마! 테블릿 해도 돼?라고 묻는다.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많이 한 거 아닌가'하며 찔리는 날은 내가 답을 하기도 전에 


자기 입으로 '안돼!'라고 말할 때도 있고 어떤 날은 온갖 불쌍한 연기를 하며 '제발~'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날도 태블릿을 가져오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율이가 계속 볼까 봐 걱정돼. 전에도 끄자고 하면 화내면서 울었고...


아니야 안 그럴 거야.


정말 믿어도 돼?


응! 약속 지킬 거야.


그리고 10분쯤 지나자 알람 소리가 들렸다.

어린아이도 쉽게 맞출 수 있는 큐브 타이머

어? 내가 알람 켰었나?


아니. 그거 내가 켠 거야.


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려고. 이제 믿을 수 있지?


응. 고마워, 길게 할까 봐 걱정했는데. 엄만 율이 믿어.


아이가 내 말을 들어줘서 기뻤다. 스스로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알람을 맞추는 아이의 마음이 전해져서 미안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거나 증명하지 않아도 믿어주는 사람이 세상에 단 한 명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아이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을 잊고 살았다.









중3, 도서관에 간다고 하고 친구랑 놀러 다녔던 시절. 뻔뻔하게도 공부 열심히 하고 왔다는 얘기를 떠들어 대는 나의 눈을 보면서 할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알면서도 속고 모르면서도 속는 것이 부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신나지 않았다. 내 말을 믿어주니 고맙다는 생각이 든 것도 아니다. 그냥 부끄러웠다. 그리고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죄책감이 든다.


과거를 들먹이며 넌 믿을 수 없는 애라고 비난하기, 그럼 널 증명해보라고 다그치기, 예전에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분명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미리 통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과거를 지금과 연결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아이가 원했던 것을 보기위해 애쓰는 것은  참 어렵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려고 마음먹었더라도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아이를 보는 순간 '음흉한 녀석, 나쁜 녀석, 나랑 한 약속은 우습지?, 저거 커서 어떻게 되려고 해?'라는 수많은 판단과 비난의 말이 머릿속을 휘졌는다.


그 말들이 내 머릿속을 점령하는 순간, 아이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얻고 싶었던 것들은 보이지 않고 나에게는 분노로 불타오르는 감정만 남을 뿐이다. 불타는 분노는 이건 모두 너 때문이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너 때문이라는 생각은 내가 아이를 잘못 기르고 있다는 죄책감과 달라붙어 더 큰 통제와 벌칙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결국 아이는 벌을 피하기 위한 완벽한 거짓말을 연구하며 진화했다.

방에 숨겨놓은 테블릿 찾기



중2, 새벽 3시까지 이불속에 숨어서 유튜브를 보고, 아이들과 채팅을 했으면서도 12시에 잤다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는 아들. 스마트폰을 손에 쥐기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녀석을 보며 '넌 신뢰를 깼어! 이제 못 믿어!'라는 말을 여러 번 했었다. 6학년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나는 아이와 동맹을 맺으며 우리는 서로를 믿으며 지켜주고 지원하기로 했었는데 '동맹을 깬 건 너야'라며 비난했다. 그러자 믿을 수 있는 관계가 중요하고 서로 연결되고 싶다는 엄마의 바람은 사라지고 아들은 엄마랑 연결이라도 되면 큰일 날까 봐 말도 걸지 못하게 하고 나를 피해 다녔다. 


그리고 얼마 후 우연히 아이가 과제로 작성한 자기소개 글을 보고 놀랐다. 자기가 스마트폰을 너무 오래 하고 있어서 걱정이 되고 자기 조절을 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는 글이었다. 아이들하고 놀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할 것이 없어서 유튜브를 보는데 이것도 이제 지겹단다. 심심하면 공부를 해도 된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아이는 즐거움, 우정, 친구들과 연결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건 나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아니었던가! 아이가 스마트폰을 숨기는 모습을 볼 때면 이제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동맹을 깬 건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믿어주고 지지해주기로 약속을 했으면서 아이의 행동만 보고 내가 먼저 동맹을 깼다.


나의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믿어줄 때 할머니 마음은 어땠을까? 난...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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