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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Apr 21. 2021

너 오늘 혼 좀 나야겠다

공부가 제일 무서웠어요.


엄마 나 공부할래요!



6살 아이는 게임을 너무 오래 해서 아빠에게 혼이 나는 15살 오빠를 보며 잔뜩 아 있었다. 난 남편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이번은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이성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용히 집안일을 하려고 했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나의 몸과는 다르게 귀는 모두 아들과 남편의 대화에 쏠려 있었다.

둘째 율이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나 보다. 거실에서 혼자 놀고 있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달려와서는 공부를 하겠다고 하며 글자 블록을 빼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서 글자 공부를 시작했고 글자공부를 한다고 하면 내가 응원을 해주니까 그저 이 험한 분위기를 좀 깨보고자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내 등이 뭔가 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갑자기 혹시 다른 이유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자 고무장갑을 벗고 아이에게 달려갔다.

Photo by Amador Loureiro on Unsplash




율아 혹시 글자 공부하는 거, 안 하면 오빠처럼 혼날까 봐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오빠 혼나는 것 보니까 무서워?

응... 무서워. 나도 혼날까 봐.

오빠 공부 안 해서 혼나는 거 아니야.

근데 왜 혼나?

스마트폰을 너무 오래 해서 조절하는 훈련이 필요해. 그래서 아빠가 도와주려고 하는 거야.

그래?

응. 공부를 해도, 하지 않아도 엄만 널 사랑해. 공부는 무서울 때 하는 게 아니야. 공부가 얼마나 즐거운 건데. 엄마가 새벽마다 책 보는 거 무서워서 하는 것처럼 보였어?

아니!

그래 엄마는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정말 재미있거든!

잘 몰랐던 걸 알게 되는 건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야. 공부는 그런 거지.

응! 나 그럼 다른 거 하면서 놀래.

그래! 놀아! 율이 한테는 노는 것도 공부야!


웃으며 다른 놀이를 시작하는 딸을 보고 다시 주방으로 왔다. 오빠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고 있었고 자기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으니 다음 타자는 자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첫째는 부부싸움이 날 때면 많이 무서워하며 어디 숨거나 눈치를 봤는데 둘째는 싸움이 나면 당당하게 다가가서 '싸우지 마! 그만해!'를 외치거나 사람들의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려 갈등을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들을 보였다. 그래서 두려움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둘째도 많이 겁먹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지금까지 강한 척하는 아이에게 속고 있었다.










난 아이들의 공부가 무섭고 끔찍한 것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부도 관계 맺기다. 내가 그 과목을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성적을 잘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과목에 호기심이 생기고 재미가 있는 것. 그리고 열심히 공부했을 때 나의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던 경험들이 모여서 지식에 대한 감정을 만든다.


나는 영어와 끔찍한 관계를 맺고 있다. 중1부터 시작된 영어 수업은 영어 암기와 매타작이 일상이었고 영어라는 과목을 생각하면 몸부터 웅크려진다. 매일 수업시간마다 책 외워서 발표하기, 단어시험 보기, 틀린 만큼 맞고 공책에 단어 반복해서 쓰기. 일명 깜지라고 불리는 그 활동들에 대한 불안은 수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발동했다. 물론 중2부터는 때리거나 혼났던 경험이 많지 않다. 하지만 난 이미 영어와의 관계를 끊어버린 후였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영어가 무섭다.


사회, 한국사, 역사, 세계사, 한문 등... 그렇게 내가 손절한 과목은 한, 두 개가 아니다.





밑줄 쳐!




 책 전체를 똑같이 읽으며 밑줄을 치라고 얘기하시던 고등학교 국사 선생님은 내가 만난 최고 학력의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서울대를 졸업하신 선생님께 우리가 배운 것은 자신이 뛰어난 것과 가르침이 뛰어난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라는 점이었다.

손절 과목들의 공통점을 찾아봤더니 모두 암기 과목이었다. '난 외우는 것이 싫다. 아니, 잘못한다.'라는 생각을 하며 산지 20년도 넘게 지나서 TV에서 나오는 한국사 수업을 보고 알았다. 역사는 암기가 아니라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하지만 이미 수능은 끝났다.


사람들은 나의 얘기를 들으며 암기도 싫어하고 못한다는 사람이 30시간이 넘는 수업을 어떻게 혼자 진행하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기 발견은 암기가 아니라 삶이기 때문이다. 삶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고 발견하며 해석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삶이 실험실이고 나를 찾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실험이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쓸데없이 실험실에 박혀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와서 애들하고 함께 경쟁이나 하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세상이었다. 그렇다고 실험하는 삶이 맘 편한 것은 아니다. 한번 실험으로 성공하지 못하면 끝장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 번도 우리들에게 공부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공부를 잘하면 예뻐하고, 못한다고 구박하시지 않고 그냥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해 주고 믿어 주셨다. 그것이 난 참 감사하다. 그래서 실험을 맘껏 할 수 있었고 끝장이라는 두려움 없이 배우고 직업을 7번이나 바꾸며 지금 이 일을 찾을 수 있었다.



60대의 할아버지가 돋보기안경을 쓰고 옥편을 열며 늘 하셨던 말씀.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

         



난 그 말이 참 좋다. 할아버지에게 옥편은 두려움이었을까? 아니면 즐거움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자부심이었을까?


나도 아이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




배운다는 것은 즐거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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