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가 부끄러워!

수치심 뒤집어 씌우기

by 한희

성교육을 강의한다고 말하자 남편은 부끄럽지도 않냐고 반문했다.


여자가 밖에 나가서 성을 얘기하는 것도 좀 그런데... 그걸 가르치기까지 한다니... 본인은 마음에 안 든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성교육을 한다고 하면서 성을 주제로 얘기를 시작하면 나와 대화를 하던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인다.


급하게 주제를 바꾸며 다른 얘기를 하기도 하고 지금까지 궁금했던 것을 쏟아 놓기도 하고 과거 성폭력과 관련된 다양한 사건들을 기억해내며 세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분노를 표현하기도 한다.


성이 누구에게나 편한 주제는 아니다. 한 사람의 지나온 과거 경험과 생각들이 성에 대한 태도를 만들기 때문에 나는 '왜 성을 부끄럽게 생각하냐'라고 묻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과거가 있기 때문에 그냥 '불편한가보다'하면서 지나칠 뿐이다.


수업시간에 아이들도 어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성교육 시간만 기다렸다는 듯이 신이 나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아이, 아무 말 없이 내 이야기에 빠져드는 아이, 집에서 있었던 일이나 경험을 차분하게 펼쳐놓는 아이, 귀를 막고 야하다고 소리치는 아이, 세상과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로 흥분하는 아이, 눈을 감고 엎드려 자는 아이 등 똑같은 모습을 하며 앉아있는 아이는 하나도 없다.


이렇게 다른 생각과 성격, 태도를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똑같은 성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마음 한편이 찝찝하고 답답하다.


수업 시작부터 끝까지 고추를 외치며 즐거워했던 아이에게는 '성은 재미있고 신기해, 그리고 진지하지'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아무 말 없이 이야기를 듣는 아이에게는 성에 대한 느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묻고 싶었고 자신의 경험을 펼쳐놓은 아이에게는 공감의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귀를 막고 야하다고 소리치는 아이와는 자연과 생명의 이야기를 먼저 나누고 싶었고 가해자들에게 분노하는 아이들과는 연대의 힘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그리고 엎드려 자는 아이들에게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를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30명이 모인 교실에서 이렇게 수업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특히 성은 부끄러운 것이다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아이들의 생각을 40분 안에 바꾸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수업을 잘 듣다가도 성기 이야기만 나오면 소리를 지르고 귀를 막는데, 그때마다 불편함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낯설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 어떤 경험이 있었는지를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은 자연스러운거야.'라는 말이 귀에 들어갈 리가 없다. 물론 그 말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 생각이 없는 아이들이 '부끄럽다고 소리치는'행동을 보고 나서 '아~ 성은 부끄러운 거구나.'를 생각할 때 곁의 어른이 '자연스러운 거야'를 말해준다면 사람마다 성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될 테니까 말이다.








여자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에서는 특히 '부끄럽다'라고 얘기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남자의 성기를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주는 것조차 불편해하고 '이제 코끼리를 볼 때마다 생각날 것 같다고 동물원을 어떻게 가냐'라고 불만을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월경은 액체가 아니라는 설명과 함께 영상에서 딸기잼을 보여주는데 '난 이제 복숭아잼만 먹을 거야!'라고 선언하는 아이들도 있다.

와이 책을 열심히 보다가 엄마한테 혼난 아이는 '성을 너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안 좋다'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성을 너무 많이 배우면 '발랑 까져서 안된다. 수위조절을 해달라'라고 얘기했던 부모의 아이들은 자신의 몸에 대해 배울 때조차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부끄러워서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던 아이들도 수업이 반복되면서 입을 열기 시작한다. 세 번째 만남에서부터는 더 이상 소리 지르지 않고 부끄러움보다는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기 시작한다. 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도망가지 않고 눈감지 않고 자신의 성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는 순간이 찾아와야 다른 성도 보이고 가족의 성과 세상의 성들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나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눈이 생기면 다른 사람들의 조종, 판단, 놀리는 말들에 발끈하지 않고 단호하게 눈을 보며 말할 수 있다. 성희롱이 일어나는 순간에 부끄러워하며 맥없이 웃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만약 답을 하지 않아도 대꾸하고 싶지 않은 나의 선택이 될 것이다. 만약 '내가 잘못된 거야? 내가 좀 그렇지?'라고 자기 의심을 하는 나와 사랑하는 이들을 만난다면 '아니야'를 외쳐줄 수 있다.


부끄러워서 얼굴을 숙였던 지난날들의 나와 친구, 지인들에게 위로를 전하며 과거 나와 그들이 들었던 이야기들에게 하지 못했던 답을 지금에서야 남겨본다.


Photo by Andrew Neel on Unsplash



여자애가 왜 이렇게 못생겼어?
넌 내가 못생겼다고 생각하는구나. 뭐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르지. 그런데 난 네 생각이 별로 중요하지 않아.
그 얼굴로 연애나 하겠니?
연애는 얼굴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건데. 어른인데도 아직 사랑을 모르다니 쯧.
성관계는 하니? 너 성적 매력이 없는 거 아냐?
너랑 할거 아니니까 관심 갖지 마.
여자가 가슴도 크고 해야 매력적인데, 넌 가슴이...
음란물 끊어라. 그거 불법인데. 쇠고랑 차고 싶니?
농담인데 왜 정색해? 넌 농담도 못 알아듣냐? 그래서 어떻게 사회생활할래?
지금 내 표정 봐, 웃었니? 넌 재미있고 난 지금 정색했어. 이런 걸 폭력이라고 해. 소시오패스야? 타인의 비언어를 읽어내지 못하고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다니. 그래서 어떻게 사회생활할래?



남편은 이런 나를 보며 이제 쌈닭이 됐구나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난 네가 부끄러워.'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저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과 가족, 지인 관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


나와 아이의 성을 얘기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성으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부끄러운 짓이다. 내가 가진 성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편견으로 성을 판단하고 재단하고 그것에 맞지 않는다고 비난하며 놀리는 것이 부끄러운 짓이다. 우스개 소리에 정색하는 사람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상대가 정색할 때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못하는 사람이 부끄러워야 한다.


난 오늘도 감수성을 잃지 않기 위해,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기 위해, 아이들 앞에서 당당해지기 위해.


그리고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나를 응원하기 위해 성교육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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