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도 아닌 일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요

by 한희

당황스러움이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말이나 행동을 경험했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떠오른 다른 생각과 감정으로 연결되고 사라진다.


그날은 시할머니의 죽음이 함께 하던 슬픔과 엄숙함의 날이었다.


상주가 되는 사람들, 그들의 친척들이 함께 모여 돌아가신 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몇몇 사람들은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헤어짐의 아쉬움과 생전에 잘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는 눈물이 한차례 지나가고 나니 사람들의 마음이 좀 풀렸는지 편안하게 일상을 얘기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편안한 일상의 이야기 속에서 불편한 대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술상에 올라갈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던 나의 고개를 더 깊숙이 처박게 했던 그 얘기는 어른들의 술상에서 나왔다. 어떤 대화 중간에 나온 소리인지 알 수는 없으나 한분이 기분 좋게 흥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술, 담배, 여자'는 매일 먹어줘야 해~
그래야 건강하지!




여자를 먹는다고 표현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음란물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일상의 언어로 나오니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매일 먹는다는 표현이 성관계를 뜻한다면 그분이 매일 드시거나 드시고 싶은 여자는 우리 가족이거나 다른 여성일 텐데... 가족이나 사람을 음식에 빗대어 말하는 것 자체가 목구멍에 뭔가를 가득 넣어 놓은 것처럼 나를 숨 막히게 했다.


그리고 그 얘기를 세 번이나 강조해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고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눈을 들어 누군지 확인할까? 상에 앉아 있는 사람들 표정은 어떨까? 옆에 아이들이 있지는 않겠지? 왜 아무도 뭐라고 안 하시지? 고무장갑 벗고 달려가서 한마디 할까? 오늘은 엄숙한 날인데, 내가 한마디 하면 분위기 괜찮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보니 당황스러움은 이미 소심함과 두려움, 짜증과 분노로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분노의 설거지를 하기로 선택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계속 나를 괴롭혔다.









어떤 대화에서는 그 말이 모임의 분위기를 띄우고 즐거움을 줬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물건이나 상품, 먹이 취급을 하면서 품평하고 '따먹었다' 표현을 쓰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이 슬프고 화나지만 어쩌겠는가 그런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런 삶을 선택할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가 들릴 리가 없다. 만약 함께 자리했던 사람 중에 작은 불편함이라도 표현했던 누군가가 있었다면,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지는 못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말해야 한다. 하지만 불편하다는 말 한마디 때문에 잃게 될 많은 것들 때문에 나처럼 고개를 숙였던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모르는 척하는 것도 쉬운 선택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죄책감괴 수치심에 자기비난을 하며 후회하는 삶이 어쩌면 더 큰 고통일 수 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 용기를 내는 것이다.




그 얘기 정말 불편해요.




나도 실수를 했던 적이 있다.

예전에 연말 파티를 얘기하면서 빨간색 옷을 입고 오자는 제안을 한 지인이 있었다. 그때 함께 했던 사람 중에 '난 빨간색 옷이 없는데?'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한 명이 '속옷도 괜찮아. 눈에 안 보여도 괜찮으니까 뭐든 빨간색이면 돼!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함께 했던 사람들과 재미있게 웃었던 경험이 있다.


교육생들과 연말 강연 이야기를 하다가 그때 일이 생각나서 '우리도 드레스 코드 정할까요?'라고 제안을 했다. 즐거운 연말 파티 같은 수업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예전에 지인들과 있었던 빨간 옷 이야기도 함께 했다. 그런데 그때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리고는 바로 다른 주제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얼마나 반성을 했는지 모른다. 2년 넘게 알고 지냈고 같은 일을 하는 또래들과의 대화 내용은 나이 차이가 20년이나 나고 공적인 관계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적절하지 않았다. 여러 번 내 수업을 들었던 참여자들이어서 친밀하다고 생각했었는지 아니면 또 만날 생각에 신이 나서였는지 몰라도 어찌 됐건 선을 넘었다. 그걸 표현해준 사람들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 이후로는 아무리 즐겁고 신이나도 말을 조심해서 하려고 노력하게 됐다. 그때 바로 사과하자 못한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말하고 싶다.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요.





말해준다고 상대가 사과하거나 조심하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도리어 정색하면서 나를 비난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말해줘야 한다. 한 사람일 때는 변하지 않더라도 여러 사람이 되면 그때는 '유난 떠는 이상한 사람이 다 있네'에서 '내가 좀 과했나?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건가?'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말해줘도 서운하다만 말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노룩 패스로 유명했던 한 분은 자신을 희화하고 패러디하는 사람들에게 '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내가 국민을 위해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노룩 패스만 기억하냐'라고 억울해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 글을 시댁 어르신이 읽게 되신다면 똑같이 말할 수도 있겠다.


내가 가족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데,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지금 나의 말은 지금까지 쌓아온 생각이 표현 된 것이고, 생각은 미래의 행동을 결정한다. 지금 내가 타인의 불편함이 별것도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런 생각들은 쌓이고 쌓여서 폭력과 범죄로 나타날 수 있다.


내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며 키웠는데! 내 아이 얼마나 컸나 확인하려고 몸 좀 만진,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내가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는데! 열심히 하는 내 학생 예뻐서 껴안아 준,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내가 연예인이 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데! 나 좋다고 따라온 여자 몸 좀 찍은,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별것도 아닌 일이라는 당신의 말은 과거 당신의 일상과 삶에도 타인에 대한 존중이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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